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aily 이정훈기자] SK글로벌 사태와 카드채 문제로 "연타"를 맞은 회사채시장이 좀처럼 회복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국채와의 금리 스프레드는 줄어들 줄 모르고, 거래량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기업들의 신용(크레딧)에 치명적인 충격을 가한 사건들이 수면 아래로 내려가고 있어 "제자리 찾기"가 이뤄지고 있지만, 이들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상태인 만큼 투기등급 회사채를 중심으로 어려움은 상당 기간 이어질 전망이다
정책적인 지원과 해당 기업들의 자구 노력이 선행되는 가운데 경기 회복에 따른 기업 실적 개선과 설비투자 증가 등이 뒷따라 주기만을 기대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 시간동안 회사채 시장에서 우량기업과 비우량기업 간의 양극화 현상은 지속될 전망이며, 이를 어떻게 적절하게 활용하느냐는 자금 운용 기관의 성패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회사채 발행·거래 점차 위축.."끝이 안보인다"
무엇보다 최근 회사채 시장의 침체를 가장 확연하게 볼 수 있는 지표는 발행과 거래량이다. 월별로 다소 차이는 있지만, 하나의 트렌드로 보면 발행규모와 거래규모 모두 하락세를 걷고 있다.
◆올해 월별 회사채 발행 및 거래규모
(단위:조원, 자료=증권거래소)
우려스러운 부분은 침체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월별로 보면 회사채 발행은 SK글로벌과 카드채 문제 이후 일시적으로 증가세를 보이는 듯 했지만, 하반기부터 다시 급격한 감소세로 돌아섰다.
회사채 거래량은 아예 일시적으로 나마 회복 기미를 보이지 못한채 하락 일로를 걷고 있다. 특히 지난 8월 거래량은 총 4조9000억원으로, 지난 1997년 11월의 5조2500억원 이후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그동안 유동성이 풍부해 회사채 시장에서 인기를 끌었던 SK와 LG 계열 회사채들이 모 그룹의 어려움으로 인해 시장에서 인기를 끌지 못하면서 발행과 거래를 동시에 위축시키고 있다는 분석이다.
증권거래소 관계자는 "안전자산 선호 현상으로 회사채 발행이 줄어들고 있고, 투자 수요 부진까지 겹치면서 거래량도 급감하고 있다"며 "심리적으로 저점이라 생각하고 있지만, 실제 거래에 나서지는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단순히 수치로 나타난 현상 뿐만 아니라 시장 분위기도 좋지 않다. 시장에서 수요가 없으니 회사채 발행을 할 만한 메리트가 없고, 발행이 없으니 유동성이 줄어들어 거래가 더 없어지는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됐다.
◇우량-비우량 양극화도 심화.."가격 메리트 상실"
이처럼 전체 회사채의 침체와 함께 회사채 시장 내에서도 우량채권과 비우량채권 간의 양극화도 새로운 문제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이같은 양극화가 심화될 경우 정작 자금 조달이 급한 기업은 신용등급이 낮다는 이유로 인해 회사채 발행에 나서지 못하게 돼 또다른 어려움에 봉착할 수도 있다.
발행기업의 신용도에 따라 추가로 부담해야하는 신용 스프레드를 보면 양극화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SK글로벌 사태 이후 오름세를 이어가던 회사채 스프레드는 8월 들어 우량채권이 하락하고 있는 반면 비우량채권은 오히려 더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
◆국채대비 3년만기 AA- 및 BBB-회사채 금리 스프레드
(단위:%포인트,%, 자료=증권업협회)
이런 현상은 기본적으로 투신권 등 회사채 매매를 담당하는 기관에서 신용등급이 낮은 회사채의 편입을 꺼리고 있기 때문.
한 시장 참가자는 "카드채는 다소 나아졌지만, SK글로벌 사태 이후 일반 회사채의 경우 실무자들이 가격 메리트를 느껴도 고위층으로부터 사들여도 된다는 허락을 받아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전했다.
그만큼 회사채 발행기업의 리스크에 대해 신중해졌다는 의미일 수 있다. 그러나 부도와 같은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정하지 않아도 될 기업들의 회사채에 대해서도 가격 논리가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은 문제일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제자리찾는 과정"..시장 정상화까지는 시간 걸릴 듯
시장 전문가들은 현재 회사채 시장 상황을 일종의 "제자리 찾기" 과정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동안 회사채 투자시 등한시했던 해당 기업의 투명성이나 채권의 유동성 등을 가격에 반영시키고 있고, 시장 참가자들도 이에 적응해가고 있는 것.
굿모닝신한증권 윤영환 연구위원은 "최근 회사채 시장에서는 기업의 투명성이나 회사채의 유동성 등을 디스카운트 요인으로 반영하고 있으며, 이것이 자리매김하는데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카드사 연체율이 다시 상승하는데서 볼 수 있듯 카드채 문제도 아직 미봉책으로 덮어둔 것이라는 인식이 많다"며 정책적 해결책이 필요하다는 점도 지적했다.
또한 경기 회복에 따른 기업 실적 회복과 자금수요 증가 등 돌파구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삼성증권 진상휘 수석연구원은 "경기가 회복된다지만, 금리가 상승기조로 돌아서지 않는 한 현재 기관들의 채권 포지션이 변하기 어렵다"며 "회사채 거래는 당분간 정상화되지 못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어 "신규 발행이 적은 비우량 회사채도 기업실적 회복 등이 가시화되기 전까지는 늘어나기 어려울 것으로 보여 거래도 침체될 수 밖에 없다"며 "상당 기간 우량채와 비우량채 간의 양극화는 지속될 것"으로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