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th SRE][editor's note]레고랜드 사태 1년 회고

  • 등록 2023-11-17 오전 8:46:07

    수정 2023-11-17 오전 8:46:07

[이데일리 권소현 마켓IN 센터장] 자본시장에 폭풍우를 몰고 왔던 레고랜드 사태가 터진 지 일 년이 지났다. 작년 신용평가 전문가 설문(SRE)을 시작하기 위해 질문지를 만들던 시점으로 기억한다. 작년 9월29일 레고랜드 개발사업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채권을 기초자산으로 발행한 2050억원 규모의 유동화기업어음(ABCP)이 기한이익상실(EOD) 상태에 빠졌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미국을 비롯한 각국이 워낙 금리를 빠르게 올리고 있었고 부동산 경기도 위축돼 있었기에 EOD가 심심치않게 발생하던 시기였다. 레고랜드 사태도 그 중 하나겠거니 했다. 하지만 실제 충격은 상상 이상이었다. 급속도로 금융시장은 얼어붙었고 곳곳에서 돈이 돌지 않아 비명이 난무했다. ABCP 금리는 껑충 뛰어서 20%를 찍은 사례까지 나왔다.

레고랜드 사태의 파장이 여느 EOD 사건에 비해 컸던 것은 신뢰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국가신용등급과 동일한 등급을 보유하고 있는 강원도가 지급보증을 한 PF였기에 신용등급도 기업어음 최고 등급인 ‘A1’이었다. 그런데 만기에 강원중도개발이 상환하지 못하자 강원도가 채무를 이행하는 대신 강원중도개발에 대해 법원에 회생신청을 하겠다고 선언했고, 금융시장에서는 이제 지자체 보증도 못 믿겠다는 불신이 빠르게 확산했다. 금융의 근간은 신뢰인데 가장 믿을만한 곳에서 고리가 끊어지자 줄줄이 나락으로 떨어진 것이다.

작년 SRE 설문조사 결과가 나온 후 열린 자문단 회의에서도 단연 레고랜드 이슈가 화제였다. 당일 강원도가 예산을 편성해 뒤늦게 레고랜드 PF ABCP를 전액 상환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들렸지만, 시장 반응은 뜨뜻미지근했다. 자문위원들은 “이미 마상(마음의 상처)을 깊게 입었기 때문에 조기 상환한다고 해도 마음이 풀리긴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자본시장은 그렇다. 한번 실망하거나 배신감을 느끼면 다시 회복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

일 년이 지나면서 레고랜드 사태가 언급되는 빈도는 줄었지만 여전히 PF 시장은 어렵다. 도급순위 상위 건설사의 부도설도 종종 들린다. 서울에서 가장 노른자위 땅으로 꼽히는 청담동 땅 개발 PF도 만기연장 퇴짜를 맞았다. 고금리 지속과 부동산 경기 악화 등이 이유지만, PF에 자금을 대기엔 아직 안심할 수 없다는 심리도 크게 작용하고 있다.

정부가 개입해 부실을 틀어막고 있는 바람에 사업성이 없는 PF 사업장까지도 연명하고 있는 현 상황도 신뢰 회복의 걸림돌로 꼽힌다. 정부가 레고랜드 사태로 인한 자금경색을 풀기 위해 쏟아부은 돈만 50조원에 달한다. 지난 4월부터는 금융권 PF 대주단 협약을 가동해 PF 사업장 지원에 나섰다. 그 덕에 급한 불은 껐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라는 지적이 많다.

올해 SRE 설문조사에서는 정부 지원에 대한 쓴소리들이 쏟아졌다. 대주단 PF 협약이 시장 원리를 무시한 정책이라는 비판, 결국 부실만 이연시켜 특정 시점 이후로 문제를 미루는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지적, PF 시행사와 관련 금융회사의 도덕적 해이를 부추길 것이라는 우려 등이다. 사업성 평가에 따라 강도 높은 구조조정이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도 많았고, 퇴출될 기업을 최대한 빨리 솎아내 빅배스를 단행해야 한다는 급진론도 있었다.

부동산 시장 회복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인다. 미국의 금리인상은 마무리됐다는 분석이 높지만, 현재의 높은 금리수준이 빠른 시간 내에 낮아질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면 금융권을 동원해서 어려운 PF 사업장 연명하도록 할 게 아니라 구조조정과 지원을 병행해야 한다. 시장 논리에 맞춰 도려낼 곳을 도려내야 이제 믿고 투자해도 되겠다는 신뢰도 생긴다.

[이 기사는 이데일리가 제작한 34회 SRE(Survey of credit Rating by Edaily) 책자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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