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한차례 열리는 국제통화기금과 세계은행 연차총회가 이날부터 개최됐지만, 각국 금융기관장들은 회의직후 인근 호텔에서 개별 회담을 갖느라 19번가 거리는 한산했다. 한낮 온도는 20도를 넘을 정도였지만, 해가 지자 기온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쌀쌀했다.
세계은행(WB)에 시니어 공공부문 전문가로 파견 중인 이종욱 기획재정부 과장은 "경찰병력이 어제(10일) 밤부터 19번가 거리를 에워싸 유동 인구를 차단했다"며 "세계은행이나 IMF 직원들도 건물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워싱턴의 이런 모습은 은행과 은행간, 금융과 실물경제간 돈줄이 꽉 막히고 있는 글로벌 금융경색 위기를 닮아 있었다.
◇ 유럽 `뱅크런은 막자..은행거래 정부가 지급보장해야`
금융경색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대책의 강도는 점점 더 세지고 있다.
신제윤 기획재정부 국제업무관리관(차관보)은 "현재 신용위기 대책의 마지막 단계로 각국 정부가 은행간 거래를 직접 지급보증하는 논의가 집중적으로 논의되고 있다"며 "하지만 국가마다 의견차가 있어 쉽게 합의점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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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브프라임모기지로 촉발된 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미국 정부 대책은 1단계 시중 유동성 공급, 2단계 7000억달러 규모 구제금융법안, 3단계 은행 국유화로까지 확산됐다. 여기까지가 미국 정부가 내놓을 수 있는 대책이다. 정부가 은행들간 자금 거래를 지급 보증하는 대책은 우선 각국 정부가 협조해야 하고, 의회 승인까지 받아야 하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
이는 금융위기에 대한 해법을 두고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뿐 아니라 선진국 내부에서도 이해관계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미 대규모 예금 인출사태(뱅크런)가 벌어지고 있는 프랑스나 영국 등 일부 유럽 국가들은 이 대책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뱅크런 사태로까지 위기가 번지지 않는 미국은 중립적이다. 아직 위기감이 덜한 아시아는 대체로 반대 입장을 보이고 있다. 여기에 국회를 설득할 자신이 없는 국가들도 유보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G-20 국가들이 뚜렷한 결론을 내지 못하자 12일엔 호주 정부가 ▲3년간 은행예금 전액 보장 ▲은행 자금조달 정부 보장 ▲부실채권기금 규모 확대 등 3가지 긴급 대책을 발표했다. 같은 날 뉴질랜드도 유사한 대책을 발표했다.
신 차관보는 "자본 개방도가 높은 호주가 위기에 선제 대응한 것으로 보인다"며 "상황이 급박하게 흘러가고 있어 다른 선진국들이 호주 정부의 대책을 따라갈 지 주목된다"고 말했다.
10일(현지시각)부터 워싱턴을 방문한 민유성 산업은행장은 "은행간 거래를 국가가 지급보증하는 방안이 논의된다는 것 자체가 위기의 심각성을 보여주는 사안"이라면서도 "은행간 자금거래 중단이 공포의 근원지이기 때문에 대책으로 발표될 경우 불안심리 차단에 큰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 개도국 발언권 높아져..`통화스왑 확대하자`
부시 대통령은 예고 없이 이날 G-20 회의장을 찾아 "세계가 서로 연결돼 있는 상황에서는 어떤 한 나라도 다른 나라의 희생 위에 이득을 얻을 수 없다"며 국제 금융위기 극복을 위한 협력을 강조했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G-20 회의에서 "신흥 시장국의 금융시장 불안이 선진국으로 전이되는 현상(reverse spill-over)을 막기 위해서는 선진국 뿐 아니라 신흥시장국들을 포함시키는 정책 공조가 매우 중요하다"며 "선진국간 통화스왑 대상에 신흥 시장국을 포함할 필요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발 금융위기가 개도국에 부정적으로 영향을 미치면서 개도국이 보유하고 있는 미국 국채·주식 자산을 매각하게 되고, 이런 현상이 다시 미국의 경제 위기를 심화시키는 악순환 고리를 형성하고 있다는 것. 한국뿐 아니라 브라질, 아르헨티나 재무장관들도 G- 20 회의에서 비슷한 목소리를 냈다고 참석자들은 전했다.
강 장관은 이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통화스왑 문제를 포함해서 많은 것들을 G7 국가만 하고 있는데 이를 G-20 수준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있었다"며 "그래서 이번 G-20회의가 중요하다"고 의미를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