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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앙드레 코스툴라니/주식 중개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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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제공] 앙드레 코스툴라니에게 투자는 ‘지적인 모험’이었다. 자신의 말을 듣기 위해 몰려드는 대중들에게 언제나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하곤 했다.
“인생을 즐기십시오.”
그만큼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관조적이었다. 그는 인문학과 예술에 대해 깊고 오랜 조예를 가지고 있었다. 1906년 헝가리의 유대계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코스툴라니는 예술비평가가 되고 싶어 철학과 예술사를 공부했다. 피아니스트에 대한 꿈도 가졌을 정도로 음악을 사랑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권유로 18세에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 주식중개인이 됐다. 그는 유동성과 시장참여자의 심리가 주가를 결정짓는다고 믿었다. 그래서 유동성 지표 역할을 하는 장기금리 추이를 잘 살피고, 투자자 심리를 꿰뚫는 ‘생각하는 투자자’가 되라고 주장했다. 과학적 방법으로 주식시황을 예측하려는 사람들을 ‘사기꾼’이나 ‘바보’로 취급했다.
그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던 잿더미 독일에 관심을 가졌다. 독일 국민의 근면성과 재건의지를 보고 독일 국채를 헐값에 사들여, 140배의 수익을 거뒀다. 그는 1989년 미국과 소련이 정상회담으로 관계가 가까워지는 것을 보고 러시아 차르 시대에 발행한 채권을 사들였다. 소련이 경제활성화를 위해 해외 자금 지원을 받으려면 기존에 발행했던 채권을 전부 상환해야 한다는 판단에서였다. 이 생각도 적중해 60배에 달하는 수익이 났다. 그 역시 투자 실패로 파산 상태에 이른 적이 있었지만 “훌륭한 투자가가 되기 위해선 적어도 두 번 이상의 파산 경험이 있어야 한다”는 낙관적 자세로 극복했다.
이 ‘낭만 투자가’는 저술을 통해 남아 있는 끼를 마음껏 쏟아냈다. 13권의 투자 관련 책을 썼고, 독일의 투자전문지에 414건의 칼럼을 기고했다. 수필에 가까운 유려한 필치로 많은 독자를 몰고 다녔다. 코스툴라니는 ▲압박감에 시달리지 않게 돈을 충분히 가지고 행동할 것▲유연하게 행동하고,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할 것▲완전히 새로운 상황이 전개되면 즉시 팔 것 ▲확신이 서면 고집스레 밀어붙일 것 ▲추천종목과 비밀스런 소문을 무시할 것 등의 원칙을 설파했다. 75년간 투자가의 삶을 산 코스툴라니는 1999년 “상상력이 지식보다 중요하다”는 말을 남긴 채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