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통상 성공한 여성들은 두 갈래의 길을 걷는다고 믿는다. 야망을 솔직히 드러내는 여성. 이런 부류는 제법 리더십을 발휘한다. 후배들도 꽤 따른다. 간혹 남성들의 질투를 산다. 생각보다 능력이 없는 경우도 간간이 있다. 반면 야심을 꽁꽁 싸매 철저히 숨기는 여성. 꿈이 없어 보인다는 단점이 있다. 상대적으로 남성들의 견제도 피해 간다. 결정적인 순간에 능력을 발휘하곤 한다. 재미난 점은 두 부류의 성공한 여성 모두 자신이 걸어왔던 길을 부인한다는 것이다.
어찌 됐든 대표적 여성 금융인으로 꼽히는 신순철(54·사진) 신한은행 부행장은 이런 틀에서 다소나마 벗어나 있는 듯하다. 제3회 세계여성경제포럼 2014(WWEF)에 연사로 나서는 신 부행장은 “둘 다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다”고 단언했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해야 할 일을 다하고 하늘의 뜻을 기다린다’는 뜻의 문구가 좌우명인 신 부행장의 성공스토리를 가감 없이 들어봤다.
1979년 대전여상을 졸업하고 막 조흥은행(현 신한은행)에 입행한 새내기 은행원 신순철의 하루는 바빴다. 여성 행원의 주 업무였던 입출금부터 지점의 살림살이를 도맡는 서무까지 모두 그녀의 몫이었다. ‘커피 심부름’도 늘 신순철 차지였다. 그래도 국내 최대 은행에 다닌다는 자부심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원래 순응적인 성격이던 신순철도 ‘더 큰’ 업무를 맡고 싶어하는 마음이 생겼다. 같이 입행한 남성 직원이 넥타이와 정장을 빼입고 대출, 외환 등 굵직굵직한 업무를 맡은 것을 보면서였다. 알고 보니 호봉도 차이가 났다.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 때문에 차별을 받고 있는 점이 불합리하게 느껴졌다. 신순철은 그때부터 지금은 없어진 ‘행원 전환고시’를 준비했다.
막상 공부를 시작하니 ‘어렵다’는 생각뿐이었다. 문답(問答) 모두 ‘한문’으로 작성돼 있어 한문부터 다시 공부했다. 합격의 문은 바늘구멍같이 좁았다. 기껏해야 1년에 2~3명 붙는 게 고작이었다. 남편 뒷바라지에 아이도 돌봐야 해 하루에도 몇 번씩 포기를 생각했다. 그럴 때마다 이를 악물고 다시 시작했고, 결국 7차례 낙방 끝에 붙었다.
A지점장은 어느 날 부하 직원 B과장을 불러 비중 있는 업무를 해볼 생각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나 평소 능력이 출중하다고 느꼈던 B과장의 입에서 나온 답변은 의외였다. “제가 과연 그 일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A지점장은 이 말 한마디에 ‘B과장은 실력에 비해 꿈이 크지 않구나’란 오해를 하기 시작했다.
반면 C과장에게서는 “적임자인 제게 맡겨주세요”라는 대답을 들었다. 하지만, C과장은 과거 능력보다 과중한 업무를 처리하다가 펑크를 내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결국 이 업무는 묵묵히 자기 일을 해왔던 D과장 몫으로 돌아갔다.
“3명의 과장 모두 승진을 앞두고 있었죠. 야심이 없어 보였던 B과장이나 욕심이 많았던 C과장에게 중요 업무를 맡기기 쉽지 않았겠죠. A지점장은 조직을 위한 결정을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일까. 신 부행장의 방에는 ‘진인사대천명’이란 글귀가 크게 적혀 있다. 그녀의 좌우명이다. “비단 여성에게만 적용되는 문구는 아니에요.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기면 최선을 다하는 거죠. 그러다 보니 이 자리까지 왔다고 생각합니다.”
‘부행장’인 그녀에게는 숨은 ‘조력자’가 한 명 있다. 바로 인생의 동반자인 남편이다. 남편도 한가하진 않다. 한번 일을 나가면 며칠을 해외에서 보내야 하는 항공사 기장이다. “정신적인 조언을 많이 해줬죠. 제가 지점에 있을 때는 우리 직원들에게 밥도 많이 샀지요. 전문직인 남편이 조직생활을 하는 저를 보면서 ‘대리만족’을 느꼈던 것 같아요.(웃음)”
그녀는 꾸준한 ‘독서’가 지금의 신순철 만들었다고 믿는다. “초등학생 시절 동네에 도서관이 생겨 매일매일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어요. 책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상대를 파악하는 능력이 생기니 사람들과 더 나은 관계를 만들어 왔다고 봅니다.”
한국의 워킹맘에게도 조언을 잊지 않았다. “당장 유료보모를 쓰면 경제적으로 마이너스가 되겠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커리어나 경제적인 면에서나 모두 플러스로 전환될 수 있다는 의지를 갖고 당차게 살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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