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범행의 동기, 즉 "왜"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경찰조차도 아직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일단 알 카에다 등 테러조직과 연관된 범행은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돈 때문만도 아닌 것으로 보인다. 1000만달러를 요구하는 메모지가 발견되기도 했지만 범행의 마지막 단계에서였다. 금품을 요구하는 범인이라면 범행 초반부터 이같은 요구를 하는 게 일반적이다. 현재로선 범행의 동기를 그저 미국 사회에 대한 "분노"일 것이라고 추측 할 뿐이다.
용의자인 존 무하마드(41)와 존 말보(17)중 누가 범행을 주도했는지, 의붓 아들이라는 존 말보의 역할은 무엇이었는지 여부도 명확치 않다. 수사가 진행되면서 하나 하나 밝혀질 것들이다.
무하마드와 말보의 관계가 시작된 것은 무하마드가 자메이카 출신의 우마 제임스를 사귀면서부터였다. 말보는 우마의 아들이다. 무하마드는 지난해 연말에 우마와 말다툼을 벌이다 경찰이 출동했고 이로 인해 우마 모자의 불법체류 신분이 발각됐다. 말보는 연방이민국에 체포됐다가 일단 석방된 이후 다니던 고교를 그만두고 올해 초부터 "엄마의 남자친구"인 무하마드와 미국 횡단을 시작했다. 무하마드와 말보는 지난 9월초 90년형 시보레 카프리스(범행에 사용된 바로 그 차다)를 250달러에 구입했다.
존 무하마드는 미국 언론들이 흔히 표현하는 "낙오자(loser)"다. 걸프전 참전용사 무하마드는 거듭되는 결혼생활의 실패 끝에 홈리스(homeless)로 전락했다. 2번에 걸친 무하마드의 결혼생활은 엉망이었다. 85년 11월 무하마드는 첫 부인과 별거하고 육군에 입대했으며 이슬람교로 개종했다. 무하마드는 88년 두번째 결혼을 해 1남2녀를 뒀으나 이후 다시 이혼했다.
두번째 이혼은 위태롭던 무하마드의 인생을 더욱 꼬이게 만들었다. 무하마드의 성격이 난폭해서 자녀들을 폭행한다는 것이 두번째 부인의 이혼 사유였다. 이후의 사업실패와 자녀양육권 소송에서의 패소로 무하마드는 홈리스가 되고 말았다.
연쇄저격범행을 저지른 장소가 워싱턴DC 일대라는 점에서 범행동기를 전처에 대한 분노 때문으로 추정하는 이들도 있다. 두번째 부인은 지난해 5월 메릴랜드주 클린턴(연쇄저격 사건이 벌어진 부근이다)으로 이주했다.
이들이 체포된 중요한 이유중의 하나는 존 말보가 경찰과 대화한 내용 때문이다. 말보는 경찰에 전화를 걸어 연쇄저격 사건이 있기 직전의 총기 강도사건을 언급해 자신들의 차량이 경찰에 수배를 받는 원인을 제공했다. 두사람이 경찰과 대화하기로 상의했는지 둘중 하나가 배신을 한 것인지는 정확치 않다. 그러나 "대화를 나누고 싶다"는 인간의 근원적인 욕망이 수사에 단초를 제공하고 붙잡히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점은 아이러니다.
미국인들은 이해하기 힘든 일이 벌어졌을 때 "그저 미친짓"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사실 "미쳤다"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많은 연쇄살인사건이 유독 많이 벌어지는 곳이 미국이다. 자신을 "샘의 아들"이라 칭하며 5명의 여자들을 차례로 살해한 뉴욕의 연쇄살인범, 사냥꾼들과 낚시꾼들을 아무런 이유없이 5명이나 총으로 쏴죽인 오하이오의 연쇄살인 사건 등이 그렇고 올 들어선 이웃집 소녀를 납치해 살해하고 자신의 집에다 암매장한 엽기적인 사건도 벌어져 전 미국을 떠들석하게 만들었다.
이번 사건의 용의자인 무하마드와 말보는 단순한 정신이상자도, 주류사회에서 소외돼 좌절감을 겪고 있는 백인 중산층도 아니다. 그렇다고 인생의 낙오자란 이유만으로 그 분노를 아무런 관련없는 사람들에게 표출할 수 있을까. 그들의 범행 동기와 정신상태를 분석하고 감정하는 것은 범죄심리학자들의 일이되, 그들을 "미치게 만드는" 사회를 분석하고 감정하는 것은 누구의 몫일까.
미국인들은 그저 "미쳤기 때문"(They"re crazy)이라고 결론내리고 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간다. 물론 그렇게 하는 것이 정신건강엔 좋다. 워싱턴 일대의 주민들도 다시 예전처럼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고 쇼핑을 즐기고 교외로 나간다. 연쇄저격범에 의해 강탈당한 일상의 행복함을 되찾은 것이다.
이로 인해 백화점 매출이 늘고 소비자신뢰지수가 올라간다면 그것 또한 미국 경제에 좋은 일이리라. (이렇게 생각하는 경제학자들도 전혀 없지는 않은 것같다). 그러나 나른한 오후의 평온속에 감춰진 잔혹함, 공포영화의 테마로나 어울릴 듯 하지만 그것 또한 미국의 한 단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