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지난 98년 오부치 정권 이후 사상 두번째로 큰 규모로, 금융위기 심화로 일본 경제 역시 침체의 늪에 빠지면서 대대적인 경기부양에 나선 것이다.
일본 정부는 내수확대를 위해 2조엔을 들여 생활지원급부금을 지급하고, 중소기업들의 대출을 돕는 가계·기업 중심의 부양책과 함께 증시를 살릴 수 있는 각종 지원책을 내놨다.
그러나 이번 부양책이 최근까지 요동쳤던 일본 금융시장을 진정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반면, 당장 경제적 영향이 커지기는 힘들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 사상 두번째 큰 경기부양 규모..가계·기업 중심
일본은 지난 8월에도 11조7000억엔 규모의 경기부양책을 내놨지만 이번 2차 경기부양 규모는 무려 26조9000억엔에 달해 지난 98년 오부치 게이조 정부 당시 27조엔과 맞먹는 수준이다.
이 가운데 재정지출 규모를 5조엔으로 기존 예상보다 크게 낮춰잡았지만 이 역시 오부치 정부 이후 사상 두번째로 큰 규모다.
그러나 오부치 정권 당시에는 공공사업 위주로 경기부양이 이뤄졌던 것과 달리 가계와 기업에 직접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방향으로 마련된 것은 상당히 대조적이다.
특히 재정지출 가운데 2조엔은 모든 세대에 생활지원 관련 급부금을 지급하는데 쓰일 예정이며 2조8000억엔 또는 5조엔 가운데 60% 가량이 국민들의 일상적인 생계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방향으로 분배된다. 급부금 지급 시 4인 가구를 기준으로 올 회계연도에 6만4000엔을 받게된다.
또 재정지출 외의 부양규모의 80% 가량은 중소기업 지원에 쓰이며 가계와 기업 중심의 부양안이 마련됐다. 다만, 이들 지원형태는 대출이나 보증의 상한선 확대 형태에서 나올 것으로 보여 전체적인 투입 규모는 수천억엔선으로 낮아질 수 있다.
◇ 증시부양에도 초점..장기투자 장려
이번 경기부양책은 증시 부양 쪽에도 상당한 초점을 맞췄다. 개인 투자자들의 저축을 유도하기 보다는 투자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다.
또한 새로운 부양안에는 미국의 401K 형태의 연금계획 추진도 들어있다. 401K는 미국 정부가 기업연금 활성화를 위해 마련한 세제혜택 조항으로 일정한도 내에서 소득공제와 투자수익에 대한 비과세 혜택을 누리게 해준다. 일본 정부 역시 기업 직원들이 장기적으로 주식을 매수하도록 독려한다는 계획이다.
이와 함께 미국에서 보편화된 주식 소유 계획을 증진시키기 위한 계획도 담겼다. 기업이 주식을 사뒀다가 직원들의 퇴직 시 주식을 할당하는 것으로 일본 기업들 역시 일부는 이를 도입한 상태지만 아직까지는 미미한 편이다. 일본 경제무역산업성은 이와 관련한 새로운 가이드라인을 마련할 계획이다.
이 외에도 이미 정부는 한시적인 공매도 금지 규제를 발표했으며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은행보유 주식의 유연한 처분 등도 포함됐다.
◇ 인프라보다 가계·기업중심 혜택
일본 정부는 미취학 자녀를 둔 가정에 대해 둘째아이부터는 3만6000엔이 지원키로 했다. 올해 만료예정이었던 모기지 세금에 대한 신용도 확대되며 최대 신용한도도 600만엔까지 늘어난다.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2조엔 이상의 자본투입을 위한 법안도 추진되고 있지만 규모는 다소 제한될 전망이다.
도로관련 세수를 일반 예산으로 흡수하는 것과 함께 지방 중보는 1조엔 가량을 지원받는다. 고속도로 통행료의 파격적인 인하나 사회간접자본 건설 계획 등도 일부 포함됐다.
◇ 당장 영향 기대하기 힘들어..소득세 인상계획 부담
이처럼 다양한 스펙트럼의 부양책에도 불구, 평가는 다소 비관적이다. 금융시장 안정에 도움을 줄 수는 있겠지만 경제적인 영향은 불확실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일단 정부가 은행 자본적정성에 대한 규제 완화와 함께 은행주 매입을 계획한 것은 현 상황에서는 상상할 수 없었던 파격적인 조치라는 평가다.
일본의 한 대형은행 관계자는 "최근 계획들을 보면 금융시스템을 통해 퍼지고 있는 주가하락의 고리를 끊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경제 전반에 대한 영향은 조금 다르다. 각종 가계 지원에도 불구, 이같은 지출은 일본의 국내총생산(GDP)를 0.2% 끌어올리는데 그칠 것이라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교헤이 모리타 바클레이즈캐피탈 이코노미스트는 "GDP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작다"며 "실질적인 경기부양책이 아니다"고 말했다.
또한 "가계의가처분 소득이 늘어날 수 있지만 오히려 저축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는 부양 구조"라고 꼬집었다.
아소 다로 총리가 총선을 미루겠다고 밝힌 상태지만 이같은 부양안이 총선 승리를 위한 밑밥 정책이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실제 정부의 재원마련도 쉽지 않을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일례로 일부 부양안의 경우 특별 회계 잔여분에서 충당되면서 연간 기준으로 자금이 마련되야 하는데 그 만큼 정부가 지속적으로 이를 지원하지는 못할 수 있다.
3년간의 감세 이후 일본 정부가 소비세 인상을 추진하고 있는 것도 잠재적 부담으로 지적된다. 아소 총리는 "이르면 2011년 회계연도부터 소비세 인상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아소 총리 측근에 따르면 정부는 현 5%의 소비세를 10%까지 올리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