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사는 이모(75·남)씨는 만성폐쇄성폐질환(COPD)으로 5년째 치료를 받고 있다. 밖으로 나갔다가 혹시 전염될까 두려워 자체 자가 격리 중이다. 어느새 한 달 넘게 외부활동을 못하다보니 무기력감이 커지고 있다. 뉴스를 봐도 여기저기 확진자가 나왔다는 얘기뿐. 산책조차 걱정되고 폐질환 환자인 까닭에 다른 사람보다 취약하다는 생각에 창문을 열어 환기시키는 일마저 겁난다. 예년 같으면 화창한 봄 날씨에 꽃구경이 한창일 테나 애초 포기했다. 벌써 지는 벚꽃에 아쉬움이 커지며 내년 벚꽃까지 기다릴 수 있을까 우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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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사회적 거리두기’가 예상보다 장기화하면서 `코로나 블루(코로나19와 우울을 합성한 신조어)`를 겪는 시민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 여기에 팬데믹(Pandemic) 현실화까지 겹치며 언제 끝날지 모를 상황을 감내하는 과정에서 맞닥뜨리는 정신적 피로감을 호소하는 환자들이 늘고 있다. 팬데믹이란 전 세계적으로 전염병이 대유행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세계보건기구(WHO) 경보단계 가운데 최고 위험 등급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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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2배 이상 급증세…상담건수 11만건 돌파
11일 보건복지부 산하 국가트라우마센터에 따르면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통합심리지원단이 출범한 지난 1월 29일부터 이달 9일 오전 9시까지 누적 기준 심리상담 건수는 총 11만3063건에 달한다. 국가트라우마센터를 비롯해 영남권 트라우마센터, 나주·공주·춘천 국립병원 등 5곳에서 확진자 및 가족을 상대로 1만5333건의 심리 상담이 이뤄졌다. 전국 정신건강복지센터가 자가격리자 및 일반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상담은 무려 9만7730건에 이른다.
백종우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코로나19로 인한 건강 위협, 경제적 곤경은 현실적인 스트레스로 첫 번째 화살로 부를 수 있고 이런 상황에서 우리 마음의 변화인 불안·분노·우울은 두 번째 화살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백 교수는 “첫 번째 화살은 피하기 어려웠지만 두 번째 화살을 막기 위해서는 마음 건강의 문제를 예방하고 치료하는 ‘심리 방역’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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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트라우마’ 못지않아…국민안심병원 추천
전염력이 강한 감염병과 단순 비교가 힘들기는 하나, 세월호 사태 당시 국민적 트라우마 못지않다는 시각이 나온다. 안산정신건강트라우마센터 위탁기관인 고대안산병원이 발간한 ‘4·16 세월호 침몰사고 백서’를 보면 2014년 4월 16일부터 그 이듬해인 2015년 2월말까지 10개월 2주일 동안 세월호 직·간접 피해자의 외래진료 횟수는 총 1669차례이다.
코로나19의 경우엔 불과 두 달 만에 확진자와 그 가족에 대해 1만5333건의 심리 상담이 실시됐다. 이번 위기를 극복하는 와중에 정신력 소모가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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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보건대학원 유명순 교수팀 조사 결과 1개월 이상 스트레스가 유지되면 피실험자의 약 60%에서 일상생활이 중단됐다고 보고하고 있다. 정부는 작년 4월 세월호 침몰이나 메르스 사태 등 국가적인 대형 재난을 당한 피해자들의 심리 치료를 위해 서울 광진구 국립정신건강센터에 국가트라우마센터를 열었다.
정석훈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치료하지 않으면 환자의 40%는 가벼운 증상, 20%에선 중등도 증상을 지속적으로 경험한다”며 “10% 정도는 호전되지 않고 악화되기도 하므로 전문가와 상담해 적절한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 교수는 “감염병 유행 시기에는 평소 다니던 의료기관에 연락해 전화상담 및 처방이 가능한지 확인해보거나, 감염병 걱정 없이 진료가 가능한 코로나19 국민안심병원에 방문해 치료를 받아볼 수 있다”고 권유했다. 백 교수는 “병·의원 접근성이 나빠도 반드시 관리가 필요한 당뇨 등 만성질환, 우울증 같은 정신과 질환에 있어 치료를 중단하면 안 된다”고 충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