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초년생이던 20대 때부터 선배들에게 지겹게 듣던 말이다. 돌이켜 보건대, 그 말이 20년 넘는 직장생활 내내 나를 옭아매는 올가미가 되지 않았나 싶다. (그 일이 나와 맞든 안 맞든) 나도 모르게 열심히, 우선순위가 회사 일인 삶을 살았던 것 같다.
선배가 돼 보니, 나 또한 후배들에게 ‘열심히, 잘, 일하는 20%가 되라’고 은연중 압박하고 있단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 단연 나만은 아닐 것이다. 최소한 1980년 이전 세대라면 대부분 동의하지 않을까. 30대 중에서도 공감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시대는 변했다. 회사가 딱히 인정하지 않는, 그 80%가 ‘조용한 반란’을 시작했다. 더 이상 내 삶의 가치는 조직이 원하는 20%로 사는 게 아니라고, 행동으로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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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도 ‘조용한 사직’ 현상이 속도감 있게 번지고 있다. 법으로 정해진 근무시간에만 일하고, 주어진 일 이외에는 하지 않겠다거나, 받는 월급만큼만 일하겠다는 사고방식도 여기에 해당한다.
이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달라진 직장문화의 단면이기도 하다. 급속도로 번진 ‘재택’ ‘칼퇴’ 현상 속에 주어진 일 이상을 해야 한다는 ‘열정페이’에 대한 반발 움직임이 커졌다. 코로나 확산으로 인해 위축된 소비심리를 살리기 위해 전 세계가 진행한 유동성 공급(시장에 돈풀기)의 후유증이란 분석도 있다. 부동산·주식·가상자산 등으로 돈이 유입되면서 가격을 끌어올리자, 이를 지켜본 젊은층은 노동의 가치에 회의를 느끼면서 줄퇴사를 했고, 정신적으로도 직장에서 이탈하는 현상이 늘었다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 그 결과는 어마어마한 사회적 손실로 이어지고 있다. 젊은층 고용이 어려워지면서 인건비 상승을 불렀고, 이는 인플레이션으로 연결됐다는 것이다. ‘조용한 사직’은 미래보다 현실을 우선시하는 경향이 높다보니 전 세계가 고민하고 있는 출산율 저하 현상을 심화시킨다는 해석도 있다.
‘조용한 사직’ 열풍은 20%에 들기 위해 나름 안간힘을 써온 기성세대, 일명 ‘꼰대’ 세대에겐 안 좋은 모습으로 비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기성세대에 대한 반감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된다.
무의식적으로 열정페이를 강요하거나 과도한 업무 부담으로 ‘번 아웃’ 상황을 만드는 일, 회사 내 왕따 현상을 방치하거나 복지엔 무신경한 모습 등이 그것이다. 무엇보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기성세대가 누린 혜택을 가질 수 없다는 상대적 박탈감이 크게 작용한다. 직장생활 20년을 해도 집 한 채 사기 어렵다는 좌절감, 적자가 커지는 국민연금을 보며 선배들의 노후까지 자신들이 책임져야 한다는 불안·불만도 ‘조용한 사직’ 열풍을 키우고 있다.
지금은 이를 조용히 실천하고 있는 후배세대에 대한 반감이 아닌, 그들을 끌어안을 수 있는 변화와 반성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