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 딸부터 유치원에 다니는 막내 아들까지 5남매 키우랴, 남편 병원 뒷바라지하랴 아플 사이도 없었죠. 1년 지나니까 감기 몸살에 걸리네요. 오래 견뎠죠. 옛날 같으면 ‘힘들면 살림해야지’라는 생각을 했을 텐데, 지금이야 그럴 수 있나요.”
◆경기침체로 할인점 주부사원 증가
지난해 11월 24일이었다. 집에서 저녁을 먹던 남편이 갑자기 쓰러졌다. 직업군인 출신으로 힘든 인테리어 일을 하면서도 건강에는 자신 있어 했던 남편이었다. 병원에서는 “빨리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의식 없는 남편을 수술실로 들여보냈다. 남편은 중환자실에서 보름간을 지냈다. 최씨는 “남편이 처음 나를 알아보면 기뻐서 좋을 줄 알았는데 눈물부터 나오더라고요. ‘그동안 고생했으니까 이제 푹 쉬라’고 얘기했어요.”
새벽 5시 30분에 일어나 막내가 다니는 유치원에 가서 아이들 간식을 준비하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오전에 롯데마트로 출근, 일이 끝나면 남편 병원에 가는 생활의 반복이었다. 지난 여름에 ‘나까지 쓰러지면 안 되겠다’ 싶어 유치원 일은 그만뒀다고 한다.
남편은 왼쪽 반신불수가 돼 거동이 힘든 상태. 7년 연애 끝에 결혼, 자상했던 남편은 신경질적으로 변했다. 자신의 처지를 몰라주는 남편이 서운할 때도 있었지만 혹시라도 남편 건강에 안 좋을까봐 눈물이 나올 때는 병실 밖으로 나갔다.
지난달 12일 남편 생일 때 아이들이 잡채·전·미역국 등을 만들어 생일상을 차리던 날, 오랜만에 화기애애한 옛날 분위기로 돌아갔다고 한다.
“조금만 더 참으면 전처럼 휴일에 가족이 다시 여행갈 수 있는 날이 올 거예요. 할인점에 부부가 함께 장보러 오는 모습을 볼 때 어찌나 부럽던지. 그럴 날이 오겠죠.”
◆서민들 “박스 대신 낱개로 사가”
“라면을 두 박스 사가던 손님이 낱개로 사가고, 자신이 좋아하던 상표만 사가던 손님은 덤으로 제품 하나 더 주는 상품을 먼저 찾습니다.”
서민들이 많이 찾는 할인점 주부사원들은 누구보다 먼저 경기불황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지난달 30일 오후 6시 30분 서울시내 한 대형 할인점. 계산대가 15개나 운영되고 있지만 손님이 줄을 서 기다리는 데가 하나도 없을 만큼 ‘여유’가 있었다. 계산원 강모(39)씨는 “작년 같으면 말할 틈조차 없을 시간대인데 요즘은 평일엔 손님이 계산대 앞에 줄을 안 서는 경우가 많다”며 “20㎏ 쌀 한포대에 4만~5만원짜리가 많이 나가던 게 지금은 3만원대가 많이 팔린다”고 말했다.
롯데마트 의정부점 계산원 이남순(35)씨는 “예전 같으면 라면이나 커피, 우유를 살 때 박스나 대용량을 많이 찾았지만 요새는 소포장 제품이 많이 팔린다”고 말했다. 롯데마트 월드점 농산물담당 최진아(29)씨는 “과일·야채 등 농산물의 경우 미리 포장된 상품보다는 대부분 필요한 양만큼 직접 담아갈 수 있는 상품을 찾는다”고 말했다.
생활필수품은 그나마 꾸준히 팔리고 있지만 그렇지 않은 제품은 판매가 부진하다.
A할인점 관계자는 “2004~2005년 30%에 육박했던 가전제품 판매 신장률이 올해는 8% 성장에 그칠 전망”이라고 말했다. 이마트는 지난해 8% 성장했던 매출이 올해 2~3% 성장에 머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서민이 지갑을 닫은 결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