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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정남 기자] “중앙은행이 할 일은 파티가 막 무르익을 때 펀치 보울을 가져가는 것이다. (Take away the punch bowl just when the party is getting started.)”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을 가장 오랜기간(1951~1970년) 역임했던 윌리엄 맥체스니 마틴. 마틴 의장이 남긴 이 얘기는 중앙은행 역할론을 잘 함축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펀치는 칵테일이 섞인 파티 음료다. 중앙은행이라고 흥이 오르려는 파티를 끝내고 싶겠는가. 그래도 언제까지나 흥에 취해 술에 취해 비틀거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 뒷감당은 누가 할 것인가. 누군가는 술을 치우고 음악을 꺼야 하는 이유다.
마틴 의장이 정치적인 압력에 맞서 연준을 행정부 내의 독립기구로 격상시킨 인사인 것도 우연은 아니다.
행정부는 경제 성장, 더 정확하게는 경기 부양을 원한다. 하지만 마틴 의장의 말은 중앙은행은 ‘적절한’ ‘안정된’ 성장을 추구해야 한다는 의미다. 경기가 과열될 기미가 보이면 금리를 올려야 한다는 뜻이다. 행정부의 견제는 지금도 있긴 하지만, 어쨌든 미국 연준 총재의 한마디 한마디는 국제금융시장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예상치 못한 연준의 긴축 의지
미국 연준이 이번달 기준금리를 전격 인상한 것은 마틴 의장의 중앙은행론을 떠올리게 한다. 연준의 기조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유동성 파티’ 8년을 이제는 마무리해야 한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세계 경제가 ‘익숙지 않은 길’로 접어드는 것이다.
소규모 개방경제인 우리나라도 직접 영향권에 들어있다. 특히 우리 경제는 ‘절벽’ 얘기가 나올 정도로 위태위태한 상황이어서 우려된다.
미국이 이른바 양적완화(QE)를 시작한 건 지난 2008년 11월이다. 금융위기 파고에 장기국채, 주택저당증권(MBS) 등을 직접 매입해 시장에 돈을 푸는 비전통적 통화정책을 꺼내들었다. 양적완화 프로그램은 이후 세 차례에 걸쳐 2014년 10월까지 6년간 진행됐다.
미국이 이번달 금리를 올리고 내년 가파른 인상 속도를 암시하는 건 ‘양적완화는 이제 끝났다’는 확실한 신호다. 주식 채권 부동산 등 자산시장의 유동성 파티도 끝났다는 의미다. 서향미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금리 인상은 예상했지만 내년 세 차례 인상 신호는 예상치 못했다”고 말했다.
미국 뿐만 아니다. 아직도 양적완화 프로그램을 진행 중인 유럽 일본 등도 최근 출구전략 신호를 보내고 있다.
문홍철 동부증권 연구원은 “FOMC는 예상보다 긴축적이었다. 이런 흐름은 연준 외 중앙은행들도 마찬가지다”면서 “수년간 선진국 중앙은행은 경쟁적인 통화 절하에 나섰지만 앞으로는 그 흐름이 바뀔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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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경제 긴축 충격 클 수도”
가장 큰 관심사는 우리 경제에 미칠 영향이다. 가장 최근의 미국 금리 인상기는 2000년대 중반이었다. 미국은 2004년 6월~2006년 7월 25개월 동안 총 17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인상했다. 1.00%의 기준금리는 5.25%로 무려 4.25%포인트 인상됐다.
김천구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2000년대 중반 미국의 금리 인상에도 불구하고 경제 성장과 수출 등 국내 실물시장은 양호한 흐름을 보였다”고 말했다.
2000년대 초반 인상기(1999년 6월~2000년 5월, 4.75%→6.50%) 때도 국내 실물경제 흐름은 양호했다는 평가다. 인상기 당시 국내 경기는 외환위기 여파에서 벗어나고 있었으며, 회복기에서 확장기로 넘어가고 있었다.
미국이 금리를 올리는 것은 양호한 경제 기초체력을 기본으로 하는 ‘자신감의 표현’이라는 관측도 있다. 미국을 넘어 세계 경제의 회복은 우리 경제에도 마이너스(-)는 아니라는 얘기다.
다만 문제는 현재 경제 상황이다. 과거 2000년대 중반 우리 경제는 외환위기와 카드사태를 딛고 회복기에 있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각종 악재들이 한꺼번에 몰려오고 있다. 무엇보다 정국이 불안정하다. 가계부채 급증세는 미국 금리 충격의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 기업이 회사채 발행 등을 통해 자금 조달에 차질을 빚을 가능성도 거론된다. 기업은 이미 회사채 순상환에 나서고 있다.
금융권 고위인사는 “과거 미국의 금리 인상기 때보다 국내 상황은 더 좋지 않다”면서 “전세계가 긴축 기조로 돌아서면 충격이 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정책당국도 바빠졌다. 최상목 기획재정부 제1차관은 이날 오전 거시경제금융회의를 주재하면서 “시장 상황을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필요시 적절한 시장안정조치를 단호히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