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개구리 소년 사건의 흉기를 알고 있다, 범인은…”

1일 온라인 달군 한 누리꾼의 주장
“버니어캘리퍼스로 두개골 내려친 듯”
  • 등록 2022-06-04 오후 10:40:00

    수정 2022-06-04 오후 10:40:00

[이데일리 송혜수 기자] 장기 미제 중 하나인 이른바 ‘개구리 소년’ 사건에 대한 새로운 주장이 제기됐다.

장기 미제 개구리 소년 사건 관련 한 누리꾼의 새로운 주장이 제기됐다.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개구리 소년 사건은 1991년 3월 26일 대구 달서구 초등학생 5명이 돌연 실종된 후 11년 만인 2002년 9월 26일 집 근처 와룡산에서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이다.

사건 당시 경북대 법의학팀은 6주간의 조사 끝에 아이들의 두개골에 남은 상처 등을 근거로 타살당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현재까지 사건의 범인은 밝혀지지 않았고, 많은 의혹만 남긴 채 미궁으로 빠졌다.

그런데 지난 1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나는 개구리 소년 사건의 흉기를 알고 있다’라는 제목의 게시글이 올라와 범인을 특정하는 새로운 주장이 제기됐다.

해당 글을 쓴 A씨는 지난 2011년 5월 14일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대한민국 3대 미스터리 사건’ 중 하나로 개구리 소년 사건을 재조명한 방송에서 피해자 두개골의 손상 흔적을 본 순간 범행도구가 버니어캘리퍼스임을 알아챘다고 했다.

A씨가 추정한 개구리 소년 사건의 범행 도구. A씨는 공업이나 기술 쪽 고등학교 학생들이 신입생 때 버니어캘리퍼스를 많이 들고 다닌다고 주장했다.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A씨는 “(전문가들은) 자꾸 용접 망치 같은 걸로 때린 거라고 한다. 그런데 망치로 힘을 균일하게, 두개골을 뚫지 않고 자국만 남길 정도로 힘을 조절해서 저렇게 여러 개의 같은 자국을 남길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 세게 마구잡이로 쳐도 저렇게밖에 나올 수 없는 도구였다는 소리다. 그게 버니어캘리퍼스다”라고 말했다.

그는 “그럼 대체 산에 버니어캘리퍼스를 누가 왜 들고 갔을까”라며 “그 지역 고등학생들이다. 물론 중학생도 섞여 있었을지도 모른다”며 당시는 선거일이라 공휴일이었고 어떤 동네든 그 동네를 휘어잡는 중고등학생 불량배 무리가 반드시 존재한다고 추측했다

A씨는 “산동네에서 자라본 남자들은 알 거다. 도롱뇽이 아니라 사실은 올챙이를 많이 잡으러 갔다. 양서류들은 습하고 햇빛이 잘 안 들어오는 쪽에 많아서 산이 있다면 한쪽 방위에만 산다. 남쪽에 산다면 북쪽엔 전혀 없고 북쪽에 산다면 남쪽엔 전혀 없다. 그 말인즉 무조건 산을 넘어 돌아서 반대편까지 가야 한다는 소리다”고 설명했다.

개구리 소년 두개골에서 발견된 상흔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그는 “이렇게 되면 어떤 문제가 발생하느냐면 100% 그쪽 동네 꼬맹이들과 붙을 수밖에 없다. 왜 우리 동네 왔느냐 이러면서 싸운다. 여기에 더해 그쪽 동네 불량배라도 만나면 진짜 답이 없다. 불량배 이야기하니까 뭐 특별한 줄 아는데 그땐 그런 게 흔했다”라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버니어캘리퍼스는 공업이나 기술 쪽 고등학교 학생들이 신입생 때 많이 들고 다닌다”며 “(선거일이었던 공휴일에) 일진들이 집에 안 들어가고 산속에서 여럿이 본드를 불고 있다가 올라오는 아이들을 마주친 것”이라고 가정했다.

이어 “습관처럼 ‘뒤져서 나오면 몇 대’ 이러면서 돈을 뜯으려고 했을 것”이라며 “두개골 상처가 난 아이가 도망을 치다 잡혔는지 어쨌는지는 모르겠지만 바로 가방 속에 있던 그 철제 버니어캘리퍼스로 미친 듯이 헤드락을 건 상태에서 같은 곳만 때린 것”이라고 추정했다.

A씨는 어설프게나마 죽은 아이들을 매장했다는 점을 들면서 “물론 전원이 다 환각 상태는 아니었을 것”이라고 했다. 다만 “이미 머리를 여러 대 맞은 아이는 피를 흘렸을 거고 환각 상태고 그냥 집단으로 달려들어서 아이들을 살해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개구리 소년들의 유골이 발견된 현장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법의학자들의 감식작업을 벌이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끝으로 그는 와룡산 인근 몇몇 학교를 표시하면서 “버니어캘리퍼스를 들고 다닐 만한 학교가 딱 하나 있다”라고 밝혔다.

A씨는 “해당 학교는 와룡산 바로 밑에 붙어있고 당시에 다른 학교 학생들이 학교로 걸어갈 때 그 학교 학생들만 산속으로 들어간다는 유머까지 있었다”며 “당시 학적부를 뒤지든지 아니면 당시 아이들을 가르쳤던 선생님들을 만나서 당시 문제아 학생들이 누가 있었는지 파면 100% 잡을 수 있다”고 확신했다.

이에 일부 누리꾼은 ‘버니어캘리퍼스로는 두개골을 깰 수 없다’ 등 반박을 이어갔다. 그러자 A씨는 이튿날인 2일 앞서 글을 올렸던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재반박 글을 올리며 자신의 주장을 이어갔다.

A씨가 올린 ‘마지막글’에서는 피해자들의 두개골 손상 부위를 토대로 당시 범인들이 흉기로 내려쳤을 상황을 상세히 설명하면서 “사소한 것 하나라도 단서를 잡으려면 할 수 있는 모든 상상을 총동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개구리 소년을 찾는 전단지 (사진=경찰청)
한편 개구리 소년 사건을 두고 수사 일선에 있던 경찰은 최근 아이들의 사망 원인이 타살에 의한 것이 아닌 ‘저체온증’이라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이는 당시 현장 취재기자였던 김재산 국민일보 대구경북본부장이 김영규 전 대구경찰청 강력과장의 주장을 중심으로 펴낸 ‘아이들은 왜 산에 갔을까’라는 책에서 제기됐다.

김 본부장은 살해 동기도 없고, 범행의 도구도 없고, 금품을 요구하는 협박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 근거로 숨진 5명 중 세 명의 두개골에서는 상처가 나왔는데 각각 상처의 수와 모양이 제각각이었던 점을 짚었다. 실제로 경찰은 두개골에 남은 디귿자와 브이자 등 상흔을 보고 관련 범행 도구를 찾기 위해 노력했지만 끝내 찾지 못했다.

이를 두고 당시 법의학팀에서는 생전에 생긴 상처로 사망의 원인이라고 봤지만, 김 전 강력과장은 두개골 손상이 사후에 생겼을 가능성을 지적했다. 사망 후 유골이 발견될 때까지 11년 동안 홍수 등으로 밀려온 돌에 찍힌 사후 골절흔이라는 의견이다.

김 전 강력과장은 MBC와 인터뷰에서는 “우철원 군의 경우 25군데 외상 흔적이 있다. 범행 도구도 25개가 돼야 한다. (흔적이) 하나도 같은 형태가 아니다”라며 “경찰뿐 아니라 국과수까지 나서서 범행도구가 무엇인지 대한민국을 다 뒤졌다. 그런데 상처와 부합하는 도구를 찾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같은 주장에 유족 측에서는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CBS라디오에 따르면 전국미아실종자찾기시민의 모임 나주봉 회장은 “터무니없는 이야기다. 와룡산은 아이들이 늘 다니던 곳이다. 해발고도도 300m 정도로 깊은 산이 아니다. 저체온증으로 죽었다는 건 말도 안 된다”라고 반박했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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