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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년간 사람 사이의 관계는 차츰 랜선으로 대체됐다. 화상프로그램을 가동한 뒤 혼술을 마시며 비대면 술자리를 여는 것도 이제는 익숙한 풍경이 됐다. 이에 익숙하지 않은 세대들은 ‘코로나 블루’를 호소하고 있다.
아이들의 교육 문제는 더욱 걱정스럽다. 지식 전달과 학습이야 학교를 나가지 않아도 충족할 수 있다. 학원을 통해서나 인터넷강의(인강)을 통해 부족한 학업은 어느 정도 보충할 수 있을 것이다.
학부모들 사이에선 원격수업이 장기화하면서 학력격차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한번 벌어진 격차가 훗날 대학입시에도 영향을 미칠 테니 이를 걱정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관계 단절의 시대를 사는 아이들은 사회성을 키우기 어렵다. 교사와의 상호작용이나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인성·예절·배려·공감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집에만 있던 아이는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학년이 올라갈수록 남을 배려하는 것을 배우기 시작한다. 자기중심적이었던 사고에 공감능력과 사회성이 보태어지면서 배려심이 싹트기 시작한다. 요즘은 외동딸·아들이 흔한 시대이니 아이들의 ‘사회화’ 과정은 학교에서 체득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배움이다.
학교는 지식만 전달받는 곳이 아니다. 지적 성장은 물론 신체적·정서적·사회성의 발달을 꾀하는 전인교육의 장이다. 아무리 교권이 추락했다고 하지만 학교의 근본 목적은 변하지 않는다.
다행히 교육부는 올해 초중고 학생들의 등교를 최대한 늘릴 방침이라고 한다. 유은혜 부총리는 올해의 과제로 ‘학교의 일상 회복’을 꼽았다. 학력격차도 문제이지만 아이들의 사회성 발달에 공백이 생기는 것은 교육당국도 바라지 않을 것이다.
지난해 5월 등교개학을 앞둔 수도권의 한 학교는 교문 앞에 ‘너희가 와야 학교는 봄이다’란 현수막을 내걸었다. 산책 중 우연히 보게 됐지만 여운은 오래갔다. 새삼스럽게 학교와 학생의 의미를 떠올리게 된 계기였기 때문이다.
신학기에 학생들이 등교하지 못하는 학교는 ‘춘래불사춘’이다. 봄이 와도 학생들이 오지 않으면 봄날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진정한 봄날을 맞으려면 사회 구성원이 합심해야 한다. 모두가 방역수칙을 철저히 지키고 감염확산을 막는 노력을 기울일 때 학교는 진정한 봄날을 맞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