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대상 이 작품]은행나무숲, 아크릴박스.. 오로지 나를 위한 음악회

- 심사위원 리뷰
1인을 위한 시공간展 '회귀; 回歸'
벅찬 감동의 작은 음악회
숲속 아크릴 박스에서 음악인과 독대
전혀 새로운 방식의 신선한 음악회
  • 등록 2018-05-31 오전 7:59:39

    수정 2018-05-31 오전 10:19:44

[현경채 국악평론가]“버들은 실이 되고, 꾀꼬리는 북이 되어…”의 노랫말로 시작되는 이 노래는 한국 가곡(중요무형문화재 제30호) 중에서 가장 느린 노래인 ‘이수대엽’이다. 여류가객 조의선의 청아한 목소리로 단 1인의 관객을 위해 공연했다. 지난 4월 13~15일 서울숲 내 은행나무 숲에서 있었던 1인을 위한 시공간展 ‘회귀; 回歸’이다.

1인을 위한 음악회는 상당히 특별했다. 봄비가 촉촉이 오는 서울숲에서 공연된 ‘이수대엽’은 일순간에 마음의 빗장을 스르르 열리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었으며, 전통음악에 대한 이해 여부를 넘어 진한 여운을 남기며 상당히 특별한 음악으로 다가왔다.

서울숲 내 은행나무 숲에 투명 아크릴 박스가 설치되고, 그 안에서 프라이빗한 연주를 한 음악회로 진행했다. 관객이 입장하면 연주자와 짧은 대화를 진행하며 어떤 음악을 연주할지는 그 자리에서 정하게 된다. 세상에 이런 음악회는 처음이었고, 무척이나 신선했다. 숲에서 연주하니 자연의 품에서 연주하는 느낌이 들었고, 박스 안에서도 투명한 아크릴 너머로 자연을 통째로 들여놓은 셈이니 자연과 하나가 되는 순간일 것이다. 아크릴판으로 만든 무대는 참여자로 하여금 음향의 울림을 통해 짧은 시간 안에 집중된 시공간을 느끼게 했고, 동시에 투명한 무대의 구조로 숲의 자연을 그대로 느끼는 특별한 효과가 있었다. 숲 속에 설치된 아크릴 박스는 작은 미술 작품으로 전시된 듯했고, 또한 투명해서 보다 많은 인원의 감상이 가능한 이점이 있었다.

이색적인 음악회를 기획한 사람은 바로 해금 연주자 김남령이다. 그는 지난해 독일 뷔르프부르크 여행 중 나무가 우거진 어떤 공원의 산책길에서 노래를 부르던 사람을 만나게 되었고, 숲과 노래가 잘 어울린다는 생각에 몰래 동영상을 찍다가 눈이 마주치게 되어, 결국 1인 관객으로 독대한 작지만 너무나 강렬했던 아름다운 공연을 서울숲에서 실현하게 된 것이다.

여행 중 인상 깊었던 음악적인 작은 경험을 실제 공연으로 가능하게 콘셉트를 잡아준 인물은 최근 튀는 경기민요 공연으로 세계음악계를 주목시킨 글램록 스타일 민요록밴드 ‘씽씽’의 경기 소리꾼 이희문이다. 김남령은 이희문컴퍼니의 전속 해금주자로 활동하고 있다.

1인을 위한 시공간展 ‘회귀; 回歸’ 공연은 김남령(해금), 문세미(가야금), 박명규(대금), 조의선(정가)의 4인의 젊은 연주자가 하루 4시간 동안 3일간 진행했다. 재미난 기획의 연주회를 보기 위해 일부러 찾아온 사람들도 있었고, 숲에서 산책을 나왔다가 횡재를 한 사람들도 있었다. 나무가 빼곡하게 있는 숲 속에서 단 한 명의 관객을 위한 연주를 하는 콘셉트의 음악회는 진지했다. 관객은 음악에 대한 호기심 어린 질문을 하기도 했고, 듣고 싶은 음악을 청하기도 했다. 자신만을 위해 작은 둘만의 공간에서는 소리가 참 잘 들린다. 공연장에서와 다른 맛의 한 사람만을 위한 음악회는 생전 처음으로 초집중해서 전통음악을 듣게 되는 공연이다. 시간은 비록 5분여의 짧은 시간이지만, 음악에 대한 강한 인상을 남기기에 적당했고, 관객들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벅찬 경험이 되었을 것이다.

최근 참신한 기획으로 국악을 신선하게 담아내는 젊은 음악가들이 흥미로운 일련의 공연이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여류가객 박민희(중요무형문화재 제30호 가곡 이수자)의 1인 관객을 위한 ‘가곡실격: 방5’(2014)이라는 공연은 관객이 작은 방에서 오롯이 가곡이라는 생경한 음악과 대면하게 되는 참으로 생뚱맞은 음악회였다. 5개 방으로 설정됐고, 그 방안에서 관객은 진정한 소리와 독대하는 방식을 진행했다. 지난해 11월에는 설치미술가 최정화의 집이자 작업실인 ‘가슴소’에서 가야금 연주자 서정민의 콘서트 ‘HOME’도 신선하고 흥미로웠다. 오래된 양옥집(종로)의 주차장-지하실-작업실-작은방-가든 등을 이동하며 가야금이 연주되었고 소수의 관객은 연주자의 이동 경로를 따라 함께 이동하며 음악을 감상하는 특별한 콘서트였다.

요즘 젊은 국악인들은 이런 깜찍한 발상을 현실로 만들어 낸다. 일상과 예술, 그 경계의 공간에서 의도된 소리와 자연의 소리가 함께 조화로운 그 곳, 숲에서의 1인을 위한 시공간展 ‘회귀; 回歸’는 초록초록한 자연에서 청성곡도, 가야금 산조도, 아리랑도 공연되어 독특했다. 짧지만 강렬한 회귀의 시공간으로 초대가, 다양한 숲이 공간에서 자주 만나게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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