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남의 월가브리핑]호재보다 악재에 더 민감해진 美증시…과열 '경고등'

올해 증시의 판이 바뀔 수 있다는 조짐들
①올해 증시 강세장, 지난해만큼은 아닐듯
②기술주→경기 민감주 투자 흐름 바뀌나
상승 탄력 약해지는 월가, 미묘한 긴장감
이번주 바이든 취임식, 파월 청문회 주목
  • 등록 2021-01-18 오전 7:23:48

    수정 2021-01-18 오전 8:24:34



<미국 뉴욕 현지에서 월가의 핫한 시선을 전해드립니다. 월가브리핑이 시장의 흐름을 이해하고 투자의 맥을 짚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뉴욕=이데일리 김정남 특파원] 요즘 월가는 알 수 없는 긴장감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이유는 짐작하실 거라 믿습니다. 지난주 뉴욕 증시 3대 지수인 다우존스 30 산업평균지수,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 지수, 나스닥 지수는 각각 0.91%, 1.48%, 1.54% 내렸습니다.

숫자만 보면 미미하게 여겨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눈길이 가는 건 얼마 전이었으면 호재로 작용했거나 무시 당했을 재료들이 이제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조 바이든 당선인이 지난주 무려 1조9000억달러 규모의 재정 부양책을 발표했습니다. 한 달 전에 나왔다면 주가를 확 끌어올렸겠지요. 몇 달을 질질 끈 9000억달러 부양책의 협상 일거수일투족에 증시가 울고 웃었던 기억이 선명합니다.

시장은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바이든 당선인이 야심차게 내놓은 재정 지원책에 시큰둥했지요. 지난해 증시에 별다른 영향을 못 미쳤던 코로나19 재확산 소식 역시 갑자기 부상하고 있고요. 그때와 지금이 다르면 뭐가 그리 다르겠습니까. 바뀐 게 있다면 사람들의 마음, 다시 말해 투자 심리가 변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가격을 결정하는 기술적인 분석들은 많습니다만, 결국은 심리입니다. 유동성은 약간 추상적인 용어입니다. 자금의 이동 정황 일부를 잡아낼 수 있겠지만, 그보다 유동성 급증은 사람들로 하여금 스스로 대출 받게 해서 ‘돈 좀 써도 된다’는 환경을 연방준비제도(Fed)가 만들었다는 게 진실에 가깝습니다. 재무부가 재난지원금 등 직접 현금을 주는 게 있었지만, 그보다 ‘정부는 무엇이든 하겠다’는 심리적인 안정을 준 게 컸다고 봅니다.

그런데 이것도 무한정 그럴 수는 없겠지요. 돈을 풀어 경제가 살아날 수 있지만 과거 위기들이 있었을 이유가 없지요. 지금이 그 시작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멀스멀 나오는 게 요즘 월가입니다. 올해 증시의 판은 지난해와 다를 수 있다는 포인트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을 이끄는 래리 핑크 회장이 CNBC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CNBC 캡처)


올해 증시 지난해만 못 할까…커지는 불안감

지난해 S&P 지수는 20% 가까이 올랐습니다. 팬데믹 탓에 실물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을 보인 와중에 증시는 랠리를 펼친 겁니다. 당연히 질문이 뒤따르겠지요. “올해도 지난해만큼 오를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약간 부정적입니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을 이끄는 래리 핑크 회장은 최근 CNBC와 인상적인 인터뷰를 했습니다. 핑크 회장은 “우리는 올해도 증시 랠리를 볼 수 있을 것”이라며 “투자자들은 장기 자산에 과소 투자하고 있는데, 가장 좋은 장기 자산은 주식”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다만 “아마도 지난해 3분기 혹은 4분기만큼 강하지는 않을 것 같다”고 덧붙였습니다. 올해 강세장이 지난해만큼은 아닐 거라는 전망은 월가의 컨센서스입니다. 씨티그룹과 소시에테제네랄의 올해 S&P 지수 상승률 전망치는 각각 3.0%에 불과합니다.

그럼에도 핑크 회장의 언급이 눈에 띄었던 건 그가 몇 달 전 말했던 톤과는 차이가 컸기 때문입니다. 기자는 지난해 10월16일 국제금융협회(IIF) 멤버십 총회에서 핑크 회장을 만났습니다. 그는 당시 “증시 거품을 일으킬 만한 어떤 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이데일리 10월18일자 8500조 굴리는 블랙록 회장 “美 증시 거품 없다…실적이 주가 뒷받침” 기사 참조>

지난달 블랙록의 마이크 파일 최고투자전략가는 ‘역사상 최저 실질금리’를 근거로 올해 랠리를 점쳤었는데요. 실질금리 수준을 나타내는 10년물 물가연동국채(TIPS) 금리는 지난 15일 -0.94%를 기록했습니다. 새해 첫 거래일(-1.08%)보다 올랐지요. 최근 화두인 국채금리(명목금리)보다 중요한 지표라고 기자는 봅니다. 금리, 그 중에서도 실질금리 레벨을 어느 때보다 잘 살펴야 할 시기입니다.

미국개인투자자협회(AAII)라는 곳이 있습니다. AAII는 매주 회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하는 데요. 향후 6개월간 증시 흐름이 어떻겠냐는 게 질문입니다. 6일 나온 올해 첫 조사를 보면요. 불마켓(Bullish·강세장)을 예상한 투자자는 45.2%였고요. 베어마켓(Bearish·약세장)의 경우 31.7%였습니다. 중립(Neutral)은 23.1%였고요. 직전 주(강세 46.1%-중립 27.1%-26.8%)와 비교하면, 약세장으로 조금 기운 걸 알 수 있습니다. AAII는 1987년 설문을 처음 시작했는데요. 역대 약세장 전망 평균은 30.5%입니다. 올해 첫째주 그걸 넘은 겁니다. 13일 나왔어야 할 지난주 조사 결과는 AAII의 소프트웨어 결함 문제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오는 21일 공개되는데요. 증시의 새로운 동력인 개인투자자들의 마음이 부정적으로 돌아서지 않았을지 주목해야 겠습니다.

지난주 최대 관심사는 단연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의 대담이었습니다. 기자는 그의 발언을 매파(통화 긴축 선호)적으로 들었습니다. 이르면 올해 하반기 연준이 테이퍼링(양적완화 축소) 계획을 발표할 수 있다는 얘기가 월가에서 돈 건 꽤 됐습니다. 최근 <월가브리핑>에서 깊이 다룬 적이 있고요. 그런데 기자는 파월 의장이 테이퍼링을 두고 “(때가 되면) 모두가 알 게 할 것”이라고 말할지는 예상 못했습니다. 어쨌든 그의 머릿속에 테이퍼링이 있다는 게 확인된 겁니다.

그는 또 “정책금리를 인상할 때가 오면 틀림없이 그렇게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시기가 가까운 건 아니다”고 했지만요. 금리 인상이 멀리 있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전 테이퍼링 때 연준은 2013년 5월 그 계획을 공개했고, 2년반 뒤에 금리를 올렸습니다. 2023년까지 제로금리를 유지하겠다는 파월 의장의 생각을 역산해보면 올해 테이퍼링 계획을 얼마든지 내놓을 수 있다는 추정마저 가능합니다. 파월 의장의 발언이 나온 당일 예상대로 국채금리는 상승했고 주가는 하락했습니다.

미국개인투자자협회(AAII)가 매주 회원들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추후 증시 전망 설문조사의 최근 수치. (출처=AAII 캡처)


폭등했던 기술주 줄일 때 왔나

어쩌면 그 다음 질문이 더 중요합니다. 투자 심리가 조금씩 약해진다는데, 그러면 어디서 돈을 벌 수 있을까. 이것 역시 누가 뾰족한 답을 알 수 있겠습니까. 다만 기자가 참석했던 ‘신채권왕’ 제프리 건들락 더블라인캐피털 최고경영자(CEO)의 웹캐스트 언급을 소개할까 합니다.

건들락 CEO가 회원들을 대상으로 웹캐스트를 연 것은 12일 오후 4시15분(미국 동부시간 기준)입니다. 그가 하고 싶은 말을 요약하면 ‘변화의 물결(regime change)’입니다. 건들락 CEO는 지난해 폭등했던 기술주의 대표 격인 FAANG(페이스북·애플·아마존·넷플릭스·구글)을 두고 “버벅거리고 있다”고 표현하며 “그것은 이제 끝났다(it’s over)”고 경고했습니다. 더블라인캐피털에 따르면 지난해 S&P 지수에 속한 IT 섹터의 상승률은 43.89%에 달했습니다. 에너지 섹터(-33.68%), 금융 섹터(-1.76%) 같은 경기 민감주가 죽을 쑤는 동안 빅테크는 최고의 해를 보냈는데요. 현재 미국 주식은 비싼 상황이며 그 중심에는 빅테크주가 있다는 게 건들락 CEO의 주장입니다.

그가 산출한 지난해 12월31일 기준 S&P 지수의 P/E(Price-Earning ratio·주가수익비율)는 22.3배를 기록했습니다. 그가 제시한 이전 최고치는 2000년 3월24일 당시 27.2배입니다. 닷컴 버블을 연상시킬 정도로 주가가 높은 수준이라는 암시라고 볼 수 있겠지요. 그는 “S&P 지수는 제로금리의 지지를 받고 있지만 인플레이션이 게임 체인저로 등장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건들락 CEO는 지난해 12월8일 연 지난 웹캐스트에서는 “내년 인플레이션은 예상보다 더 뛸 것”이라고 일찌감치 지적했습니다. 지금 투자자들이 불안하게 여기고 있는 딱 그 지점이지요. <이데일리 12월10일자 [줌인]“인플레 충격 빨리 온다”…월가 ‘채권왕’ 건들락의 경고 기사 참조>

더블라인캐피털이 산출한 지난해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 지수 내 섹터별 수익률 현황. (출처=더블라인캐피털 제공)


건들락 CEO가 이번에 추천한 건 아시아 주식이었습니다. 그는 특히 한국 등을 거론하면서 “아시아가 글로벌 증시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미국 같은 선진국 대신 아시아 신흥국을 언급한 건 그가 말한 변화의 중심입니다. 다시 말해 유동성 중심의 장세가 성장 중심의 장세로 바뀔 것이라는 뜻이지요. 그는 실제 “올해 큰 변화의 방향성은 달러화 약세”라며 미국 달러화를 피하라고 했습니다. 이는 일종의 ‘리플레이션 트레이드(reflation trade)’에 대한 조언으로 읽힙니다.

리플레이션은 디플레이션에서는 벗어났지만 인플레이션까지는 가지 않은 상태를 뜻하지요. 지금이 그런 경우라고 볼 수 있는 데요. 통상 경기는 리플레이션→회복(recovery)→인플레이션의 경로로 움직입니다. 건들락 CEO뿐만 아닙니다. 최근 골드만삭스가 내놓은 글로벌 기관투자자 고객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역시 비슷했습니다. 글로벌 성장 기대감에 바이든 당선인의 재정 부양책 기대까지 엮어 리플레이션 트레이드를 강조했는데요. 특히 현재 리플레이션 국면의 수혜주라고 할 수 있는 경기 민감주를 기관들이 주목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신채권왕’ 제프리 건들락 더블라인캐피털 최고경영자(CEO)가 지난 12일 오후 4시15분(미국 동부시간 기준) 이데일리 등이 참석한 웹캐스트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더블라인캐피털 제공)


옐런은 청문회서 무슨 말을 할까

이번주 뉴욕 증시는 이런 변화의 양상을 염두에 두고 대응하는 게 좋을 듯합니다. 가장 이목이 모이는 최대 이벤트는 오는 20일 바이든 당선인의 취임식이지요. 투자리서치회사 CFRA에 따르면 1952년 이후 민주당 소속 대통령이 취임했을 경우 S&P 지수는 취임 첫 100일간 평균 3.5% 상승했습니다. 공화당 소속일 때 0.5% 올랐는데, 이보다 좋았던 겁니다. 다만 이번에 그렇게 될 지는 미지수입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탄핵 이슈로 미국의 정치 불확실성은 어느 때보다 높기도 하거니와, 시장의 펀더멘털 그 자체 역시 우호적이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일단 지난주 1조9000억달러의 부양책을 공개한 이후 주가는 오히려 하락했다는 점에서 상황은 만만치 않습니다. 부양책이 원만하게 의회를 통과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도 적지 않습니다. 이럴 경우 이미 가격에 부양책 재료를 반영한 증시는 충격을 받을 수 있지요. 그 연장선상에서 19일 열리는 재닛 옐런 재무장관 지명자의 인준청문회를 주목할 만합니다. 연준 의장 출신인 옐런은 추가 재정 지출을 통한 경기 회복에 정책의 방점을 찍을 게 유력합니다. 증시의 투자심리를 지지하는 재료가 될 수 있겠지만, 동시에 인플레이션 충격이 다가오는데 따른 증시 변화의 물결의 전조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눈여겨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번주는 다음주 연준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1월 26~27일)를 앞둔 주입니다. 1월 FOMC의 중요성은 따로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지요. 이번주 국채금리 등을 통해 나타날 시장의 FOMC 전망을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번주 미국 기업들의 어닝시즌이 이어집니다. 골드만삭스, 뱅크오브아메리카(BoA) 같은 금융주를 비롯해 넷플릭스, 인텔, IBM, 프록터앤드갬블(P&G), 유나이티드항공 등이 실적을 내놓습니다. 지난주 씨티그룹과 웰스파고의 실적이 부진해 주가가 크게 내렸는데요. 레벨 부담이 있는 와중에 기업 실적마저 부진할 경우 주가 충격은 커질 수 있습니다.

18일은 마틴 루터 킹 데이입니다. 미국 주식시장과 채권시장이 모두 휴장합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 출신인 재닛 옐런 신임 재무장관 지명자. (사진=AFP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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