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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당시 경북대 법의학팀은 6주간의 조사 끝에 아이들의 두개골에 남은 상처 등을 근거로 타살당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현재까지 사건의 범인은 밝혀지지 않았고, 많은 의혹만 남긴 채 미궁으로 빠졌다.
그런데 지난 1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나는 개구리 소년 사건의 흉기를 알고 있다’라는 제목의 게시글이 올라와 범인을 특정하는 새로운 주장이 제기됐다.
해당 글을 쓴 A씨는 지난 2011년 5월 14일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대한민국 3대 미스터리 사건’ 중 하나로 개구리 소년 사건을 재조명한 방송에서 피해자 두개골의 손상 흔적을 본 순간 범행도구가 버니어캘리퍼스임을 알아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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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그럼 대체 산에 버니어캘리퍼스를 누가 왜 들고 갔을까”라며 “그 지역 고등학생들이다. 물론 중학생도 섞여 있었을지도 모른다”며 당시는 선거일이라 공휴일이었고 어떤 동네든 그 동네를 휘어잡는 중고등학생 불량배 무리가 반드시 존재한다고 추측했다
A씨는 “산동네에서 자라본 남자들은 알 거다. 도롱뇽이 아니라 사실은 올챙이를 많이 잡으러 갔다. 양서류들은 습하고 햇빛이 잘 안 들어오는 쪽에 많아서 산이 있다면 한쪽 방위에만 산다. 남쪽에 산다면 북쪽엔 전혀 없고 북쪽에 산다면 남쪽엔 전혀 없다. 그 말인즉 무조건 산을 넘어 돌아서 반대편까지 가야 한다는 소리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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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버니어캘리퍼스는 공업이나 기술 쪽 고등학교 학생들이 신입생 때 많이 들고 다닌다”며 “(선거일이었던 공휴일에) 일진들이 집에 안 들어가고 산속에서 여럿이 본드를 불고 있다가 올라오는 아이들을 마주친 것”이라고 가정했다.
이어 “습관처럼 ‘뒤져서 나오면 몇 대’ 이러면서 돈을 뜯으려고 했을 것”이라며 “두개골 상처가 난 아이가 도망을 치다 잡혔는지 어쨌는지는 모르겠지만 바로 가방 속에 있던 그 철제 버니어캘리퍼스로 미친 듯이 헤드락을 건 상태에서 같은 곳만 때린 것”이라고 추정했다.
A씨는 어설프게나마 죽은 아이들을 매장했다는 점을 들면서 “물론 전원이 다 환각 상태는 아니었을 것”이라고 했다. 다만 “이미 머리를 여러 대 맞은 아이는 피를 흘렸을 거고 환각 상태고 그냥 집단으로 달려들어서 아이들을 살해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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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는 “해당 학교는 와룡산 바로 밑에 붙어있고 당시에 다른 학교 학생들이 학교로 걸어갈 때 그 학교 학생들만 산속으로 들어간다는 유머까지 있었다”며 “당시 학적부를 뒤지든지 아니면 당시 아이들을 가르쳤던 선생님들을 만나서 당시 문제아 학생들이 누가 있었는지 파면 100% 잡을 수 있다”고 확신했다.
이에 일부 누리꾼은 ‘버니어캘리퍼스로는 두개골을 깰 수 없다’ 등 반박을 이어갔다. 그러자 A씨는 이튿날인 2일 앞서 글을 올렸던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재반박 글을 올리며 자신의 주장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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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당시 현장 취재기자였던 김재산 국민일보 대구경북본부장이 김영규 전 대구경찰청 강력과장의 주장을 중심으로 펴낸 ‘아이들은 왜 산에 갔을까’라는 책에서 제기됐다.
김 본부장은 살해 동기도 없고, 범행의 도구도 없고, 금품을 요구하는 협박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 근거로 숨진 5명 중 세 명의 두개골에서는 상처가 나왔는데 각각 상처의 수와 모양이 제각각이었던 점을 짚었다. 실제로 경찰은 두개골에 남은 디귿자와 브이자 등 상흔을 보고 관련 범행 도구를 찾기 위해 노력했지만 끝내 찾지 못했다.
이를 두고 당시 법의학팀에서는 생전에 생긴 상처로 사망의 원인이라고 봤지만, 김 전 강력과장은 두개골 손상이 사후에 생겼을 가능성을 지적했다. 사망 후 유골이 발견될 때까지 11년 동안 홍수 등으로 밀려온 돌에 찍힌 사후 골절흔이라는 의견이다.
김 전 강력과장은 MBC와 인터뷰에서는 “우철원 군의 경우 25군데 외상 흔적이 있다. 범행 도구도 25개가 돼야 한다. (흔적이) 하나도 같은 형태가 아니다”라며 “경찰뿐 아니라 국과수까지 나서서 범행도구가 무엇인지 대한민국을 다 뒤졌다. 그런데 상처와 부합하는 도구를 찾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같은 주장에 유족 측에서는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CBS라디오에 따르면 전국미아실종자찾기시민의 모임 나주봉 회장은 “터무니없는 이야기다. 와룡산은 아이들이 늘 다니던 곳이다. 해발고도도 300m 정도로 깊은 산이 아니다. 저체온증으로 죽었다는 건 말도 안 된다”라고 반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