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간 탈없던 간… 어느날 ‘간암 4기’ 공포로

[위기에 처한 한국인의 간 ③]
B·C형 간염자 간암 확률 ''100배''
민간요법이 오히려 간 손상 불러
지방간 등 간질환자 ''폭음'' 금물
  • 등록 2008-12-03 오전 9:57:00

    수정 2008-12-03 오전 9:57:00

[조선일보 제공] "이것만 했더라면 간암·간경화에 걸리지 않았을 텐데…."

간암은 5년 생존확률이 20%도 안 되는 무서운 암이다. 특히 간암이 발병해도 대부분 증상이 없거나 있어도 미미한 경우가 많아 '말기가 돼서야 암인 줄 알았다'는 얘기도 심심치 않게 듣는다. 이 때문에 40세 이상 남성, 주 3회 이상 마시는 애주가(愛酒家), 간염 바이러스 보균자라면 '간암'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버릴 수 없다. 간경화도 간암만큼 무섭다. 간암·간경화 환자 3명의 얘기를 통해 미리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지 알아본다.

1. B형 간염 바이러스 있는데도 정기검진 안 받아

이모(55)씨는 35년 전 B형 간염 바이러스 보균자라는 사실을 안 뒤부터 몇 년간은 의사의 말에 따라 바쁜 시간을 쪼개 열심히 정기검진을 받았다. 그 때마다 의사는 "별 문제 없다"고 했다. 얼마 뒤부터 정기검진이 시간과 돈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고, 어느 날부터 병원을 멀리했다. 그렇지만 별 일 없이 30여 년이 흘렀다.

몇 개월 전부터 밥맛이 없고, 2~3개월 동안 체중이 9㎏이나 빠졌다. 부인과 함께 병원을 찾은 그에게 전해진 비보(悲報)는 '간암 4기, 신장 위의 부신에도 암이 전이된 상태'라는 것이었다.

▲ ▲ 헬스조선

B·C형 간염환자들은 간암에 걸릴 확률이 다른 사람에 비해 100배나 높다. 간암환자에서 B형 간염환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55~60%나 된다. 이 때문에 간염 환자들은 정기검진을 자주 받아야 한다. 하지만 이씨처럼 간염 바이러스가 있어도 별다른 증상이 없는 간염 보균자들은 정기검진을 잘 받지 않는 경우가 많다.

세브란스병원 소화기내과 김도영 교수는 "B형 간염 바이러스 보균자들은 증상이 없으면 별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바이러스는 언제든 활동할 수 있다. 정기검진을 받지 않는 사람 중 몇몇은 2~3년 뒤에 간암 진단을 받고 난 뒤에 온다"고 말했다.

대한간학회는 간암을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은 정기검진뿐이며, 간염바이러스 보균자들은 3~6개월에 한번씩 반드시 간 초음파, 간 수치 검사 등 정기검진을 받도록 권고하고 있다.

2. 암 수술 뒤 상황버섯 먹고 간 더 나빠져

최모(57)씨는 몇 개월 전 간암 수술을 받았다. 의사는 "다행히 간암 초기에 발견해 수술 결과가 좋으며, 회복만 잘 하면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렇게 병원 문을 나선지 한 달도 채 안 돼 최씨는 얼굴에 누런 황달이 끼고 누운 자리에서 일어설 기력조차 없어 결국 다시 병원을 찾았다. 의사는 "간 상태가 심하게 나빠져 현재로서는 항암치료도 불가능하다"고 했다. 수술이 잘 된 최씨의 상태가 이처럼 나빠진 원인은 아는 사람이 중국에서 구해서 보내준 상황버섯을 달여먹은 것 외에는 설명할 방법이 없다고 의료진들은 말했다.

누군가가 '간이 안 좋다'는 말이 나오면 '영지버섯이 좋다' '아니다 상황버섯이나 헛개나무가 좋다' '그보다는 인진쑥, 봉삼이 좋다'는 등의 목소리가 난무한다. 하지만 간 질환이 있는 사람들은 이들을 먹지 말아야 하며, 불가피하게 먹을 경우라면 반드시 의사와 상의를 해야 한다고 전문의들은 말한다. 건강한 사람들에게는 별 문제가 없어도 간염 보균자, 지방간, 간경화, 간암 환자에게는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세브란스병원 소화기내과 한광협 교수는 "민간요법에라도 의지하고 싶은 심정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간에 좋다는 것들의 상당수가 어떤 성분이 얼마나 들어있는지 정확히 알 수 없기 때문에 먹지 못하게 말린다"고 말했다. 한 교수는 "간 질환이 있는 사람이 이들 약초를 먹은 뒤 약물 유도성 간염이 생기게 되면 치료가 늦어지거나 치료를 아예 할 수 없을 정도로 간이 손상될 수 있다"고 말했다.

대한간학회지 최신 호에 발표된 충남대 의대 강선형 교수팀의 논문에 따르면 환자들이 병원에서 처방받지 않은 약을 먹은 뒤 복통, 구토 등 독성 간염 증상을 보인 159건을 조사한 결과 민간 약제에 의한 것이 34%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3. 술 좀 먹었다고 간 이식까지 할 줄은…

건축회사를 경영하는 천모(47)씨는 경기 불황으로 회사가 위기를 맞게 된 뒤부터 밤마다 소주를 한 병 마시지 않으면 잠을 이루지 못했다. 수면부족에 만성피로까지 느낀 그는 동네병원을 찾았다가 알코올성 간염으로 진단 받았다. 며칠 간 입원한 뒤 퇴원하는 그에게 의사는 "무조건 술을 끊으라"고 신신당부했다. 하지만 그 뒤에도 사업이 잘 풀리지 않았고, 다시 술을 마셨다. 6개월 만에 복수가 차고 피까지 토하는 간경화 합병증으로 병원에 실려간 그는 현재 간이식을 기다리고 있다.

술은 알코올성 간 질환자는 물론 비알코올성 간질환자, 간염 보균자에게 간암·간경화를 부르는 '초대장'이다. 영동세브란스병원 소화기내과 김자경 교수는 "IMF구제금융 때나 요즘처럼 경제가 어려우면 B형 간염, 지방간 등 비교적 가벼운 간 질환이 있던 사람들이 폭음을 하다 심각한 간 질환으로 진행돼 병원을 찾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술로 인한 간암 환자의 약 90%는 직장이나 가족 중에 관심을 갖고 술을 끊으라는 잔소리를 하거나 병원에 가보라고 하는 사람이 없는 경우다. 가족이나 친구 등 가까운 사람들이 조금만 관심을 가져도 술로 인한 간경화나 간암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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