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성의 금융CAST]사기꾼이 더 친절하더라

  • 등록 2020-09-26 오전 11:00:00

    수정 2020-09-26 오전 11:00:00

[이데일리 김유성 기자] ‘속 빈 강정일 수록 겉은 화려하다.’

‘사기꾼은 대부분 선한 얼굴을 하고 있다.’

이런 얘기는 사회 생활에만 통용되는 것은 아니다. 투자 생활에도 마찬가지. 잘생기고 멋진데다 화려한 이력까지 있는 기업인이라고 해서 그들이 선하다고 볼 수 없다. 개중에는 서슴없이 거짓말을 하는 이들도 있다.

이미지 출처 : 이미지투데이
그럼에도 사람들이 사기를 당하는 이유는 뭘까. 지금은 국회에 입성해 있지만 ‘검사내전’이라는 베스트셀러로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김웅 전 검사는 ‘각자 마음 속에 있는 탐욕’을 지목했다. 수많은 사기꾼들의 선한 얼굴을 목도한 뒤 세운 나름의 결론이다.

선한 얼굴을 한 사기꾼들은 잠재 희생자들의 욕심(가령 큰 돈을 벌고 싶다는)을 자극하고 현실화시킬 수 있다는 믿음을 끊임없이 준다. 후(後)에 사기극이 밝혀져도 이를 믿지 않고 사기꾼 옥바라지까지 하는 사람들이 있다.

평생의 기회일 수도 있었던 그 기회가 무산됐다는 것 자체를 믿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다. ‘자기가 보고 싶어하는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어하지 않는 이들이기도 하다.

자본주의가 최첨단으로 발달한 미국 시장도 마찬가지다. 화려한 이력, 선한 얼굴을 한 CEO가 사기극 아닌 사기극을 벌이곤 한다. 최근에는 수소전기차 스타트업 ‘니콜라’가 이런 의심을 받고 있다. 결론이 어떻게 될지 두고봐야하겠지만 창업자인 트레버 밀톤은 ‘사기’ 혐의에서 쉬이 벗어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몇몇 사례에 국한될 수있지만 무명의 창업자가 미국 사회 주류에서 신화적인 존재로 환영받는 모습을 보면 묘한 공통점을 느낄 수 있다. 백인이면서 명문대 출신이고, 전 직장 경력이 화려하다. 외모적으로도 미국 주류 사회가 환영할 만큼 유려하다. 미국 주류사회가 은근히 바라는 백인우월주의를 충족시켜줄만한 인물이다.

실제 테라노스 사기 사건은 이런 의식을 극명하게 드러내줬다고 볼 수 있다. 테라노스는 실리콘벨리의 바이오스타트업이었다. 피 한방울로 240여 질병을 진단할 수 있다고 하니 당시로서는 획기적이었다. 병원비가 비싸기로 유명한 미국에서 15달러면 암까지 미리 알 수 있었다. 2014년 기준 기업 가치가 90억달러에 이르렀다.

나치의 선전 포스터에 나온 이상화된 백인 여성의 모습. 미국 주류 사회도 이런 편견에서 과연 자유로울 수 있을까. (이미지 출처 : 구글사진검색)
창업자인 엘리자베스 홈즈는 스탠포드대학을 나온 젊고 아름다운 여성으로 자신을 마케팅했다. 푸른 눈의 백인 미녀, 금발의 여성 창업자로 대중 매체에 비춰졌다. 천재소녀의 이미지였다.

실제 그가 19살이던 2003년 스탠포드대에서 비밀리에 비즈니스를 만들어 연구했고, 스탠포드를 조기 졸업했다라는 얘기가 돌았다. 물론 검증이 됐는지 알 수 없다.

이런 그를 의심하는 이들도 있었다. 대부분의 헬스케어·바이오 스타트업은 논문이나 임상실험을 통해 자신들의 제품 효험을 검증하는 단계를 거친다. 그런데 이 기업은 그 흔한 논문 하나 없었다. 의구심은 들었지만 홈즈가 내세우는 그 이미지와 환상이 워낙 강해 문제로 제기하기 쉽지 않았다.

2014년 6월 논문을 냈다고 하지만 테스트 결과로는 부족했다. 테라노스 시스템에서 혈액 속 단백질이 어떻게 분석되는지 알 수 없었다. 이에 대한 설명도 업었다. 분석 결과에 대한 의구심이 높아졌고 2015년부터 사기 의혹이 나오기 시작했다.

지난 2018년 4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가 테라노스와 엘리자베스 홈즈를 대규모 사기 혐의로 기소했다. 거짓 정보로 투자를 유치했다. 테라노스는 기업 가치가 0달러로 떨어졌다.

홈즈의 금발도 사실이 실제 그의 것이 아니라는 얘기가 돌았다. 원래는 빨간색 머리였는데 염색을 해서 금발로 만들었다는 얘기다. 금발의 푸른눈, 미국 주류 사회가 좋아하는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노력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10년 넘게 끈질기게 자신의 사업을 유지하고 투자까지 유치한 것으로 봐서는 보통 열정의 사람은 아닌 듯 하다. 자신이 만든 ‘가상의 현실’을 실제 현실로 믿었던 게 아닐까 싶다. 거짓말을 하면서 스스로 그것을 현실로 믿는 것처럼.

이런 사례는 우리나라에도 널렸다. 2000년대 노벨상의 희망을 한껏 드높여줬던 황우석 박사의 사례나, 잊을 만 하면 나오는 스타트업 창업자들의 학력·경력 부풀리기 등이다. 대기업들도 일부는 분식회계를 하면서 우리나라 경제계에 충격을 주기도 했다. 다들 추락하기 직전까지 화려한 모습과 이력 그리고 숫자로 표현되는 퍼포먼스를 보였던 이들이다.

사기꾼은 선한 얼굴을 하고 있다. 그리고 친절하다. 개중에는 ‘잘 하려다보니’ 거짓말이 반복되고, 결과적으로 사기꾼이 된 이도 있다. ‘조금 과장해도 되겠지’라는 안이한 마음에 남들이 쉽게 확인할 수 없는 경력(미국 내 커리어나 투자운용액 등)을 부풀린 경우도 있다. 부실 금융 상품인줄 알면서도 투자자들에게 팔아 문제가 되기도 한다.

그들은 당신 마음 속에 잠재된 탐욕을 노리고 자극한다. ‘부자가 될 수 있다’, ‘높은 투자 수익률을 보장한다’며 접근하는 식이다. 화려한 모습과 이력으로 자신들의 말에 설득력을 더한다.

어느 누군들 속지 않겠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숫자에 밝은 은행원들과 증권맨, 펀드매니저들이 이런 그들에게 당하는 것을 보면 탐욕은 학력과 경력을 뛰어넘는 요소임에 틀림없는 듯 하다.

이데일리
추천 뉴스by Taboola

당신을 위한
맞춤 뉴스by Dable

소셜 댓글

많이 본 뉴스

바이오 투자 길라잡이 팜이데일리

왼쪽 오른쪽

스무살의 설레임 스냅타임

왼쪽 오른쪽

재미에 지식을 더하다 영상+

왼쪽 오른쪽

두근두근 핫포토

  • "으아악! 안돼! 내 신발..."
  • 이즈나, 혼신의 무대
  • 만화 찢고 나온 미모
  • 지드래곤 스카프 ‘파워’
왼쪽 오른쪽

04517 서울시 중구 통일로 92 케이지타워 18F, 19F 이데일리

대표전화 02-3772-0114 I 이메일 webmaster@edaily.co.krI 사업자번호 107-81-75795

등록번호 서울 아 00090 I 등록일자 2005.10.25 I 회장 곽재선 I 발행·편집인 이익원 I 청소년보호책임자 고규대

ⓒ 이데일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