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잔 하나에 380억원” 중국 고미술 투자 열풍[찐부자 리포트]

중국夢에 명·청 황실 도자기 가격 폭등
1996년 6억원→2022년 136억원 22배↑
소더비·크리스티·본햄 3대 경매 거래 활발
돈 되는 예술품이자 부자들의 지적 사치품
세금 유리 부동산·주식 외 대체 투자처로 부상
  • 등록 2022-12-11 오전 11:27:00

    수정 2022-12-11 오후 7:49:47

[이데일리 백주아 기자] “중국 고미술은 돈이 되는 예술품이자 부자들의 지적 사치품이라고 볼 수 있죠. 알면 알수록 깊어지고 배울수록 눈에 들어오는 재미가 있으니 수집가로서 굉장한 자부심을 느낍니다.” (30년차 수집가 정우철 씨)

지난달 29일 세계 3대 경매 회사 크리스티 홍콩 현장에 나온 청나라 건륭 황제(1736~1795)시기 제작된 황실용 도자기가 8억106만 홍콩달러(한화 약 136억원)에 낙찰됐다. 이는 경매 추정가(최저 5000만~최고 8000만 홍콩달러)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다. 치열한 경합 끝에 새 주인을 찾은 도자기는 앞서 1996년 11월 3일 크리스티 홍콩에서 354만 홍콩달러(6억원)에 낙찰된 이후 다시 세상에 나왔다. 20여년 새 가격이 20배 이상이나 뛰었다.

지난 11월 29일 홍콩 크리스티 경매 현장에서 낙찰된 청대 건륭 시기 황실용 도자기. (사진=독자 제공)
부유층 사이에서 ‘중국 고미술품’이 새로운 투자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자본시장 불안에도 거액의 뭉칫돈이 중국 고미술 경매 시장으로 몰리는 이유는 중국의 경제적 위상이 높아지고 있어서다. 수집가들이 경쟁적으로 시장에 뛰어들면서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시진핑 ‘중국몽 실현’ 선언 후 고미술 시장 활기

중국 고미술이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때는 시진핑 시대에 들어서면서부터다. 시 주석이 지난 2012년 공산당 총서기 선출 직후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의미하는 중국몽(中國夢) 실현을 선언하면서 중국 고미술 시장도 전기를 맞았다. 문화예술 부흥에 동참하는 중국 수집가들이 서양인이 소장한 골동품을 가격에 구애받지 않고 몽땅 사들이면서 경매 가격도 폭등했다.

왼쪽부터 2014년 소더비 명나라 성화제 닭 항아리 술잔. 지난 10월 9일 홍콩 소더비 청대 건륭 황실 도자기. 2017년 크리스티 홍콩 명대 가정 황실 도자기. (사진=소더비·크리스티)
가장 대표적 사례가 지난 2014년 4월 8일 소더비 경매에서 낙찰된 ‘닭 항아리 술잔(鷄缸杯·계향배)’이다. 명나라 성화제(1465~1487) 때 만들어진 이 잔은 당시 중국 도자기 사상 최고가인 2억8100만 홍콩달러(당시 환율 기준 380억원)에 팔렸다. 입찰가(1억6000만 홍콩달러)보다 2배 이상이나 비싼 가격이었다. 구매자는 류이첸 선라인 그룹 회장으로 그는 이탈리아 천재화가 모딜리아니의 걸작 ‘누워있는 나부’를 소유한 세계 미술 시장의 거물로 알려졌다.

지름 8㎝ 크기 수탉과 암탉, 병아리가 그려져 있는 이 술잔은 황제와 황후, 신하와 백성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소더비 측은 ‘명나라 도자기 기술’의 정수라고 평가했다. 중국 역대 황제들이 계향배 모양에 매혹돼 이후 모방작도 많이 나왔지만 실제 황실에서 사용한 술잔은 현재 3점도 채 남아 있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크리스티 등 유명 경매회사도 중국 고미술에 관심

중국 고미술 투자 열풍은 현재 진행형이다. 전 세계 금융시장 불황에도 거액 자산가들이 값비싼 미술품을 경쟁적으로 수집하면서 해외 경매 시장은 되레 활황세를 유지하고 있다.

특히 중국 고미술에는 중국 자본이 대거 투입되면서 치열한 경매 경쟁이 이어지고 있다. 이에 소더비, 크리스티, 본햄 등 세계 유명 경매 회사를 비롯해 영국, 미국, 프랑스, 홍콩 등 다양한 박물관과 갤러리도 중국 고미술을 본격적으로 다루며 많은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다.

지난 2019년 영국 런던 크리스티 중국고미술 경매 현장. (사진=독자 제공)
지난 10월 홍콩 소더비 경매에서 청대 건륭 황실 도자기는 1억7746억 홍콩달러(약 300억원)에 낙찰됐다. 그물 모양의 화려한 꽃병은 총 6명의 구매 희망자들이 30분 넘게 75회 이상의 경합을 벌인 결과 대만의 한 사업가 손에 들어갔다. 숨 막히는 입찰 경쟁에 경매 추정가(최저 6000만~최고 1억2000만 홍콩달러)를 넘는 금액에 판매된 것이다. 이 제품은 1971년 10월 18일 크리스티 런던 경매에 나온 후 중국 한 고미술 박물관에 전시된 이후 30년 만에 공개됐다.

이 외에 지난 2000년 소더비 홍콩에서 4404만 홍콩달러(당시 환율 기준 6억6000만원)에 낙찰된 명나라 가정제(1522~1566) 황실 도자기는 17년 후 크리스티 홍콩에서 2억1385만 홍콩달러(약 320억원)에 낙찰됐다.

지난 3일 서울 강남구 제이피(J.P) 갤러리에서 아이비 찬 에스케나지 런던 갤러리 컨설턴트가 강의를 하고 있다. (사진=백주아 기자)
중국 고미술 범주는 도자기부터 옥, 청동, 칠기, 회화, 서예, 가구, 불교 미술, 직물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재료와 양식에 따라 선택의 폭이 넓기 때문에 수집가들은 자신의 취향에 따라 방향성을 잡고 맥락 있는 작품을 수집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지난 3일 방한한 아이비 찬 에스케나지 런던 갤러리 컨설턴트는 “최근 가장 인기 있는 제품은 명나라와 청나라 시대의 도자기와 옥 조각”이라면서도 “수집은 매우 개인적인 선택의 영역”이라고 전했다. 이어 “중국 미술은 전 세계 미술사학자들에 의해 수세기에 걸쳐 연구돼 온 만큼 많은 정보가 있고 수집가마다 관심이 있는 영역을 선택하고 배우면서 좋은 컬렉션을 구축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영국 런던대 동양아프리카대학(SOAS) 박사이자 11년간 크리스티 런던 스페셜리스트로 활동한 중국 고미술 감정 관련 최고 전문가로 꼽힌다.

중국 고미술품은 일반 예술품과 달리 제작 단계부터 등급이 매겨진다. 황실·관료·민간 등 어디에서 누가 사용할 물건인지에 따라 가치가 이미 정해진 셈이다. 일반 예술품이 창작 이후 평가·해석이 더해져 가치가 높아지는 것과는 비교되는 지점이다.

국내 유일 중국 고미술 갤러리를 운영 중인 김대윤 J.P갤러리 대표는 “현대미술품은 작품 진위 여부를 비교적 쉽게 확인할 수 있지만 중국 고미술품은 진위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고도의 안목이 필요하다”며 “보다 고전적 도자기를 선호한다면 송대나 원대의 모노크롬(단색) 계열의 정요, 균요, 용천요를 눈여겨 볼 만 하다. 색채감이 있는 도자기를 수집하고자 한다면 명·청시기의 폴리크롬(여러 색)계열 중 분채, 오채, 청화유리홍 등을 위주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세(稅)테크’에도 유리…“출처 명확해야 가품 피해 막을 수 있어”

국내 자산가들도 재테크 측면에서 중국 고미술을 주식, 부동산 외 대체 투자 포트폴리오 중 하나로 주목하고 있다. 특히 고미술품은 소장 시 세금에 유리하다. 소득세법 21조에 따라 과세 대상 중 100년 이상 된 고미술품은 10년 이상 보유 후 양도 시 양도가액의 90%(10년 미만 80%)를 필요경비로 인정한다. 90%는 공제하고 나머지 10%에 대해 지방소득세를 포함해 22%의 세율을 적용한다. 특히 종합소득세와 합산하지 않기 때문에 추가로 세금을 납부하지 않아도 된다. 예를 들어 10년 이상 보유한 중국 도자기를 100억원에 양도(매도)했다면 필요경비를 제외한 10억원에 대해서만 과세(22% 적용)해 세금은 2억2000만원이 된다. 소장 이후 가치 상승분은 수집가의 몫이다.

4년 차 수집가 남현호 씨는 “20여년 전부터 관심만 갖다가 최근 본격적으로 수집을 시작했다”며 “당연히 주식과 부동산과 마찬가지로 재산 가치를 보고 수집을 하지만 얼마 오르면 팔아야겠다는 마음보다는 수백년 전 사람이 썼던 물건을 알아가고 공부하면서 느끼는 뿌듯함이 있어서 되팔기보다는 상속이나 증여를 염두에 두고 있다”고 말했다.

청나라 강희시대(1661~1722) 제작된 배 모양의 화병(왼쪽)은 파리에서 소장되어 오다가 지난해 크리스티 경매에 출품돼 남현호 씨의 손에 쥐어졌다. 청록색 유약이 칠해진 18세기 청나라 화병(오른쪽)은 1900년대초 전설적인 영국 중국도자기 수집가 ‘마커스 이즈키엘’ 컬렉션으로 100년 넘게 보관되다 소더비 중국 고미술 경매에서 공개된 이후 승산당 박영종 씨가 소장하게 됐다. (사진=백주아 기자)
다만 주의해야 할 것은 가품이다. 국내 중국 고미술 분야 종사자 가운데 작품을 시대별로 감식하고 평가할 수 있는 딜러는 사실상 전무한 실정이다. 이에 가품을 진품으로 속여 유통하는 업자들로 수집가들이 피해를 보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중국 도자기와 옥기를 수집하는 승산당 박영종씨는 “국내 고미술상으로부터 구입한 제품이나 외국 사이트에서 산 제품 모두 감정을 받으니 한 점빼고 모두 가품으로 판명됐을 때 ‘진품을 구하기 정말 어렵구나’라는 걸 배웠다”며 “내 눈보다 좋은 전문가의 눈을 믿고 사용자가 누군지, 소장자는 누군지 등 출처(provenance)가 있는 진품을 중심으로 수집하면 실패할 확률이 줄어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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