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관용 기자] 2000년 6월 8일 국방과학연구소(ADD) 안흥시험장. 국산 함대함 순항 미사일인 ‘해성’(海星)의 첫 번째 비행시험이 진행됐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우리 손으로 만든 대함 유도탄을 발사한다는 소식에 군 관계자들이 대거 몰렸다.
일반적으로 유도탄 개발에서 기술을 확인하는 절차는 크게 네 단계로 구분된다. 처음에는 발사 과정에 문제점이 없는가 살펴보는 초기 안정성 과정이고 두 번째는 로켓부스터가 정상적으로 분리되는가를 확인한다. 이후 2단 로켓이나 엔진이 잘 작동하는가 살펴보고 이상이 없이 잘 작동하면 마지막으로 비행능력을 확인하는 중기 유도를 진행한다.
그러나 해성 개발자들은 과욕을 부렸다. 중간 확인 단계를 생략하고 처음부터 중기 유도를 시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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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스크린을 살펴보니 유도탄이 사전에 그어놓은 선을 따라 멋지게 비행하고 있었다. 사거리 35km를 정해진 속도로 비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K실장이 콘퍼런스를 통해 진행 상황을 안내 방송했다.
“발사 30초 경과, 유도탄 정상 비행 중”
시간이 계속 흘렀다. “발사 100초 경과, 정상 비행 중”
조금 지나서 이윽고 “유도탄 탄착”이라는 안내 방송이 장내에 울려퍼졌다. K실장은 각 모니터 시험요원들에게 시험자료가 정상적으로 기록됐는지 확인한 후 오늘 시험이 성공적으로 종료됐음을 선언했다. 단 한 번의 유도탄 발사로 중기 유도 비행시험까지 해낸 것이었다.
ADD 관계자는 “당시 원격측정 데이터를 보고 제트엔진이 고장 난 줄 알았다”면서 “기본 성능만 입증된 부품들을 조립해 첫 번째 발사에서 유도탄의 기본 성능을 모두 확인했고 비행까지 성공했다”고 말했다.
‘서보공탄성·전자파 간섭·발전기 공진 ’ 3전 4기만에 개발 성공
하지만 성공의 기쁨도 잠시, 2001년 5월 24일 세 번째 비행시험에서 발사 후 60초에 사거리 16km를 비행하던 유도탄이 레이더 스크린에서 갑자기 사라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비행 중 추락한 것이다.
2001년 12월 5일 서보공탄성에 의한 실패를 극복하고 다음 단계로 유도탄을 표적에 명중시키는 첫 번째 호밍시험을 실시했다. 호밍(Homing)은 유도탄의 레이더가 표적을 탐지하고 추적하면 유도장치가 이 정보를 갖고 표적으로 유도탄을 유도하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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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시 35분. 유도탄이 발사된 후에 ADD의 시험 요원들은 유도탄를 추적하는 레이더가 보내주는 유도탄의 궤적을 보고 있었다. 이윽고 정해진 시간이 지나자 유도탄의 궤적은 표적 가까이 이동했다. 유도탄의 표적 명중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젠 표적의 비디오 카메라 화면에 유도탄이 나타내야 할 텐데…’
시험을 지켜보던 ADD 요원들이 이같이 생각하는 찰나에 작은 점 하나가 표적의 비디오 카메라 화면에 나타나 점점 커졌다. 곧바로 비디오 영상을 보여주던 화면이 먹통이 됐다. 표적 중앙 기둥을 유도탄이 명중시킨 것이다. 시험장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터졌다. 첫 번째 호밍시험을 성공적으로 수행해 사실상 유도탄의 기본적인 성능을 입증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해성 유도탄 개발은 곧 또다른 난관에 부딪혔다. 2002년 5월 10일 시험에서는 2차 호밍까지 테스트를 진행했다. 이날 시험에서 1차 호밍을 끝낸 해성 유도탄은 2차 호밍 과정에서 190초를 지나자 추락하고 말았다. 유도탄 내부 전자파 간섭이 원인이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고 6월 14일 재개된 실험에서 이번에는 엔진 발전기(Alternator)의 공진 현상으로 비행 중 추락했다. 이번에도 역시 190초대였다. 발전기 공진 현상은 발전기 전압이 일정치 않아 전자회로가 이를 감당하지 못해 작동 불능이 되는 상태다.
ADD 관계자는 “첫 번째 추락은 서보공탄성, 두 번째는 내부 전자파 간섭, 세 번째는 발전기 공진 때문에 실패를 거듭했다”면서 “당시에는 들어보지도 못한 신기한 용어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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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양산 유도탄의 시험을 통과해야만 전력화, 즉 실전배치가 가능했다. 그만큼 이 시험의 중요성과 관심도가 높아 대조영함 우현 쪽 멀리 위치한 또 다른 전투함에는 30명이 넘는 해군과 ADD 개발자, 품질보증을 맡은 국방기술품질원 관계자가 승함해 참관하고 있었다.
12시 30분이 넘자 복명복창 소리가 이어지고 12시 46분부터 공식적인 발사시험 과정에 돌입했다. 13시 30분, ‘유도탄 발사명령’이 하달되자 카운트다운이 시작되고 발사 카운트 ‘0’(Zero) 소리가 울려퍼졌다. 동시에 함 중간쯤 위치해 있던 유도탄이 푸른빛이 감도는 불기둥을 내뿜으며 힘차게 날아올랐다. 로켓 부스터의 흰 연기도 길게 이어졌다.
흰색의 유도탄은 곧이어 부스터를 분리한 후 해면 위를 일정 높이로 비행했다. 유도탄은 1차 변침점(way point)을 통과하며 사전에 승인된 교전 계획에 따라 공격침로를 정확하게 비행했다. 비행궤적은 유도탄에 장착된 축소형 원격측정장비에 의해 대조영함 내에 생생하게 전달됐다. 해군전술지휘통제시스템(KNTDS)을 통해 발사시험 상황이 육상의 지휘부에도 실시간으로 전송됐다.
마침내 오후 1시 34분, 대조영함 내 스크린에는 ‘쾅’하는 폭발음이 영상과 함께 전해졌다. 발사버튼을 누른지 약 200초 만에 유도탄이 표적함에 명중, 폭발한 것이다. 이로써 목표표적에 대한 유도탄 발사 후 부스터 단 분리→엔진시동→비행→변침→표적 탐색→표적공격→명중→폭발에 이르기까지 전체 구성품 기능이 완벽히 구현됨을 입증했다.
해성은 2006년 전력화해 국내 한국형 구축함과 초계함, 차기 고속정 등에 탑재돼 운용되고 있다. 해성의 국내 개발로 한국은 독자적인 전자전 대응능력을 갖춘 함대함 유도무기체계를 확보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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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성은 ADD가 개발을 주관하고 LIG넥스원(079550)이 체계를 종합한 대함 유도 무기다. 1996년부터 총 1000억 여원의 예산을 투입해 개발을 진행했다. 해성은 표적을 지정해주면 발사 후 스스로 최적의 고도와 비행경로를 찾아 비행한다. 로켓부스터와 탄두에는 둔감화(鈍感化) 기술이 적용돼 있다. 이 때문에 적의 유도탄에 아군의 함정이 피격되더라도 폭발하지 않는다.
기폭 장치인 신관은 충돌 후 일정시간이 지난 뒤 작동하도록 돼 있어 적의 함정에 부딪혔을 때 터지는 것이 아니라 뚫고 들어가 내부에서 터진다.
특히 무더위와 강추위 속에서도 기동하는 터보제트엔진을 탑재하고 있다. 비행 방향을 중간에 바꾸는 변침점(turnpoint) 기능도 포함하고 있어 아군의 함정과 섬들을 피해 비행이 가능하다.
해성은 해수면 위에 바짝 붙어 비행(Sea Skimming)한다. 해면에 밀착한 초저공비행으로 표적 함정 레이더 등의 방어장비를 회피한다. 표적 바로 앞에서 급상승해 다이빙하듯 내리꽂는 팝업(Pop-Up) 형태로 공격한다. 만일 표적을 맞히지 못하면 다시 선회비행 해 명중시킬 때까지 반복 공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