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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엔 영어 달려 설움... 다시 돌아올 땐
호주 시드니 시내 한복판에 위치한 마이어(MYER) 백화점 지하 1층 식당가(街). 다닥다닥 붙어 있는 2~3평 크기의 점포들 중 ‘Zucchini Bros’라는 간판이 보인다. 강준호(52)·김연(48)씨 부부가 4년8개월 전 이민 가방을 메고 와서 자리잡은 보금자리다. 부부는 이곳에서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이탈리안 음식을 직접 만들어 판다. 피자를 굽고 커피를 만드는 솜씨가 수준급이어서 단골 손님도 꽤 생겼다.
지난 11일 점심시간, 메뉴 주문을 받느라 쉴 틈 없이 바쁜 강씨 부부를 만났다. “생활이 즐겁냐?”고 말을 건네자, “너무 좋다”는 대답이 부부의 입에서 동시에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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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씨 부부는 한국보다 훨씬 ‘인간적인’ 자녀 교육환경과 아름다운 자연 그리고 풍요로운 노후 생활에 이끌려 호주를 택했다. 서울에서 외국계 회사 임원으로 일하던 강씨가 6년 전 호주에서 파견 근무를 하던 중 결심했다고 한다.
현재 식당 수입은 월 600만원. 수입은 서울 직장생활 때와 거의 비슷하다. 하지만 쓰는 돈이 엄청 줄었다. 서울에서는 생활비(월 300만원)와 자녀 교육비(월 150만원) 부담이 컸지만, 시드니에선 생활비가 서울의 3분의 1 수준이고 교육비는 거의 없는 셈이다. 대신 골프(이용료 2만~5만원 수준) 등 여가생활에 월 120만원을 쓴다. 부인 김씨는 “이곳에선 음식료, 의복비, 기름값이 싸서 생활비 부담을 별로 느끼지 않는다”며 “가족들끼리 공연을 보거나 여행을 가는 것이 중요한 일상생활이 됐다”고 말했다.
시드니 생활이 쉬운 것만은 아니었다. 2~3년이 지났을 때쯤에는 다시 서울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고 한다.
“처음엔 영어로 된 소스 이름을 외우는 것부터가 어려웠어요. 영어로 주문을 제대로 받지 못해 다른 음식을 만든 적도 있고요.” 부인 김씨는 “억울한 일이 있어도 영어를 잘하지 못해 제대로 항의하지 못한 적도 많았다”고 말했다. 사업 초기엔 동양인이 이탈리안 음식을 만드는 것을 현지인들이 어색하게 바라봤다. 손님들의 입맛에 맞는 커피를 만드는 것도 힘들었다. 강씨는 “커피 기술을 익히느라 커피를 몇 잔이나 마시며 연습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라고 했다. 하지만 지금은 하루에 250여명의 손님이 찾을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부부는 지금 또 다른 꿈을 꾸고 있다. 두 아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하는 5년 후쯤, 시드니 인근 블루마운틴(Blue Mountains)으로 이사 가는 것이다. 이곳에서 작은 카페를 열고 동네 사람들과 어울리며 평온하고 넉넉한 삶을 사는 노후를 준비하고 있다.
강씨는 이때쯤이면 한 달 수입이 190만원 정도로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호주 정부가 만 65세부터 지급하는 노인 연금(매주 1인당 200달러)과 카페로 벌어들이는 수익(60만원)을 합친 금액이다. 여기에다 20년 넘게 조금씩 저금해온 돈을 더하면 시골에서 생활하는 데 전혀 지장이 없을 뿐 아니라, 1년에 서너 번 정도는 부부가 오붓하게 여행을 다닐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있다. 호주에선 노인연금뿐 아니라 의료보장 제도(메디케어·Medicare)가 잘 돼 있어 영주권이나 시민권을 가진 사람이면 암과 같은 큰 병에 걸리더라도 비용부담이 거의 없다. 강씨는 요즘 색소폰을 배우는 데 열심이다. 훗날 카페를 찾은 손님들에게 들려주기 위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