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이스터섬과 생물다양성의 날

  • 등록 2016-05-20 오전 8:19:02

    수정 2016-05-20 오전 8:19:02

환경부 제공.
세계 불가사의로 꼽히는 거대 석상 ‘모아이’로 유명한 태평양의 이스터섬. 과거에 수많은 야자나무로 숲이 우거지고 전성기에는 인구가 2만명에 이를 정도로 풍요로웠다고 한다. 하지만, 네덜란드인이 1722년 섬에 도착했을 때는 황량한 자연에서 3000여명 정도의 원주민들이 힘겹게 살고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스터섬 몰락의 원인에 대해 많은 연구결과가 있는 데, 유력한 학설은 모아이 운반을 위한 벌채로 숲이 사라졌고 먹을 것이 부족해진 원주민간 전쟁으로 인구가 감소했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섬의 마지막 나무가 베어진 후에도 원주민들이 잘 살았지만, 유럽인들이 들여온 천연두 등 질병에 많이 죽고 노예로 팔려가 인구가 감소했다는 의견도 있다. .

모아이가 만들어진 것을 볼 때 섬의 생태계가 주민들의 의식주를 지탱하기에 부족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지속가능하지 못한 자연자원의 이용으로 생물다양성이 감소하면서 문명이 극단으로 몰렸고, 침입 외래질병으로 치명타를 입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우리는 이스터섬의 사례를 과거의 일로만 치부해서는 안된다. 오늘날 지구라는 섬에도 급격한 생물다양성 감소의 빨간 불이 켜졌다. 세계자연기금(WWF)의 지구생명보고서 2014에 따르면 생물다양성이 지난 40년간 52% 감소했으며, 생물다양성협약 생물다양성과학기구(IPBES)의 금년 보고서도 벌, 나비 같은 수분매개 곤충이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농업 생산에 타격은 물론, 동식물과 미생물로 얽힌 생태계의 균형이 깨져 인류의 생존이 위협받을 수도 있다는 것을 경고하는 것이다.

인류는 자연자원과 생태계 서비스에 의지해 살아가고 있어, 생물의 멸종은 우리의 일상생활에 치명적인 영향을 준다. 일례로 우리 식탁에 오르는 바나나는 파나마병 곰팡이에 매우 취약하다. 그런데 꺾꽂이로 증식된 유전적 획일성으로 인해 파나마병의 국제적 확산과 함께 멸종 위기로 몰리고 있다. 생태계 다양성이 낮을 경우 조만간 직면할 수 있는 상황의 전주곡인 것이다.

자연만이 아닌 우리와 후세대를 위해서도 생물다양성을 보전하기 위한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 종교에서도 생물다양성의 중요성을 가르치고 있다. 모든 사물들은 독립적 존재가 아니라 서로 영향을 끼치고 의존하면서 촘촘한 그물망으로 엮여 존재하므로 우리와 후세대의 평안과 행복을 위해서는 풀 한포기라도 아끼고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스터섬의 라파누이들은 과거 문명의 흔적으로 모아이를 남겼다. 학자들은 지구가 인간활동의 흔적으로 점철된 ‘인류세’(人類世)라는 새 지질연대에 들어섰으며, 50년내에 현존 생물의 30~50%가 멸종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인류가 플라스틱과 콘크리트를 화석으로 남기고 사라질 수도 있는 임계점(tipping point)이 얼마 남지 않았을지 모른다는 것이다.

이번달 22일은 유엔이 정한 생물다양성의 날이다. 올해 주제는 생물다양성이 사람들의 삶을 계속 지탱할 수 있도록 모든 차원에서 생물다양성 보전을 고려(Mainstreaming Biodiversity)하자는 것이다.

우리 일상에서도 이를 쉽게 실천할 수 있는 데,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는 과유불급(過猶不及)의 자세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자연자원을 사치(奢侈)하는 것보다는 좀 모자란 듯 향유하며 사는 것이 생물다양성 보전과 후세대에게 큰 도움이 되는 삶이라는 것이다.

<정연만 환경부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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