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령 1만원을 벌었다고 칩시다. 그걸 좋아라 하고 그냥 먹어 치웠다면 경영 마인드가 없는 겁니다. 그 돈으로 해외 수입이나 직접 제작을 하며 계속 투자해야 해요.”
얼굴은 분명 앳된 대학생인데 하는 말은 족족 ‘사장급’이다. 평범한 경영학도였던 최씨가 창업한 것은 학비가 필요해서였다. 그는 “악바리처럼 컴퓨터 앞에 앉아 밤을 부지기수로 세웠다”고 했다. 덕분에 1년 사이 체중이 10㎏이나 빠졌다. 이젠 학비를 벌고도 남아 친구들로부터 ‘재벌’ 소리를 듣는다.
그래도 여전히 수면시간은 하루 4시간을 넘지 않는다. 아침엔 직원들과 함께 고객 불편 사항에 대해 회의를 거듭하고, 밤엔 발이 부르트도록 동대문시장을 돌며 좋은 물건 사냥에 나선다. 그의 꿈은 졸업 후 자기 브랜드를 갖고 사업을 키워나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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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대학가에서 처음 등장한 서울여대의 ‘부자학 개론’ 강의는 수강신청 2분 만에 정원 350명이 채워졌다. 인터넷 커뮤니티 ‘20대 부자 만들기’는 개설 1년 만에 회원 수 6만명을 돌파했고,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 ‘재테크 코너’에는 책가방을 멘 앳된 얼굴들이 바글댄다.
“집 사기가 하늘의 별따기잖아요. 주택청약권 하나는 있어야 하겠더라고요. (청약부금은) 오래 둘수록 당첨 확률이 높으니깐. 게다가 3년 전엔 청약부금 이자율이 연7%대로 예금 금리보다 훨씬 높았어요.”(박현우씨)
대학생들에게 ‘노후’는 먼 장래 문제가 아니다. 적지 않은 대학생들이 준비하는 ‘현재형 화두(話頭)’다.
“취직해도 언제 잘릴지 모르는 세상 아닙니까. 그래서 정년이 따로 없는 주식투자를 은퇴 후 직업으로 삼으려고요.”
이렇게 말하는 김정석(25·전주대 3년)씨는 작년 7월 주식 시장에 뛰어들었다. 3년간 아르바이트로 번 400만원을 종잣돈 삼았다. 자신에게 익숙한 식료품과 게임업체 종목에 주로 투자하는데, 연 수익률이 20%가 넘는다. 장래 본격 재테크 전문가가 되기 위한 일종의 연습 게임이라고 했다.
웬만한 대학이면 주식투자 동아리가 3~4개씩에 이르고, 서울 노량진에 밀집한 부동산 공인중개사 학원 수강생의 30% 정도는 대학생이 점령했다.
1990년대말 코스닥 버블 때도 대학생들 사이에 주식투자 붐이 일었다. 그러나 그때의 ‘묻지마 투자’와 지금의 ‘계획된 부자열풍’은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한동철 서울여대 교수(경영학)는 말했다. 90년대말은 대박을 노리는 앞뒤 안 가리는 열정에 비롯됐다면, 지금은 “저금리 상황에 맞서 현실성 있게 재테크하는 개념”이라는 것이다.
20대 재테크 열풍의 원인은? 서윤석 이대 경영대학장은 “직장에 대한 불안감과 함께 ‘노력하면 나도 부자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가 공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평생 직장이 사라진 데 대한 20대의 ‘자위권(自衛權) 발동’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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