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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닷컴 제공] “‘강남’을 아흔아홉번 돌아볼거면 오히려 ‘난쉰’을 한번 돌아보라.’ 중국의 이 속담 하나가 난쉰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고도 남음이 있다. 저 호기어린, 지역 갈등적 요소 가득한 속담은 어떤 자신감에서 나온 것일까? 게다가 난쉰이란 중국 여행지를 들어본 기억조차 찾을 길 없으니, 머릿속에 파노라마가 그려질 리 없고 마음속에 절경의 감동을 느낄 수 있는 독자들이 많지 않을 터…. 이에 절강성 북부, 호주시 동부에 위치해 있으며 중국 3대 담수호 중 하나인 태호의 남안에 위치한 난쉰으로의 지상(紙上) 여행을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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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단장사로 뜬 중국의 부자 동네
난쉰은 담수호인 태호와 항가호라는 기름진 평야가 있어 생선과 쌀이 풍부해 예로부터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었던 곳이다. 부자가 많고, 잘 살다보니 비단과 미인이 넘쳐난 것은 당연하다. 상하이에서 자동차로 1시간 조금 더 걸리는 거리에 위치해 있다.
시기적으로는 700여년 전 부자동네인데, 이 유명세는 앞서 밝힌 강남과 비교한 속담보다 난쉰을 더 극찬한 또다른 속담을 만들어냈다. ‘하늘에는 극락이 있고 땅에는 쑤저우와 항저우가 있다’는 찬사가 그것. 중국의 옛사람들은 난쉰을 인간세상의 극락으로 봤던 모양이다. 이 흔적은 지금도 여전하다. 당시 부자들의 호화저택 20여채가 지금까지 남아 있어 그들의 속살을 훔쳐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난쉰의 총 면적은 3㎢에 불과해 마음만 먹으면 하루 일정으로 돌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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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도 넓지 않고 길가의 가게문도 아주 작지만 처마 밑에 걸려 있는 초롱이 고풍스러움을 자아낸다. 도시 안쪽을 물길이 비단을 엮듯 씨줄과 날줄이 되어 흘러지나고, 늘어선 저택들은 수로에 빨대를 꽂은 양 그 옆에 지어져 있어 운치가 좋다. 이 작은 마을에 은자 100만량 이상의 부자가 12명이나 살았다는데, 이들의 돈벌이는 비단장사였다. 난쉰의 비단은 중국은 물론 인도·이집트·시리아까지 수출됐다고 한다. 17세기에 이미 비단 장사를 시작했고, 180여년 전에 비단을 수출했던 그들은 1915년 파나마 국제엑스포에서 난쉰의 실크로 금상을 수상하기까지 했다. 비단장사 왕서방이 명월이 한테 반해서 한눈을 파는 사이, 난쉰의 비단장사 유용 등은 실크로드의 역사를 만들고 지상엔 극락을 세운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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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00년 전 중국의 타워펠리스?
유씨 가문이 이 저택을 짓는 데 40여년이 걸렸고, 면적은 1만7000㎡에 이르니 부자티 한번 제대로 내면서 한 생을 살았나 보다. 시냇물 위에 세워진 돌 다리를 지나 고색창연(古色蒼然)한 소연장 정원에 들어서면 건물과 자연의 조화가 그만이다. 정원 가운데는 연꽃 못이 있고 그 주변에 건물, 정자, 누각 등이 있으며, 그 사이를 시가로 예측할 수 없는 진귀한 나무와 꽃들이 아교처럼 단단히 이어주고 있다. 이를 글자의 파노라마로 풀어내자면 지면이 부족해도 한참은 모자랄 성 싶다.
쉽게 난쉰의 여행코스는 소연장-가업장서루-장택-류택-장징강고택-백간루 등의 순서로 돌아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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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쉰도 식후경
난쉰은 음식문화도 많이 발달했다. 대표적인 요리로는 이름도 복잡한 야채요리와 ‘ㄲ’ ‘ㄸ’ ‘ㅆ’ 등 경음이 교차하며 귀를 간질이는 딤섬 요리가 압권이다. 그중 수화금은 야채 요리인데, 향기가 짙고 질감이 연한 것이 특징이다. 난쉰을 중심으로 사방 5㎞에서 많이 나는 야채로, 그 경계를 넘어서면 모양은 똑같지만 향기가 사라진다고 한다.
인근 항저우 관광도 볼거리인데, 가장 먼저 서호를 봐야 한다. 이곳은 절세미인 서시를 기려 서자호라고도 한다. 둘레만 15㎞에 달할 유람선으로 둘러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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