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100m 이내 접근금지"

실직 50대 가장이 술먹고 아들 뺨 때리자 엄마가 격분해 신고
  • 등록 2009-03-31 오전 9:13:44

    수정 2009-03-31 오전 9:13:44

[조선일보 제공] 부모에게 매를 맞은 자녀들이 경찰에 부모를 상대로 접근금지 신청을 내거나, 비교적 경미한 수준의 가정폭력을 문제 삼아 가족끼리 접근금지 신청을 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서울 강남경찰서는 29일 삼성동의 66㎡(20평)짜리 다세대 주택에서 아들(16)을 때린 혐의로 아버지 임모(50·무직)씨를 붙잡아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임씨는 이날 오후 4시40분쯤 집에서 술을 마시다가 아들에게 "치킨(통닭) 좀 시키라"고 했다. 아들이 대답 없이 자기 방에 틀어박혀 있자, 화가 난 임씨는 "치킨을 시키라는데 못 들은 척 대꾸가 없다"며 아들의 뺨을 네 대 때렸다고 경찰은 전했다. 이를 지켜보던 부인 김모(51)씨가 격분해서 임씨를 경찰에 신고했다.

아들은 경찰 조사에서 "아버지가 실직한 뒤 집에서 종종 혼자 술을 마셨고, 한달에 한번 꼴로 술에 취해 주먹을 휘둘렀다"며 "아버지 말은 듣기도 싫어 대답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식당 허드렛일을 하며 살림을 꾸려온 부인 김씨는 "남편이 아들을 때리지 못하게 해달라"며 100m 이내 접근금지를 신청했다.

가정폭력 사건이 벌어지면 경찰이 조사를 마친 뒤 피해자에게 "접근금지를 원하냐"고 묻는다. 피해자가 접근금지를 신청하면, 경찰이 자체적으로 판단해 폭력 정도가 심한 경우만 검찰에 넘긴다. 이후 법원이 접근금지 신청을 받아들일지, 기각할지 결정한다.

폭력 정도가 경미한 경우엔 가정폭력 피해자가 접근금지를 신청해도 경찰 선에서 기각한다. 대신 "이러저러한 이유로 접근금지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검찰에 사유를 보고한다. 경찰은 "접근금지 신청이 받아들여질 경우 집 길이가 100m 이상이 아닌 한, 집이 누구 명의건 가해자가 나가야 하고 어기면 구속된다"고 했다.

지난 24일에도 서울 고덕동에 사는 대학 졸업반 여학생(23)이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지 않는다"며 자신의 손등에 노란색 고무줄을 튕긴 어머니(53)를 상대로 100m 이내 접근금지를 신청했다. 당시 경찰은 "어머니가 딸을 나무라는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수준"이라고 판단해 접근금지 신청을 넘기지 않고 사건을 마무리지었다.

경찰은 "흉기를 사용하거나 매일 폭력을 휘두르지 않는 한 경찰이 검찰에 접근금지 신청을 올리는 일은 드물다"고 했다. 작년 한 해 동안 서울가정법원에서 접근금지 신청을 담당한 장일혁 판사는 "경찰에서 접근금지가 필요하다고 판단할 정도면 사안이 심각한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법원에 올라온 접근금지 신청은 90% 이상 받아들이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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