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세탁기가 진화?…테슬라 닮은 LG전자 'UP가전'

구형 가전제품도 신제품처럼 쓴다
산토끼 보다 집토끼 고수하는 전략
애플·테슬라가 준 '고객 경험' 받을까
  • 등록 2022-02-01 오후 9:30:00

    수정 2022-02-16 오후 6:47:34

(사진=LG전자 뉴스룸 캡처)
[이데일리 김상윤 기자] LG전자가 올해 재미있는 화두를 던졌습니다. 바로 가전 업그레이드를 뜻하는 ‘업(UP)’가전 개념입니다. 소프트웨어뿐만 아니라 하드웨어도 업그레이드를 하면서 기존 제품을 새제품처럼 계속 쓸 수 있게 하겠다는 취지입니다.

가전제품은 사는 순간 구형이 되는 게 일상입니다. 늘 새로운 기술이 나오기 때문이죠. 하지만 업그레이드를 하면 구형도 신형처럼 쓸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가전제품에 탑재된 소프트웨어를 업그레이드를 하면 신형 소프트웨어를 쓰면서 신기능을 쓸 수 있고, 하드웨어도 추가로 장착하면 다른 가전제품처럼 쓸 수 있다는 겁니다.

반려동물 키우면 ‘펫기능’ 업그레이드

이를테면 집에 공기청정기가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최신 공기청정기는 ‘펫기능’을 추가해 반려동물의 배변냄새를 탈취할 수 있습니다. 배변냄새의 주요성분인 암모니아, 아세트알데히드, 아세트산 등 유해가스를 누적정화량 기준으로 기존모델대비 55% 가량을 더 제거해줍니다. 또 반려동물의 털, 먼지 등을 보다 제거하는 기능도 갖추고 있습니다.

반려동물을 키우기로 한 소비자가 새로 ‘펫기능’이 있는 공기청정기를 사려면 기존 제품을 팔고 새제품을 사거나, 아니면 추가로 ‘펫기능’을 갖춘 공기청정기를 사야 하는 부담이 생깁니다. 하지만 ‘펫기능’을 업그레이드 한다면 일부 하드웨어 비용만 추가하면 되기 때문에 비용 부담이 줄어드는 장점이 있습니다.

최근 냉장고는 ‘야간 눈부심 방지 기능’도 있습니다. 사용자가 편의에 따라 밝기를 낮추는 기능을 조절할 수 있는 기능이죠. 기존 냉장고를 쓰던 사용자도 소프트웨어를 업그레이드를 하면 이 기능을 그대로 쓸 수 있습니다. 별도로 새 냉장고를 살 필요가 없는 것이죠.

류재철 LG전자 H&A사업본부장 부사장이 지속적인 업그레이드를 통해 끊임없이 진화하는 ‘UP가전(업 가전)’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LG전자)
산토끼보다는 집토끼 잡겠다는 LG전자

가전업계로서는 쉽지 않은 선택이지 않을까요? 일반적으로 제품 교체 주기가 짧을수록 회사는 돈을 더 벌 수밖에 없습니다. 새로운 상품을 계속 구매해야 매출이 일어나기 때문이죠. 그런데 ‘가전 업그레이드’가 된다면 소비자 입장에서는 굳이 새 상품을 살 필요가 없어지겠죠. 고장만 안 난다면 기존 제품을 오랜기간 쓸 수 있게 되기 때문에 소비자로서는 분명 이득인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LG전자는 기업입니다. 마냥 소비자한테 혜택을 주는 ‘착한 기업’ 이미지만 얻고자 ‘UP가전’을 꺼내 들지는 않았을 겁니다.

LG전자가 ‘가전 업그레이드’ 카드를 꺼내 든 것은 충성고객 확보가 보다 중요한 시점이라는 판단으로 보입니다. 코로나19에 따른 ‘펜트업’ 수요가 주춤하고, 가전 수요는 ‘피크(정점)’을 찍고 내려오는 추세입니다. LG전자 입장에서는 신규고객을 끌어모으기보다는 충성 고객을 유지하는 게 보다 나을 수 있는 상황입니다. ‘산토끼’보다는 ‘집토끼’를 지키는 전략이 더 나을 수 있는 셈이죠. ‘산토끼’를 잡으려면 마케팅 비용을 대거 투입해야 하는데, 오히려 이 비용을 줄이고 기존 고객한테 혜택을 주는 게 보다 현명할 수 있는 상황이죠.

충성 고객이 확보된다면 LG전자로서는 잠재적인 수요를 지속적으로 확보할 수 있습니다. 가전제품의 주기는 5~10년 입니다. 새 기능을 업그레이드 하더라도 기존 제품이 고장이 난다면 새 제품을 구입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새 제품을 구입할 때 LG전자 제품은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가 된다면 계속 LG전자 제품을 쓰지 않을까요? LG전자는 이를 두고 고객이 제품이 아닌 경험을 구매한다고 강조합니다.

스마트폰에선 이미 대중화된 업그레이드

사실 ‘업그레이드’ 개념은 이미 스마트폰에서 쓰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회사가 애플입니다. 애플은 아이폰 신제품이 나오더라도 기존 아이폰 사용자도 새로운 소프트웨어(iOS)를 계속 쓸 수 있는 정책을 구사하고 있습니다. 물론 카메라 기능은 점점 고사양화되고 있지만, 소프트웨어는 아이폰 10이나 아이폰13 사용자도 똑같이 쓸 수 있습니다.

아이폰은 삼성 갤럭시나 중국 화웨이,오보, 비보 등 스마트폰에 비해 비싼 편입니다. 출고가도 비싼데다 판매장려금을 거의 태우지 않기 때문에 소비자가 비싸게 구입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한번 아이폰을 쓴 고객은 계속 아이폰을 씁니다. 바로 아이폰이 선사하는 ‘경험’ 때문입니다. 늘 새로운 소프트웨어를 쓸 수 있는 경험, 늘 혁신을 선사하는 ‘아이폰’ 경험 때문에 휴대폰 교체기에도 ‘아이폰’을 주저없이 선택합니다. 애플입장에서는 당장은 교체 수요가 조금 줄고 제품 교체 주기가 늘더라도 지속적인 업그레이드를 통해 성능과 안정성을 보다 제고하면서 아이폰 사용자를 꾸준히 ‘충성 고객’으로 만들고 있는 셈이죠.

LG전자도 비슷한 전략을 꺼내 든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1등 업체만 구사할 수 있는 전략으로 꼽힙니다. 이미 확보된 점유율을 바탕으로 기존 고객을 지속적으로 끌고 가겠다는 전략이죠. 후발 주자는 점유율을 늘리는 게 더욱 중요한 목표이기 때문에 쉽사리 먼저 꺼내 들기 어려운 카드죠. 지난해 ‘월풀’을 제치고 글로벌 가전 1위를 차지한 LG전자의 자신감의 표현으로 읽힙니다.

테슬라는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통해 소비자가 새로운 기능을 쓸 수 있도록 전략을 짜고 있다. (사진=테슬라)
개념은 좋은데..실제 업그레이드를 봐야

LG전자가 꺼내 든 ‘UP가전’은 가전시장에서 새로운 파문을 던진 것은 분명합니다. 후발주자들도 LG전자의 전략을 따라가야 할지, 아니면 가격을 낮추고 마케팅비를 충분히 활용해서 점유율을 늘릴지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LG전자의 전략이 성공할지는 여전히 미지수입니다. 개념은 훌륭하더라도 실제 고객이 느끼는 ‘업그레이드’가 충분히 실용적이냐가 관건입니다. LG전자가 현재까지 제시한 ‘업그레이드’ 사례만으로는 소비자가 충분히 만족할지는 불투명합니다. ‘펫기능’ 업그레이드 외에 소비자가 혁신이라고 느낄 만한 기능이 업그레이드가 될지, 아니면 불필요한 업그레이드만 하고 오히려 신제품 구매 못지않게 비용부담만 하게 될지에 따라 향후 시장 판도는 달라질 것으로 보입니다.

이를테면 테슬라는 자율주행 기능이 개발될 때마다 소프트웨어를 업데이트를 하고 있습니다. 앱스토어에서 일정 비용을 지불하고 새로운 기능을 추가하는 방식입니다. 마치 구형 테슬라가 신형 테슬라로 바뀔 수 있는 거죠. 이 기능이 충분히 쓸만하다면 소비자는 기꺼이 비용을 내고 업데이트를 하지만, 자율주행기능이 충분하지 않는다면 굳이 업데이트를 하지 않을 겁니다.

마찬가지로 LG전자가 앞으로 선사할 ‘업그레이드’ 내용이 무엇일지에 따라 소비자의 선택은 달라질 것으로 보입니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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