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숲은 도토리 나무 육형제가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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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안양 수리산
  • 등록 2007-09-20 오전 9:26:36

    수정 2007-09-20 오전 9:26:36

▲ 수리산 산림욕장에 들어서는 길. 단풍나무와 신갈나무가 행인을 맞는다.

 
[조선일보 제공] 식물들은 대개 ‘까칠’하다. 온도와 습도에 민감하고, 토양을 가린다. 하지만 숲에서도 잡초처럼 어디서나 잘 자라는 녀석들은 있기 마련. 경기도 안양 수리산 산림욕장에서 조건을 가리지 않고 쉽게 번식하는 성격 좋고 체력 좋은 나무들을 만나고 왔다. 우리나라 산천 곳곳에서 뿌리 내린 나무들이다. 흔하지만 단단하고, 강해서 아름답다.


촌스러운 이름을 얻어야 오래 산다

수리산 자연학습장 초입에 가지를 뻗은 나무들은 이름들이 참으로 토속적이다. 가장 먼저 만날 수 있는 것이 팥배나무. 물방치나무라고도 부른다. 팥처럼 붉은 열매를 맺고, 배나무처럼 흰 꽃을 피워서 팥배라는 이름을 얻었다. 숲 어디서나 잘 자라는 나무. 잎과 열매가 아름다워 가로수로도 쓰이는데, 도심에서도 씩씩하게 잘 자란다.

때죽나무도 있다. 굵은 나무 기둥 위로 마치 사람 살이 튼 것처럼 생긴 물결무늬가 나있다. 옛날 사람들은 이 무늬를 보고 “꼭 목욕 오래 안 해서, 때가 죽죽 밀린 것 같다”며 때죽나무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촌스런 이름 덕에 산에서도 들에서도 잘 자란다.



‘가짜’가 더 잘 살더라

숲 초입 곳곳엔 가죽나무도 있다. 가중나무라고도 부르는데, ‘가짜 죽나무’란 뜻이다. 죽나무는 잎을 먹을 수 있지만, 가죽나무의 잎은 식용으로 쓸 수 없다. 성장이 빠르고, 20~25m 높이까지 쑥쑥 아무데서나 잘 자란다. 겨울에 잎이 떨어진 자국을 보면 꼭 호랑이 눈처럼 보인다고 해서 호안수(虎眼樹)란 이름으로도 불린다.

숲 해설가 박유서(65)씨는 “원래 가짜들이 악착 같이 잘 자란다”며 “죽나무보다 가죽나무의 생장속도가 훨씬 빠르다”고 말했다.

숲 중간에 심어져 있는 리커다소나무는 일본에서 들여온 외래종이다. 우리나라 소나무들은 나무 줄기가 깨끗하게 잘 자라는 반면, 리커다소나무들은 나무 줄기에 맹아(萌芽)가 곳곳에 움터서 지저분해 보인다. 목재로서 가치가 없는 셈. 그래도 한 번 심어놓으면 끈질기게 잘 사는 강한 생명력을 자랑하는 나무다.


고약한 향으로 버티다

약수터를 넘어가면 누리잠나무가 있다. 분홍색 꽃받침 위에 맺힌 터키색처럼 푸른 열매가 아름답기 그지 없다. 대신 냄새가 몹시 고약하다. 박유서씨는 “분뇨냄새가 난다”는 표현을 썼다. 예쁜 얼굴을 지독한 향으로 감추고 숲으로 뛰어든 전사 같은 나무다.


상수리나무, 임금님 수라상에 올라 얻은 이름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숲은 독수리 오형제 대신 ‘도토리 나무 육형제’가 지킨다. 상수리나무, 갈참나무, 졸참나무, 굴참나무, 떡갈나무, 신갈나무가 그 주인공. 참나무과의 나무들로 우리나라 숲 어디서나 잘 자란다.

도토리 나무 육형제 중 누가 제일 잘났을까? 박유서씨가 들려준 옛날 이야기가 재밌다. “옛날 임진왜란 때 피난을 갔던 선조가 도토리묵을 먹은 기억을 잊지 못하고 그 나무를 찾아서 다시 수라상에 묵을 올리라고 했어요. 그 나무가 상수리나무예요. ‘수라상 위에 올라가는 도토리’라는 뜻으로 원래 상수라나무라고 부른 것이지. 그래서 상수리 나무가 제일 잘났냐…, 근데 알고 보면 민가에선 졸참나무의 도토리를 제일로 치거든요. 근데 또 굴참나무는 도토리 열매를 둘러싼 재질로 코르크를 만들 수가 있고, 갈참나무는 제일 이파리가 무성하고 푸르게 잘 자라고, 신갈나무는 잎을 떼어서 신에 깔면 시원하고….” “그럼 다 잘난 거잖아요.” “그렇죠! 다 튼튼하고 나름 잘났어요. 그러니 이 육 형제가 지켜주는 우리나라 숲은 다 아름답고 잘났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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