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혜수는 “20대 때에는 옆구리에서 살점이 삐져 나와도 큰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지금은 피부관리 등 노력을 많이 한다”며 환하게 웃었다. 배우한기자 bwh3140@hk.co.kr | |
여전히 시간을 거스른 얼굴과 몸매임에도 “물리적인 변화를 막는 데 한계가 있다”는 걸 “체력적으로 느끼고, 거울보면서 느낀다”는 그는 연이은 강행군에도 피곤한 기색을 비치지 않았다. 대학생과의 불륜을 들킨 후에도 당당하게 “내가 뭘 잘못했는데”라고 외치는 <바람 피기 좋은 날>의 주부 이슬처럼 그의 대답은 막힘 없이 시원시원했다.
-<바람 피기 좋은 날>의 노출수위가 생각보다 낮다.
“소재가 바람이니까 높은 노출수위를 기대하는 것이 당연하겠죠. 영화가 야하긴 야해요. 대사와 소재만으로도 18세 이상 관람가가 충분하죠. (커피숍에서 남자에게 성기를 꺼내보라고 요구하는) 그런 연기를 천연덕스럽게 해내야 하는 제 심정이 어떻겠어요. 극중 그 남자도 웃기지. 꺼내보라니까 또 꺼내요.”
-바람난 유부녀 연기를 위해 특별히 준비한 게 있나.
“전문직을 연기할 때와 달리 이번엔 특별히 정보를 수집하진 않았어요. 바람난 이유는 사람마다 다 다르니 따로 연구할 필요가 없잖아요. 바람은 등장인물의 자유나 삶의 일탈을 반영하는 것에 불과해요. 캐릭터들이 심각한 연기를 펼치는 치정극도 아니니 자연스럽고 편안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초점을 맞췄어요.”
-심한 노출이 화제가 되는 경우가 많다.
“남들과 견줘서 노출을 어떻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 없어요. 그냥 저는 편한 대로 입어요. 전 신경도 안 쓰는데 과다노출 기사가 나오고 화제가 되더군요. 한쪽으로 과장되고 과잉된 이런 이미지가 핸디캡이 되기도 했어요. 아직도 자유롭지 못하죠. 하지만 굳이 제 외모를 어떤 틀에 맞출 필요를 못 느껴요. 무대나 스크린이 아닌 다른 공간에서는 자연인 김혜수로서 자유를 누리고 싶어요.”
“15세 때 철 없이 연기를 시작했지만 배우로서의 자의식을 가진 것은 20대 중반 때부터 예요. 그러나 확고하진 않았어요. ‘배우도 시도해 볼만한 특별한 거다’ 그 정도 수준이었죠. 자의식을 갖고 나서도 전형적인 이미지 반복에 대해 회의를 많이 했어요. 남들이 볼 때는 순탄한 과정을 밟은 것처럼 보이겠지만요.
1990년 말에 제가 배우로서 자질이 부족하다는 걸 절감했어요. 더 늦기 전에 다른 길을 찾자는 생각도 했고요. 그런데 내 인생에서 가장 활력 있고 아름다울 때 그리고 뇌세포가 왕성히 활동하던 때 했던 일에서 의미를 못 찾는다는 게 너무 억울했어요. 그래서 그만 둘 수가 없더라구요.”
-어떤 마음으로 배우의 길을 택했나.
“저는 어렸을 때부터 동경하는 스타도 없었고, 영화를 좋아하지도 않았어요. 우연한 기회에 광고촬영을 하면서 배우가 된 거죠. 고등학교 다닐 때는 어른들과 어울리는, 특별히 비중이 큰 취미활동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동국대) 연극영화과도 배우의 기본을 다지러 간 게 아니었습니다. 다른 전공을 하고 싶었는데 수업을 제대로 못 들어 성적이 원하는 만큼 나오지 않았어요. 우여곡절끝에 대학 가서도 감독을 더 꿈꾸었죠.”
-다양한 캐릭터에 대한 욕심이 많다.
“최근에 들어서야 가능해진 일이에요. 옛날엔 인터뷰 중에 ‘소비된 이미지를 재생산한다’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그게 예의 있게 한 말이지 사실 ‘너는 왜 똑 같은 것만 하냐’를 질문이잖아요. 본의 아니게 전형적인 모습을 10년 가량 끌어왔어요. 파트너(제작자)도 저하고 일하기 힘들었을 거예요. 저의 노력과 파트너들의 도움으로 이제야 예전 보다 여유가 좀 생긴 듯 해요.”
“어려서 연기를 하다 보니 또래들보다 앞서가는 면도 있었지만 상대적으로 부실한 점도 많다고 느끼며 책에 대해 강박관념을 지녔어요. 너무 바빠 개인시간이 없는데 집에 들어가서 바로 잠자리 들기엔 억울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때 잠을 쫓으며 책을 많이 읽었어요.
인스턴트 커피를 밥 숟가락으로 한 술 떠먹으면 머리가 총총해졌거든요. 콜린 윌슨과 프란츠 카프카의 책 등을 억지로 읽었지만 결국 소화 불량이었죠. ‘내가 이런 책 봤다’에 자족한 거죠. 시간은 빠르게 가는데 나는 소비되는 것 같아 아쉽고 허무한 시기가 있었어요.”
-거침없는 맹렬여성의 이미지가 강하다.
“타고난 맹렬여성은 전혀 아니에요. 연기를 일찍 시작하고 제 의지와 상관없이 많은 시간을 보내다 보니 개인적으로 부실한 것을 채우려는 강박이 있어요. 어떤 식으로든 부지런해지지 않으면 또래를 따라잡을 수 없다는 그런 강박. 그렇게 살다 보니 맹렬여성처럼 보이나 봐요.”
-혹시 해외진출 계획은 있나.
“계획을 세우면 뭐하나요. 누가 들어주나요(웃음). 자연스럽게, 운 좋게 기회가 주어지면 좋겠지만 그걸 목표로 두고 싶지 않아요.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한 것이 미래가 되고 역사가 되는 거잖아요. 뭐든지 자연스러워야 하죠.”
-파혼설 등 이상한 소문도 많이 돈다.
“별 이상한 소문들도 참 많죠. 그런 소문이 돌고 기사화 될 때면 ‘내가 참 유명해서 그렇구나’하는 생각 전혀 들지 않아요. 그렇다고 엄청 화가 나지도 않아요. ‘이건 또 뭐야’ 라는 생각이 들죠. 배우의 사생활이 대중의 관심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잖아요. 하지만 (낭설을 보도하는 것은) 인간에 대한 예의가 없는 거죠.”
-결혼 생각은 안 하나.
“지금은 결혼할 상대가 없어요. 신랑감이 있다 해도 일 때문에 결혼을 보류하거나 결혼을 하니까 일을 포기하는 경우는 없을 거에요. 결혼으로 삶에 소소한 변화가 있겠지만 그게 큰 것은 아니잖아요. 그리고 제 인생이 배우보다는 우선이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