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의 바다 ''홍해'' 그리고 람세스… 끝없는 이야기, 이집트

  • 등록 2008-06-05 오후 12:02:00

    수정 2008-06-05 오후 12:02:00

[조선일보 제공] ■이집트의 첫 인상, 혼돈과 소음 속 카이로

카이로를 처음 방문한 사람이라면 탄성보다는 한숨이 먼저 나온다. 국제공항은 낡았고 사람들은 무섭고 거칠게 보인다. 버스는 사이드미러도 없이 끼어드는 차들 사이를 경적을 짧게 짧게 울리며 거침없이 달린다. 사람들은 태연한 표정으로 횡단보도가 없는 길을 매끄럽게 건넌다. 그리고 라디오에선 국민 가수 아무르 디아브가 애타게 '하비비(사랑)'를 외치는 현대적인 아랍 노래가 끊임없이 흘러 나온다.

혼돈과 소음 속에서 크리스티앙 자크의 '람세스'가 살았던 곳이 아닌 지금, 여기의 이집트가 제 모습을 드러낸다. 한낮에는 섭씨 40도까지 올라가기 때문에 사람들은 밤이 돼서야 거리로 나온다. 강변에는 데이트를 하러 나온 가난한 연인들과 별 볼일 없이 어슬렁거리는 젊은 남자들로 가득하다.

시내에는 물건을 사거나 식사를 하러 나온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달콤한 과일과 주스를 파는 길거리 가게에 들러 용기 내어 마실 것을 주문해 본다. 아랍어로 쓰여진 메뉴는 그저 아름다운 장식으로만 보이고 가격은 모두 아랍 숫자로 쓰여져 있다. 우리가 쓰는 숫자를 아라비아 숫자라고 하지만 실제 아랍 숫자와는 무척 다르다. 그래서 결국 포기하고 만다. 그제서야 비로소 '나 정말 카이로에 왔구나'란 실감이 든다.

▲ 1 피라미드 레이저 쇼. / 2 샤름 엘 셰이크 리조트.(밥장 제공)


 
■시장에는 좋은 친구들이 넘쳐난다

사람 사는 모습도 보고 쇼핑도 할 겸 시장으로 향한다. 은세공 장식품, 맛과 향을 더해주는 이국적인 향신료, 꽃과 식물에서 추출한 갖가지 오일, 그리고 이집트 신들의 모양을 본 딴 기념품들로 넘쳐난다. '앙크' 목걸이를 사려고 상품에 들렀다. '앙크'란 윗부분이 타원으로 된 십자가 모양의 고대 이집트 글자다. '영원한 생명'을 뜻해서 목걸이, 반지 등 장식으로 인기가 좋다.

상점 주인은 반갑게 맞으며 뜨거운 커피에 설탕을 바닥에 깔릴 만큼 듬뿍 넣어준다. 은으로 된 팬던트는 무게를 달아 파는데 가격은 제각각이다. 그래서 'how much?'(얼마에요)라고 묻기보다는 'my price is ○○○'(내 가격은 ○○○인데요)라고, 내가 줄 수 있는 금액을 말하는 게 훨씬 낫다고 한다. 가격은 어디까지나 주인과 손님 사이 흥정으로 정해진다.

가격이 맞으면 손을 뻗어 상대방 손바닥을 치면서 힘차게 악수한다. 그리고 'good friend'(좋은 친구)라고 외치면 흥정은 마무리된다. 이런 거래에 익숙치 못한 관광객들을 위해서 정찰제로 파는 가게들이 더러 있지만 찾기가 쉽지 않다. 전설 속 아라비아 상인의 후예들과 흥미진진한 거래를 아무데서나 할 수 있다고 생각하자.


 
■나일강에서 시간은 천천히 흐른다

나일 크루즈를 이용하려면 먼저 룩소르까지 가야 한다. 카이로에서 룩소르까지는 비행기로 약 한 시간 걸린다. 나일 크루즈는 룩소르에서 아스완까지 운행된다. 한 척의 크루즈에는 보통 150~200개의 객실이 준비되어 있고 식당과 바, 각종 선외활동을 즐길 수 있게 꾸며진 갑판이 마련되어 있다. 객실에는 창문이 베란다처럼 되어 있어 방 안에서도 언제든지 나일강을 볼 수 있다.

뜨거운 낮 시간을 피해 주로 오전에 주변 신전을 관람한다. 오후에는 객실에서 밀린 잠을 자거나, 갑판에서 일광욕을 하거나 아니면 시원한 바에서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해질 무렵에는 모두 갑판 위로 올라와 아름답기로 정평이 나 있는 석양을 바라보며 사진을 찍거나 커피를 홀짝거린다. 하지만 나일 크루즈의 백미는 다른 곳에 있다. 깊은 밤 찰랑거리는 물소리에 깨어나면 크루즈는 조용히 어딘가로 가고 있다. 창문을 열고 손에 닿을 듯 가까운 나일강을 바라보고 있으면 어느덧 새벽 달빛이 비춘다. 아무리 정보를 검색하고 다큐멘터리를 보았더라도 알 수 없는, 오직 그곳에 가본 여행자만이 느낄 수 있는 섬세한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것이다.



■모세의 바다 홍해의 보석, 샤름 엘 셰이크

샤름 엘 셰이크(Sharm El Sheikh)에 가기 전까지 내게 홍해는 '현재형'이라기보다 '과거형'이었다. '출애굽기'의 주인공인 모세가 갈라놓은 이야기 속의 바다였다. 샤름 엘 셰이크는 시나이 반도 끝자락에 위치한 휴양 도시로 카이로에서 비행기로 한 시간 정도 걸린다. 중동 최대의 휴양 도시다. 최근 프랑스의 사르코지 대통령이 휴가를 보낸 곳으로도 알려졌다.

이곳의 백미는 단연 다이빙이다. 다이빙이 익숙하지 않다면 잠수정을 타는 것도 좋다. 수족관에서나 볼 수 있던 형형색색의 산호와 수많은 열대어를 즐길 수 있다. 리조트 앞 해변에 나가 간단한 스노클링 장비만 갖춰도 어렵지 않게 산호를 만나게 된다.


■신은 다음 세대 위해 무언가 남겨 놓았다

노란 사막 위에 예리한 모서리를 빛내며 우뚝 솟아 있는 피라미드는 그 자체가 하나의 꿈이다. 동화책으로 읽고 교과서에서 배우고 다큐멘터리로 수없이 봐 왔지만 이집트는 여전히 거대한 이야기로 남아 있다.

이집트 여행은 내게 어릴 적부터 꿈과 상상을 키워주고, 인류에게는 문명이라는 거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던 꿈의 공장을 찾아 떠나는 여행이었다. 아직까지도 새로운 유적이 발굴된다는 이집트는 가이드의 말처럼 다음 세대를 위해 깜짝 놀랄만한 것을 사막 아래 남겨둔 곳이 아닌가 싶다. 이야기가 끝나지 않는 한 이집트는 인류의 꿈 속에서, 그리고 콘크리트와 전기로 둘러싸인 현재의 문명 속에서도 여전히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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