-82년 입행인데 부총재급 대우다. 파격 인사다. ▲외화자산운용 분야에 (경력이) 치우쳐 있었고 외부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는데 갑자기 튀어나왔으니 파격이겠다(웃음).
-적임자라는 평가가 많다. ▲감사드리고 싶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라는 반응이 나오면 출발하는 사람도 김샌다. 한편으로 고맙고 한편으로는 기대를 해준다니 부담된다. 나는 경력이 특이하다. 한은에 입행한지 30년째다. 인사과 2년 반, 지점에 1년 반, 학술연수 2년을 빼면 직간접적으로 외환보유액 운용만 했다. 미국 뉴욕 사무소에서 3년간 근무했고 국제금융센터에 1년, 월드뱅크에 2년간 파견을 나갔었는데 외환보유액 운용과 관련있다고 보면 편식한 경력이다. 그런 면에서 부총재보급으로 발탁됐다는 것은 대단히 영광스럽다.
-전문 분야이니 외환보유액 운용 계획이 이미 있을 것 같다. ▲항상 있었다. 1982년도에 처음 (운용을) 시작했는데 당시 외환보유액이 10억달러였다. 30년동안 지겹지 않냐는 말을 할 수 있겠는데 운용액이 10억달러일 때, 300억달러, 1000억달러, 3000억달러일때 운용 방법이 다 다르다. 국제 금융환경도 달라졌다. 외환보유액 운용은 진화하고 발전하지 않은 순간이 없다. 건방지다고 오해받을지는 모르겠으나 신입행원 때부터 조금 더 좋은 방법, 합리적인 방법을 많이 생각하고 꿈 꿔왔다.
-앞으로 외환보유액 운용에 어떤 변화가 있을까. ▲외환보유액 운용의 기본은 최후의 보루(last resort)로서 유동성과 안정성을 충분히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만고 불변의 진리다. 그 범위 내에서 가능한 한 수익을 올려야 한다. 이 철학은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업무의 효율성 측면은 달라져야 한다. 운용 환경이 끊임없이 변하고 있다. 나는 진화라는 말을 좋아하는데, 환경에 적응하며 발전해야 한다.
-하지만 때에 따라 유동성과 안전성, 둘 중 하나에 치우칠 수 있지 않나. ▲지금까지는 안정성과 유동성이 대체로 같이 움직였다. 미국 달러화가 가장 안정적이고 유동성이 있었다. 안정성과 유동성을 굳이 구분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앞으로 유동성과 안정성이 같이 가지 않고 다르게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원칙은 변한게 없지만, 안정성과 유동성을 확보하던 방법이 앞으로 달라질 수도 있다.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 고민해야 하는 부분이다.
-유럽 채권 전망은. 독일 채권의 경우 미국 국채와 함께 안전자산으로 꼽혔는데 앞으로도 지위를 유지할 수 있을까. ▲민감한 질문이다. 기본적인 운용 원칙에 맞게 하겠다는 대답 밖에 할 수 없다. 다만 과거에는 모든 나라의 국채는 크레딧리스크가 없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지금은 나라에 따라 크레딧리스크가 다르다. 심지어 미국 국채만 해도 트리플A가 아니다. 또 상황 여하에 따라서 크레딧리스크는 없지만 엄청난 마켓리스크가 있을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영구 불변한 안정성은 없는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운용이 부담스럽고 힘들다.
-미국 달러화가 기축통화 지위를 계속 가질 수 있을까. 위안화가 어느정도 그 자리를 차지할 것이란 얘기가 많은데. ▲내 개인적인 생각이라기보다 중앙은행 직원들이 만났을 때 기축통화(reserve currency) 지위는 궁극적으로 경제력에 결정된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 장기적으로 세계 경제의 구조적인 변화를 보면 달러가 기축통화 지위를 과도하게 누리고 있다는게 일반적인 얘기다. 각국이 달러화에서 다른 나라 통화로 다변화해 나가는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라 과거 20년동안 계속돼 왔던 일이다.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캐나다 호주 스위스 노르웨이 등 메이저가 아닌 마이너 통화와 신흥국 통화가 그 빈자리를 조금씩 차지해 갈 것이다. 다만 통화 다변화는 눈에 띄지 않게 서서히 일어날 것이다. 중국 위안화가 기축통화로서 지위를 찾아갈 것으로 보인다. 한국도 (그 같은 상황을) 고려를 해야 한다. 하지만 현재 중국 시장은 충분히 개방돼 있지 않고, 지금 당장 (위안화로의 다변화가) 확 늘어나긴 어렵다.
-최근 민간은행에서 외환보유액을 활용하자 의견이 나오는데 의견은. ▲최후의 보루로서의 (역할을) 약화시키는 것이어서 국가 전체로 봐서는 소탐대실이다. 어차피 진짜 급할 때는 외환보유액을 빌려주게 돼 있다.
-경제 규모가 세계 10~11위인데 외환보유액 규모는 7~8위 하는게 맞냐는 지적이 있다. ▲그렇게 치면 우리나라는 축구경기에서 절대 우승해선 안되겠다(웃음). 외환보유액의 중요성을 한동안 잊고 있다가 2008년 위기 때 실감하지 않았나. 당시 충분한 외환보유액을 가진 게 큰 힘이 됐다. 단순한 계산으로 따질수 없는 이익이 있다. 갑작스런 외부 충격이 왔을 때 국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나 비용을 생각하면 외환보유액을 조금 충분한 수준 이상으로 가져가는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민간 부문에 잘 썼을 수 있는 귀중한 자산을 대신 맡아두고 있는 셈이니 최대한 노력해서 기회비용을 줄이겠다.
-내년 세계 각국의 추가 양적완화가 전망되는데 해외 자산 수익률은 낮아지고 있어 고민될 것 같다. ▲자산가치의 보존과 수익 제고 사이의 선택이 어려워지고 있다. 둘 다 달성하기 쉬웠던 적도 있었다. 2000년대 초반 국제금리가 떨어질 때는 좋았다. 지금은 여건이 힘들어졌다. 경우에 따라서는 안전성이냐 수익성이냐 선택을 신중하게 해야 할 타이밍이 올 수 있겠다. 하지만 중앙은행은 자산가치 보존이 수익성보다 우선이다. 수익을 쫒는다는 것은 돈을 잃을 리스크를 각오하고 쫒는 것인데. 지금은 시장에 내제된 리스크에 비해 수익이 낮다.
-역마진이 또 도마에 오르지 않을까. ▲중앙은행의 수지가 업무 성과를 평가하는 잣대는 아니다. 일을 게을리 하겠다는게 아니라 중앙은행의 적자가 한국은행의 운용성과를 가늠하는 평가 잣대가 되서는 안된다. 우리나라가 잘 되면 잘 될수록 환율은 떨어지고 기준금리는 올려야 하는데, 한은 수지에 부담이 생길 수 밖에 없다. 한은의 외환보유액 운용 시스템, 투자상품의 범위, 리스크 관리 매커니즘, 전산 시스템은 전세계에서 상위권이다. 그런데 두가지 문제가 있다. 운용 환경 변화에 따라 어떻게 지속적으로 변화, 발전을 할 것인지 고민이다. 또 한은이 외환보유액 운용에 있어 하드웨어는 큰 발전을 했는데 조직을 움직이는 소프트웨어도 같이 발전해야 더 큰 성과를 낼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조직과 인력운용의 효율성을 높이는데 많은 노력을 할 것이다.
-인력 운용 효율성을 어떻게 높일 것인가? ▲세부적으로 팀 조직을 개편할 수 있다. 또 국제적인 자산운용사처럼 조직 구성과 장점을 살릴 수 있는 방향으로 바꾸고 싶다. 인력도 개개인의 장점이 보다 잘 발휘될 수 있게 운용하고 싶다. 한은의 정체성을 지키돼 자산운용의 특성을 반영할 수 있는 방향이다. 자산운용은 결국 사람 운용이다.
-KIC 위탁 규모는 계속 늘릴 예정인가. ▲정해진게 없다. 한은은 KIC의 가장 큰 스폰서 중 하나다. KIC를 서포트하고 상호 보완하는 관계여서 KIC가 잘돼야 우리가 잘된다.
-힘들었던 순간은? ▲돌이켜보면 "요즘처럼 전망이 힘든 적은 없다"는 말을 늘 했던 것 같다. 어렵지 않은 순간은 없었다. 오히려 사고는 방심하고 있을 때 터진다. 지금은 모두들 상황이 어렵다고 인지하고 있지 않나. 골프도 어려운 샷은 잘 받아치지만 쉬운 공에서는 소위 `삑사리`가 나기 마련이다(웃음). 역시 운용이라는 것은 기본에 충실해야겠다는 생각이다. 분위기에 휩쓸리면 꼭 비싸게 사고 싸게 판다.
-잘했다고 생각하는 투자는? ▲1990년대 후반 한은의 외환보유액 운용은 만기 1년 이하 미국 국채(Treasury bill) 등 단기자산 중심으로 이뤄졌다. 그 당시 내가 주도해 외환보유액 포트폴리오의 듀레이션을 많이 늘렸다. 곧바로 외환위기가 터져 효과를 금세 보지는 못했지만 이게 바탕이 되서 2000년대 이후 국제금리 하락기에 한은이 높은 수익률을 거뒀다. 개인적으로 보람있다고 생각한다.
연수 경험을 바탕으로 1996년에 벤치마크 개념을 도입했었다. 그때는 JP모간 거버먼트 본드 인덱스(JP Morgan Government bond index)를 벤치마크로 썼었다. 지금 바클레이즈 인덱스를 맞춤형으로 바꿔쓰고 있다. 벤치마크를 설명할 때 많이 힘들었다. 운용을 벤치마크보다 못하는 경우도 있느냐고 누가 묻길래 그렇다고 했더니 "그럼 안돼"라고 하더라(웃음). 당시 다른나라 중앙은행도 벤치마크가 없었는데 우리나라가 비교적 빨리 도입했다. -변화의 중심에 서 있었던 것 같다. ▲나는 개인적으로 보수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월드뱅크에 파견갈 때도 누가 그러더라. 1급 승진을 해야 하는데 월드뱅크에 왜 가냐고. 하지만 나는 승진은 아무 때나 해도 되고 월드뱅크에 가서 일하는 경험은 자주 오는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월드뱅크가 주체하는 여러가지 컨퍼런스에서 발표를 하다보니 사람들을 많이 알게 됐다. 월드뱅크에 소속된 사람들이 주로하는 일은 개발도상국 외환보유액 컨설팅이다. 나도 기회가 돼서 아시아 중앙은행을 중심으로 운용 컨설팅을 했다. 세 나라의 위탁을 받았는데, 중앙은행이 외환보유액을 일부 맡기면 운용을 대신해주고 수수료를 받아 이를 컨설팅 비용으로 쓴다. 세일즈맨 겸 컨설턴트였다. 완전하진 않지만 을 신세도 겪어봤다(웃음). 내게 떨어지는 금전적 이익이 없었다. 당시 세계은행 소속이었기에 컨설팅 수수료는 그 쪽에 귀속됐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외환보유액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운용하는 성격상 세세하게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다. 너무 단기적인 시각에서 운용을 평가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가능하다면 운용 방식나 현황을 공개하는 범위를 넓혀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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