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시대)<3부>⑤고령화 파편을 피하려면..

앞서 늙은 선진국 연금개혁 `몸살`
공적연금 보완할 한국형 퇴직연금시스템 정착시켜야

  • 등록 2005-11-14 오전 11:55:20

    수정 2005-11-15 오후 1:22:08

[이데일리 지영한기자] “오래 사는, 장수(長壽)의 위험을 알아야 합니다. 자녀한테 손 벌리던 시대는 지났습니다. 제대로 된 노후생활을 위해선 체면이고 뭐고 다 버리고 일을 찾아 나서야 할 겁니다. 아니면 연금을 충분히 들어놓던지요.”

강창희 미래에셋투자교육연구소장의 말이다.

강 소장은 "이제 젊은 세대들도 ‘고령화시대’의 위험성을 깨달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의 말은 엄포나 과장이 절대 아니다.'사오정(45세가 정년)` `오륙도(56세까지 일하면 도둑놈)'의 시대에 노후는 `불안` 그 자체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고령화가 더 진전될 수록 그 불안감은 더 커지게 되어 있다.

재앙이 될 것이란 경고도 흔히 등장한다. 일해야할 젊은이 수는 급격하게 줄어들고 부양받아야 할 노인인구수는 급증한다.

그 불균형에 완충작용을 해줘야 할 국민연금은 더 큰 불균형, 이른바 `저부담-고급여`의 모순을 안고 심하게 흔들리고 있다. 곧 도입될 퇴직연금까지 부실하게 작동할 경우에는 재앙이다. 그 충격은 `쓰나미`를 무색케 할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 없다.



소위 ‘저출산·고령화’로 촉발된 연금시스템의 위기는 한국만의 걱정거리가 아니다. 이웃 일본에선 ‘소자화 ·고령화(少子化·高齡化)’라는 말로, 용어만 조금 다를 뿐 본질적으론 똑 같은 고민을 안고 있다. 홍콩도 2050년쯤이면 65세 이상 인구가 21%를 넘어설 것이라며 고령사회에 대한 걱정이 이마저만이 아니다. 서구사회는 아시아국가보다 이 같은 고민을 훨씬 앞서 경험했다. ‘오래 사는 위험’은 이미 글로벌 이슈가 된 지 오래다.   

◇ 세계 공통의 숙제‘오래 사는 위험’

세계 각국은 ‘오래 사는 위험’으로부터 근로자의 노후소득을 보장하기 위해 퇴직연금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국가마다 연금제도의 역사가 다르고, 사회·문화·경제적인 환경도 상이하다. 이에 따라 나라마다 운용중인 퇴직연금제도는 비슷한 듯 하면서도 다른 점도 적지 않다.

미국이나 영국, 일본의 경우엔 임의 퇴직연금제도, 즉 퇴직연금 가입여부를 기업과 근로자의 자율에 맡기고 있다. 스위스와 홍콩, 호주의 경우엔 퇴직연금을 아예 법적으로 가입하도록 강제화하고 있다.

퇴직연금의 형태도 다양하다. 확정급여형(DB)과 확정기여형(DC), 하이브리드형 등 다양한 제도를 허용한 곳이 있는가 하면 BD형 또는 DC형 하나만 선택하도록 한 나라도 있다.

하지만 각국이 퇴직연금제도를 도입한 배경에는 앞서 언급했듯이 ‘근로자의 노후소득보장’이 전제로 깔려 있다.

임의 퇴직연금제도를 실시하는 국가라도 세제 인센티브를 통해 퇴직연금 가입을 적극 유도하고 있다. 사실 공적연금의 위기가 부각되면서 세계 각국은 기업연금과 같은 사적연금의 역할에 더욱 의존할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 퇴직연금으로 공적연금 보완 

미국의 퇴직연금은 근무기간이 짧은 근로자에겐 퇴직연금의 수급권을 부여하지 않는 특징을 갖고 있다. 다시 말해 3~5년 이상 근속하면 50%의 수급권을 주고, 10년 이상 근무하면 100% 수급권을 주는 방식이다. 미국의 퇴직연금이 근로자의 노후소득보장 뿐만 아니라 우수 인력의 확보 수단으로 활용됐음을 보여준다.

미국은 퇴직연금 선택을 기업과 근로자의 자율에 맡기되 일정한 요건을 충족해야만 세제혜택을 부여하고 있다. 세제를 통해 퇴직연금을 유인하고 규제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미국의 기업연금제도는 여러 장점에도 불구하고 잘 사는 사람에게 혜택이 많이 돌아가고, 고비용을 요구하는 규제가 연금발전을 저해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일본의 퇴직급여는 60년대부터 확정급부형태의 후생연금기금과 적격퇴직연금을 중심으로 발전해왔다.

하지만 일본경제의 장기불황으로 연금운용 환경이 급속이 악화됐고, 적격퇴직연금과 후생연금기금의 적립부족현상이 심화됐다.

이에 따라 2001년 일본판 401(k)인 확정갹출(DC) 기업연금을 도입하는 등 연금개혁에 점차 속도를 내고 있다.

호주와 홍콩의 경우엔 강제적인 퇴직연금제도를 도입해 성과를 거두고 있다. 호주는 92년부터 소위 ‘슈퍼’라고 불리는 강제적 납부방식의 퇴직연금제도를 도입,퇴직자들의 노후보장은 물론이고 금융시장 발전을 도모하고 있다. 홍콩 역시 강제성공적금계획(强制性公積金計劃), 즉 MPF(Mandatory Provident Fund)제도를 통해 근로자의 노후소득보장을 대폭 강화했다.

칠레는 공적연금을 사적연금으로 통째로 전환한 케이스다. 이미 1924년 도입한 공적연금이 부실화되자 칠레는 1981년 모험에 나섰다. 확정급부형(DB) 구조의 공적연금을 개인연금저축계좌(PSA Personal Savings Account) 방식의 확정기여형(DC) 연금제도로 일대 전환한 것.

이 때문에 칠레의 사례는 미국도 큰 관심을 보일 정도로 연금개혁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고 있다. 

◇ 선진국 시도는 타산지석..한국형 퇴직연금시스템 조기 완성해야

퇴직연금제도는 근로자의 노후소득보장을 위해 도입됐다. 이에 따라 근로자의 노후소득 재원인 연금자산을 안정적으로 운용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주식시장 등 연금자산의 운용환경은 언제든 악화될 수 있다.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이에 따라 세계 각국은 퇴직연금이 지급불능 상태에 빠지지 않도록 퇴직연금의 적립과 운용과정에서 엄격한 감독을 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연금지급보증공사(PBGC)까지 설치하고 있다.

방하남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한국도 어떤 방식으로든 퇴직연금의 지급을 보장하는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미국의 PBGC와 같은 사후적인 대응도 중요하지만 영국과 홍콩의 경우처럼 퇴직연금의 적립과 운용과정에서 모니터링과 감독 등 사전적인 관리가 더욱 중요한 듯 싶다"고 조언했다. 

DB형은 그래도 사정이 나은 편. DC형 퇴직연금의 경우엔 연금자산의 운용리스크를 근로자가 모두 떠 안는 구조이다. DC제도를 앞서 도입한 선진 각국이 투자교육에 발벗고 나서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미국에선 80년대 DC제도가 도입되면서 투자교육이 활발해졌다. 미국에선 비영리기구(NPO)들이 투자교육을 주도하고 있다. 영국에선 관청을 중심으로 금융투자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 투자교육에 관한한 후발주자인 일본에선 정부와 민간이 금융경제교육을 위한 ‘로드맵’을 작성중이다. DC제도를 도입하는 한국으로선 ‘투자교육’은 결코 가볍게 볼 사안이 아니다. 

이준탁 ING생명 이사는 “일본에서 시행중인 중소기업 대상 ‘종합형’ 연금플랜도 한국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말했다. 퇴직연금사업자(금융기관)들이 대기업을 선호하고 있는 현실과 중소기업들의 비용부담 등을 고려할 때 다수의 중소기업들이 하나의 연금에 참여하는 길을 열어주자는 것이다. 

이럴 경우 중소기업들은 저렴한 비용으로 보다 나은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는 등 ‘규모의 경제’ 혜택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전문가들은 특히 각 나라마다 특성과 여건이 제각각이기 때문에 종합형 연금플랜을 포함해 우리나라의 상황에 가장 적합한 한국형 퇴직연금 플랜을 완성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 협찬 : 대한투자증권, 마이애셋자산운용, 미래에셋증권, 삼성생명, 신한금융지주, 하나은행,             한국투자증권, CJ투자증권
* 후원 : 금융감독원, 한국증권업협회, 생명보험협회, 자산운용협회, 현대경제연구원
* 도움주신 분들 : 고광수 부산대 경영학과 교수, 권문일 덕성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김진수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류건식 보험개발원 보험연구소 재무연구팀장, 방하남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신기철 삼성화재 상무, 오영수 보험개발원 보험연구소장, 이순재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 (가다나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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