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삼성은 몇년전에도 세계무대에서 명함을 내밀 수 있는 기업이었다. 이 전 회장의 말에는 최근 수년동안 삼성이 일궈낸 성장세가 이전보다 훨씬 대단하다는 뜻도 담겨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이 그렇다. 삼성 계열사들은 놀랍게 발전했으며 성장하고 있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국내는 물론 해외언론들도 삼성의 성장비결을 앞다퉈 분석하고 있다. 삼성을 이끄는 힘은 무엇일까?
삼성 창업주인 이병철 선대회장에서부터 면면히 이어져오는 삼성의 경영철학, 고비때 마다 대전환을 이뤄냈던 경영사례 등을 살펴보면서 삼성전자 등 주력사들의 올해 경영전략과 목표, 미래준비 등을 3회에 걸쳐 조명한다. (편집자주)
"10년, 20년 가지고는 안 될 겁니다"
지난 2008년 이건희 전 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무엇이 10년, 20년 갖고는 안된다는 것일까? 삼성전자 같은 기업을 다시 탄생시키려면 이 정도 시간 갖고는 어림없다고 이 전 회장은 강조했다.
지난해 삼성전자(005930) 매출은 136조원이었다. 영업이익은 10조9200억원. `조(兆)`는 천문학적 단위다. 외환위기 당시만 해도 사람들에게 생경했던 숫자다. 삼성전자는 `조` 단위를 사람들의 귀에 익숙하게 만들었다. 매출에서, 이익에서, 설비투자에서 그랬다.
삼성그룹 전체 매출은 200조원을 훌쩍 넘어선다. 세계 어느 주요도시를 가건 삼성 로고를 찾는 일은 어렵지 않다.
무엇이 삼성의 이같은 성장을 만들어 낸 것일까?
대다수 전문가들은 세가지를 꼽는다. 오너십을 통한 빠른 의사결정, 이같은 의사결정을 단시간 내에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시스템, 그리고 인재다. 최근 일본 경제신문 닛케이는 삼성전자 성공비결로 과감한 투자, 오너십 경영, 글로벌 경영 등을 꼽기도 했다.
하지만 이같은 국내외 찬사에도 불구하고 삼성에게는 고민이 있다. 그리고 그 고민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삼각편대가 필요하다`
대부분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삼성의 성공요인들은 달리 말하자면 `삼성의 삼각편대`로 표현할 수 있다.
이건희 전 회장(빠른 결정이 가능한 오너경영)과 전략기획실(종합조정기능과 빠른 실행) 그리고 스타 CEO들(인재)이다. 과거 삼성 성공비결을 분석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른바 `삼각편대`는, 지금 삼성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 전 회장은 지난해 말 정부 특별사면을 받았지만 아직 경영에 복귀하지 않은 상태다. 전략기획실 역시 2008년 해체됐다. 전략기획실 복원에 대해 이 전 회장은 "계열사들이 알아서 하면 된다"며 선을 그었다. 윤종용, 이기태, 황창규 등 `삼성`하면 떠올려지던 CEO들도 현직을 떠났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지난해 눈부신 실적을 기록했다. 매출 136조원, 11조원에 육박하는 영업이익을 내는 기업이 됐다. 전세계 IT기업 중 사실상 1위다.
올해 밴쿠버 동계올림픽은 온나라를 들썩이게 했고, 온국민에게 감동을 줬다. 스피드스케이팅 단거리(500m)에서 남녀선수가 동반 금메달을 따내다니, 상상하기 조차 어려웠던 일이다.
경제 전문가들은 삼성전자의 IT기업 세계1위 기록 역시 이에 못지 않다고 평가한다. 전국민이 감동해야 할 일이라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4대 주력사업 중 메모리반도체, LCD, TV에서 세계시장 1위를 놓치지 않고 있다. 휴대폰 역시 1위인 노키아를 맹추격중이다. 이 과정에서 소니로 대표되는 일본 전자업계의 자존심은 이미 구겨진 상태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일본기업 10개를 엎어놓아도 삼성전자 하나를 못 따라오는 게 현실이다.
어떤 일본인이 수년전 "한국인들에게 맞아죽을 각오를 하고 썼다"며 한국과 한국인을 비판하는 책을 낸 적이 있었다. 지금 일본인들 중에는 일본 자국민들에 맞아죽을 각오를 하고 일본과 일본기업을 비판하고 삼성을 찬양하는 사람들이 있다. 격세지감이다.
하지만 삼성의 고민은 간단치 않다. 왜 그럴까. 삼성 고위관계자들은 "지금 실적은 지난 10년간 쌓아온 노력의 결과물"이라고 입을 모은다. 앞으로 10년, 20년을 위해서는 다시 대변화와 창조, 혁신을 거듭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도 미래 삼성의 10년을 자신할 수 없다는 얘기다. 10년 전 일본 소니가 지금과 같은 상황을 예상했겠느냐는 지적도 삼성 내부에서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삼성 현직 CEO들이 세간의 따가운 시선에도 불구하고, 이 전 회장의 경영복귀를 언급한 것은 이같은 고민 때문이다.
◇리더십이 이끌어 온 삼성, `300년 기업` 향한 질주 언제까지
삼성전자의 성공 뒤에 반도체 신화가 자리잡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삼성은 반도체 사업의 성공을 기반으로 LCD, 휴대폰 등 세계 일류사업들을 키워냈다.
이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과감한 투자`와 `오너십 경영`이었다. 삼성은 당시 반도체 선진국이었던 미국과 일본이 설비투자를 줄이던 1987년 당시 과감하게 3라인 투자에 나섰다.
당시 삼성은 반도체에 그룹의 명운을 걸었다. 삼성의 반도체 사업을 두고 당시 재계에선 `무모하다`라는 평가가 대부분이었다. 미국과 일본업체들이 주류였던 시장에 후발주자로 뛰어들어 성공한다는 것은 당시로선 상상하기조차 힘든 일이었기 때문이다.
LCD분야 역시 반도체의 경험이 바탕이 됐다. 삼성은 일본에 비해 늦게 시장에 진입했지만 과감한 의사결정과 투자를 통해 6년만에 1위를 차지했다.
만일 삼성이 당시 상황에만 안주했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반도체와 LCD사업이 없는 삼성, 아니 지금의 한국경제를 생각해 보라.
삼성의 전신은 지난 1938년 3월22일 호암이 설립한 삼성상회(현 삼성물산)다. 올해로 창립 72주년을 맞게 된다. 호암이 꿈꾸던 300년 기업의 관점에서 보면 삼성은 이제 막 걸음마를 지나 달리기를 연습하기 시작한 어린아이다.
때문에 삼성의 시선은 과거나 화려한 현재보다는 미래에 맞춰져 있다. 지금의 삼성은 일견 화려하다. 하지만 미래는 누구도 담보할 수 없다.
"호황일 때 불황을, 불황일 때 호황을 대비하자"고 강조한 호암의 정신이나 "10년전만 해도 삼성이 구멍가게 같았는데 까딱 잘못하면 (다시) 그렇게 된다"는 이 전 회장의 지적이 와닿는 이유다.
이 전 회장은 경영복귀에 대해 "삼성이 어려워진다면 (나서서) 도와주겠다"고 말했다. 삼성을 바라보는 많은 시선들은 후계자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사장으로 쏠리고 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이 부사장의 경영능력이 검증되지 않았다고 보고 있다. 삼성 내부의 많은 사람들은 "이 부사장 자신이 누구보다 그같은 점을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의 준비와 치열한 고민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전하고 있다.
법적으로 삼성의 경영승계 논란은 정리됐다. 하지만 적지않은 시간동안 이슈가 됐던만큼 이 부사장에게는 여전히 짐이 될 수 있다. 이 전 회장은 과거 회의석상에서 "전문경영인이 낫다, 오너경영인이 낫다, 이런 것은 다 우스운 얘기다. 경영 잘하는 사람이 좋은 거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 부사장이 짐을 벗는 방법은 한가지 뿐이다. 삼성을 세계적 기업으로 계속 성장도약시켜 국가경제에 기여하는 것이다. 열심히 투자하고 일자리를 만들어 내면서 국민경제를 이끌어 가는 것이다.
호암이 꿈꾼 300년 기업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이 전 회장은 그 바통을 넘겨받아 전력으로 질주해왔다.
하지만 앞으로 달려가야 할 거리는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많이 남아있다. 지금까지 삼성이 많은 부분을 보여줬지만 앞으로 이뤄내야 할 것이 더 많다는 의미기이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