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이명박 정부의 대표공약인 `금산분리 완화`와 관련해 최근 전해지는 내용들을 보면, 도대체 누가 누구에게 속고 있는 지 의문이다.
최근 인수위를 비롯해 이 당선자측의 금산분리 완화 관련 발언들을 보면, 선거 당시에 비해 계속 톤 다운되는 양상이다. 지난 15일엔 `4대 기업의 은행지배 불허`를 공식화했다.
이로 인해, 이명박 정부의 금산분리 완화 공약은 알맹이 빠진 공허한 메아리가 됐다. 출자총액제한제도의 개선 또는 폐지가 예고돼 있기는 하지만, 4대 기업을 제외한 나머지 기업들은 크게 여력도 없다.
금호그룹의 대우건설 인수를 보자. 이들 기업들은 다른 M&A에 적극 나서고 있고, 이들 M&A의 특징은 축적된 자금을 활용한다기 보다는 차입에 의존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한마디로 여윳돈은 없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래서 당선자 측과 인수위의 아이디어는 `연기금`과 기업 및 중소기업들이 참여하는 `펀드`로 모아진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연기금과 기업들이 참여하는 펀드 활용론은 새로운 것도 아니다.
이미 윤증현 전 금융감독위원장과 박병원 우리금융지주회장 등이 여러 차례 그런 취지의 입장을 밝혔다. 실질적으로 거대 은행에 자본을 투자할 곳이 마땅치 않다는 현실적 이유가 크게 작용하고 있다.
`현실론`으로 포장된 이 방안은 결국 기업을 분명하게 끌어들일 유인책을 찾지 못했다는 사실과 다를 것이 없다. 그 동안에도 재무적 투자 형태로 기업들이 은행 지분을 인수한 경우는 우리 금융史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과거 한미은행에는 삼성과 대우가 10%씩의 지분을 투자했었다. BOA와 함께 3대 축을 형성하고 한미은행을 경영했다. 지금은 인수위의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황영기 전 우리은행장도 이 때 삼성측 지분으로 한미은행의 사외이사를 맡으며, 은행업에 대한 이해를 넓혔다.
지금은 합병 과정을 거쳐 국내 4대 은행 지위를 확보하고 있는 하나은행도 과거 하나·보람은행 시절부터 국내 대기업들이 주요 주주로 활동했다.
그러나 지금은 모두 유야무야됐다. 삼성은 한미은행이 매각되는 과정에서 지분을 철수했다. 이 같은 과정은 분명한 지배권을 가지지 못하는 은행 지분 확보에 기업들은 별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줬다.
지금은 금융지주회사법에 의해 총 4개의 금융지주회사가 탄생한 상태지만, 금융지주회사법 제정 초기에도 이 문제는 항상 논란이었다.
기업이 입맛을 다실만한 유인은 제공하지 못하면서 공약 실천에만 연연한다면, 결국 `기업들의 팔을 비틀어 자금만 조성(펀드)한다`는 비난을 감수해야 할 듯 하다.
또 하나의 함정은 연기금이다. 겉으로만 보면, 연기금이 비교적 안정적인 은행에 대한 주식 투자비중을 늘려 긍정적인 측면이 없지 않지만, 금산분리 완화 취지와는 거리가 멀다.
특히 곽승준 위원의 `산업은행의 민영화와 금산분리는 연계돼 있다`는 발언에서 알 수 있듯, 인수위는 `금산분리 완화`의 의미를 `정부의 경영권을 민간에 넘긴다`는 데 방점을 찍고 있으나, 은행에 대한 연기금의 지배권 강화를 금산분리와 연결시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연기금이 강조하는 `투자 독립성`을 굳이 폄하할 생각은 없으나, 재경부 관할을 복지부로 바꾸는 것과 차이가 없고, 소위 낙하산 논란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을 게 자명하다.
`연기금 역할론`이 윤 전 위원장을 비롯해 박병원 우리금융회장 등 관료 출신들에게서 주로 나오고 있는 점도 곱씹어봐야 할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