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에 王자 생기게 뛰고 또 뛰었다”(VOD)

‘플라이, 대디’서 원맨쇼 이문식
딸의 복수 위해 권투 배우는 役… 20일동안 12㎏ 빼
“제대로된 연기 안되면 삶의 의미가 없어”
  • 등록 2006-08-04 오후 12:20:00

    수정 2006-08-04 오후 12:20:00

▲ 삼청동의 카페에서 만난 이문식. 10년 전 그는 이 동네에 살았다. “뭔가 운치가 있을 것 같아 옮겼는데, 주민보다 경찰이 더 많은 동네였다”면서“그나마 월세를 못내 쫓겨났다”고 히죽 웃었다.
[조선일보 제공] 처음엔 전날 술이 덜 깬 줄 알았다. 홍시빛 얼굴을 연방 손으로 가리는데, 두툼한 오른쪽 눈두덩이 언뜻 보인다. 다래끼다. “이 얼굴에 별 달라지는 것도 없겠지만, (눈을 찡긋하며) 윙크를 해도 티나요?” 다래끼에 이렇게 신경쓰는 ‘소심남’은 이문식이다.

공연 10분 전까지 대학로에서 전단지 돌리던 연극배우 시절 이후 10년 만에 처음이라는 그의 다래끼는 사실 요즘 이문식 인기의 방증이기도 하다. 작년 봄 ‘마파도’를 시작으로 ‘공필두’ ‘구타유발자들’ 등 주연 캐스팅(조연이 아니다!)이 이어졌고, 최근 종영한 드라마 ‘101번 째 프로포즈’에서는 생애 최초로 멜로 주연까지 맡아 ‘분신술’을 써야 할 정도로 동분서주했다. 3일 개봉하는 ‘플라이, 대디’에서 그는 여고생 딸의 복수를 위해 권투를 배우는 허약한 아빠 장가필. “이 영화 크랭크인하던 날 둘째 아들 재승이가 태어났어요. 영화는 부성애를 얘기하는데, 나는 여전히 집에도 잘 못 들어가는 비정한 아빠죠”라고 말하는 입술이 까칠하다. 물론 덕분에 관객은 이문식의 다른 어떤 작품보다도 키득거리고 눈물 흘리며 2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되었지만.

‘플라이, 대디’를 위해 그는 20일 동안 12㎏을 뺐다. 중년의 돌출형 복부를 왕(王)자 새겨진 근육으로 만들어야 했기 때문. 마을 버스와 100m 경주하듯 질주하는 장면과 고등학교 복싱 챔피언과의 마지막 혈투를 보고 나면 그가 치렀을 육체적 고통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간다. 그는 “마라톤 영화도 아니고, 밤이면 밤마다 헛구역질할 때까지 뛰어다녔다”면서 “평생 연기에는 단 한 번도 만족해본 적이 없지만, 이번에 체력적으로는 스스로에게 정말 뿌듯했다”고 했다.

개인 이문식은 상대방의 배를 그러안고 넘어지게 만드는 대화 상대지만, 배우 이문식은 바닥이 보이지 않을 만큼 고집스러운 욕망의 덩어리다. 그는 스스로의 성격에 ‘자학적’ ‘극단적’이라는 수식어를 사용하면서 “연기가 안되면 삶의 의미가 없다. 마약이라도 해서 원하는 연기를 할 수 있다면 정말 의지하고 싶은 심정”이라고까지 했다.

이문식 연기의 매력은 서민적인 소탈함과 강요하지 않는 웃음. 하지만 그 이미지가 같은 장르에서 너무 반복적으로 소비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도 있다. 그는 담배를 집어들더니 “그보다 더 큰 숙제는 내가 맡은 캐릭터 행동의 정당성을 내 스스로에게 이해시킬 수 있는가의 문제”라고 했다. 영화에서 ‘왜 장가필은 왜 신문지에 칼을 숨겨 고등학생을 찾아갈 수밖에 없는가’, ‘왜 이 캐릭터는 이 행동을 할 수 밖에 없는가’ 하는 문제를 스스로 납득하는 게 먼저라는 것이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처음 전기가 들어온 전북 순창의 시골 마을(그는 늘 고추장 CF는 자신이 해야 한다고 노래를 부른다) 소년은 이제 전 국민이 사랑하는 배우가 됐다. 500원이 아까워 분식집 라면을 못 먹었던 대학로 연극배우 시절, 월세를 내지 못해 단칸방에서 쫓겨났던 삼청동 시절은 이제 격세지감으로 남아 있지만 그는 여전히 “카드값 중 음식값 비중이 가장 높다”고 겸연쩍어하는 ‘시골 촌놈’이다. ‘서민적 이미지’를 너무 상업화하는 것 아니냐고 일부러 살짝 가시 돋친 질문을 던졌을 때 그는 열쇠고리 하나를 꺼냈다. 자신이 출연했던 드라마 ‘다모’의 팬들이 만들어줬다는 그 열쇠고리의 뒷면에는 ‘초심’(初心)이라고 적혀 있었다.


▲영화 `플라이대디`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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