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지난 수년동안 서구 국가들로부터 `경제를 개혁해야 한다`는 쓴소리를 수시로 들어왔으나, 금융위기로 글로벌 경기후퇴가 발발한 뒤 이같은 지적은 자취를 감췄다. 전 세계 각국 정부가 위기 탈출을 위해 민간에 깊이 관여하는 `중국식 모델`을 채택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중국의 경제 개혁이 자연스레 정치 개혁의 초석을 깔고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중산층의 급증은 정치 참여를 부추길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러나 공산당의 일당 독재 체제인 중국에서는 여전히 언론 검열이 존재하는 등 실제로 정치 참여는 매우 제한적이다. 중국인들의 삶의 질은 경제적인 면에서 크게 발전했지만, 정치적인 면에서는 여전히 낙후돼 있다.
이같은 불균형 속에서 중국식 모델을 일컫는 `베이징 컨센서스`가 언제까지 지속될 지는 지켜볼 일이다.
◇ 베이징 컨센서스의 승리?
시장 개방과 기업에 대한 정부의 제한적인 개입을 의미하는 `워싱턴 컨센서스`는 종언을 고하게 됐고, 사회주의와 시장 경제를 융합한 `베이징 컨센서스`, 혹은 `중국 모델`이라고 불리는 새로운 이데올로기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미국 정부는 위기에 처한 은행들과 자동차 제조업체들에 자금을 대주고 있다. 마치 베이징 컨센서스를 차용한 듯이 말이다. 지난 20세기가 미국의 시대였다면 21세기가 중국의 시대라는 주장이 더욱 더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다. 중국은 자국 경제의 부흥과 더불어 세계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안할 수 있는 유일한 권리를 가진 국가로 부상했다.
◇ 경제 개혁이 정치 개혁 초석 깔아
그렇다면 베이징 컨센서스를 통해 초고속 경제 성장을 달성한 중국에서 정치적 개혁은 가능할까? 브루킹스 연구소의 청리 연구원은 "중국의 경제적 개혁이 정치적 개혁의 초석을 깔았다"고 말했다.
사회주의 경제 하에서 중국의 중산층들은 상당한 규모로 증가했다. 이들은 민간 부동산, 자동차, 금융 자산 등을 가지고 있다. 15~20년 전에는 중국에 존재하지 않던 계층으로, 부의 축적과 소비에 있어 자유시장주의에 속해있는 중산층과 크게 다를 게 없다.
최근 맥킨지의 한 조사에 따르면 오는 2025년까지 중국의 중산층은 약 5억2000만명까지 증가할 전망이다. 경제적으로 영향력있는 그룹이 늘면, 정치적 참여를 더욱 확대할 것이라는 사실은 자명하다.
언론의 상업화도 다양한 정치적 의견이 공존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주고 있다.
지난 2007년까지 중국에는 2000개 이상의 신문, 9000개가 넘는 잡지, 273개의 라디오 채널, 352개의 TV 채널이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특정 주제는 정부의 개입을 받긴 하지만 모두 다 같은 목소리를 내는 것은 아니다. 심지어 관영 언론도 때때로 정부에 비판적인 논조를 비치기도 한다.
◇ 실질적인 정치적 참여 제한적
그러나 중국의 정치 시스템은 일당 독재 체제로 독립적인 사법 체제가 없으며, 언론 검열도 존재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정치적 참여는 매우 제한적이다.
거슬러 올라가면, 지난 1989년 민주화 운동인 텐안먼 사태 때 민중을 향해 총부리를 겨눴던 공산당은 새로운 교섭을 제안했다. 돈을 벌 수 있게 해주고 일상에서 더 많은 자유를 허용하겠지만, 공산당의 권력에 도전해서는 안되며 공산당이 통제할 수 없는 정치적·종교적 조직을 구성해서도 안된다는 내용이었다.
1989년 천안문사태 때 중국 권력층 내부의 암투 내용을 담은 `천안문 문서(The tiananmen Papers)`의 공동 편집자인 페리 링크 프린스턴 대학교 교수는 "중국인들은 돈과 제한된 자유를 선택하는 방식의 협상을 수락했다"고 밝혔다.
◇ 앞으로 20년은
이 결과 중국인들의 경제적인 삶의 질은 괄목할만큼 향상지만, 정치적 자유가 제한된 상태에서 여태 20년을 버텨왔던 중국식 모델이 앞으로도 존속될 수 있을 지 의문이다. 베이징 컨센서스는 중국인들의 부(富)를 확대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여전히 사회주의라는 틀 안에 갇혀있기 때문에, 정치적 자유는 속박을 받아왔다.
무엇보다 글로벌 차원의 자유로운 의사소통이 가능한 인터넷이 등장한 가운데 중국의 경제적 자유와 정치적 자유의 불균형은 영원히 묵인될 수 없게 됐다. 미국 외교위원회의 애덤 시걸 연구원은 중국 인터넷 인구의 급격한 증가를 언급하면서 "인터넷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욕구가 높아지면 중국 지도자들은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고 말했다.
중국에서 프리랜서 기자로 활동 중인 쟈오 징은 "인터넷이 등장한 뒤로 중국 정부의 정보 검열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며 "시민의 저항은 언제 어디서나 발생하고 있으며, 사이버 공간이 새로운 텐안먼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한 국가가 발전할수록 중산층은 증가하며, 정부에 대한 요구 또한 높아지기 마련이다. 중국은 베이징 컨센서스를 경제발전의 수단으로 이용해왔지만, 결국 이는 정치적 자유에 대한 욕구도 자극하게 된다. 중국의 정치는 좀더 투명하고 참여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발전해야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