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내견은 벗이자 빛이죠"…시각장애 상담사의 '아름다운 동행'

시각장애인 유석종씨 안내견 학교서 상담사로 활동
"안내견과 함께 하며 누군가 돌보고 책임진다는 것 배워"
안내견, 시각장애인 안내가 아닌 동행하는 반려견
  • 등록 2017-04-20 오전 6:30:00

    수정 2017-04-20 오전 6:30:00

유석종(36)씨가 자신의 안내견 ‘태극이’(4)를 쓰다듬고 있다. (사진=삼성화재 안내견학교 제공)
[용인=이데일리 이슬기 기자] “이 친구가 벌써 세 번째네요. 훈련시킬 때가 엊그제 같은데….”

유석종(36)씨의 주름진 눈가에 환한 웃음이 번지자 검정 래브라도 리트리버 ‘태극이’(4)가 그를 빤히 쳐다봤다. 안내견인 태극이는 선천성 시각장애인인 유씨에게 눈과 손·발이 되어 주는 소중한 친구다. 스무 살 때 만난 첫 안내견 ‘강토’에 이어 ‘채송이’마저 떠나보낸 뒤 태극이와 연을 맺은 지도 벌써 2년째다.

“아무래도 부탁할 일이 잦은데 안내견이 없었을 땐 다른 사람 눈치를 많이 봤죠. 혼자 밖을 다니기 꺼려지고 그러다보니 더욱 소심해 지더군요.”

안내견을 만난 뒤로는 삶의 태도가 전과 크게 달라졌다고 했다.

“가족에게 기대기만 하던 ‘수직적 관계’였다면 혼자 할 수 없던 일을 차츰 할 수 있게 되면서 자신감이 생겨 지금은 ‘수평적 관계’가 됐다고나 할까요.”

주체적 삶을 깨닫게 된 유씨는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시각장애인들을 돕기로 마음 먹었다. 삼성화재 안내견학교에 들어간 그는 지난 10년 동안 시각장애인과 가족을 위해 어떤 안내견이 좋을지 상담하고 실제 분양 여부를 결정하는 일을 하고 있다. 그는 “장애인들이 삶의 주체로 설 수 있도록 돕는 게 제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시각장애인들이 일방적으로 안내견의 도움을 받는 것만은 아니다. 안내견과 함께 하면서 누군가를 돌보고 책임진다는 것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유씨는 “안내견을 들이면 시각장애인의 삶이 마냥 편한 줄 오해하지만 그렇지 않다”며 “매일 털을 빗기고 건강을 체크하는 건 제 몸뿐 아니라 다른 생명을 책임지는 일”이라고 했다.

시각장애인들을 힘들 게 하는 건 장애 자체가 아닌 세상의 편견이라고 했다.

안내견 출입을 막는 것은 ‘장애인 보호법’에 따라 금지돼 있지만 여전히 출입을 거부하는 곳들이 적지 않다. 그럴 때마다 당당하고 적극적으로 대응할 것을 당부했다. 유씨는 “세상과 부딪치는 일이 있다는 건 자신이 세상에 산다는 존재의 증거 아니겠느냐”고 되물었다.

유씨는 안내견을 불쌍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 역시 그릇된 편견이라고 강조한다.

유씨는 “제 때 먹을 것을 주고 착한 행동을 칭찬하고 매일 적당한 산책을 해주는 건 행복한 일”이라며 “안내견이 대부분의 시간 방치돼 있는 일반 가정의 반려견보다 더 행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안내견학교에 따르면 실제 안내견으로 활동하는 리트리버가 동종 반려견 보다 1년 정도 오래 사는 경향이 있다는 일본 안내견협회 조사결과도 있다.

유씨는 “안내견에게 주인이 앞을 볼 수 있냐 없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라며 “시각장애인을 ‘안내’하는 게 아니라 ‘동행’하는 것으로 봐 달라”고 당부했다.

유씨가 자리에서 일어날 채비를 하자 인터뷰를 진행하는 1시간 동안 묵묵히 앉아있던 태극이는 그제서야 꼬리를 흔들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저와 사는 태극이도 행복할 것 같지 않나요? 태극이와 함께 오랫동안 ‘아름다운 동행’을 할 겁니다.”

유석종(36)씨가 안내견 ‘마루’(2)를 훈련시키고 있다. ‘태극이’와 안내견학교 친구인 ‘마루’는 조만간 시각장애인 가정에 분양을 앞두고 있다. (사진=삼성화재 안내견학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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