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 분야 사업 위축…일부 기업 이중잣대도 문제
우리 사회의 만연한 부정·부패를 뿌리뽑는 계기가 될 것이란 기대를 모으며 시작된 김영란법이 오는 28일이면 시행 한 달을 맞는다. 비록 짧은 기간이지만 사회 곳곳의 잘못된 관행들이 하나둘씩 사라지고 있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나오고 있다. 또 식사 및 골프 접대와 불필요한 의례적 만남이 사라져 ‘저녁이 있는 삶’을 누리게 됐다는 평가도 많다. 그러나 국민권익위원회(권익위)의 지나친 확대 해석하고 판례 부재에 따른 혼선으로 인해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생겨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24일 재계에 따르면 정부와 지자체 등 공공기관에서는 공무원들이 일반기업과의 만남을 극도로 꺼리며 김영란법이 사회상규로 허용한 부분까지 모두 차단, 시빗거리를 아예 없애자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원활한 업무 수행을 위해 허용한 ‘3만·5만·10만원’(식사·선물·경조사비)이란 규정도 처벌 기준이 되는 직무 연관성에 대한 정의가 모호해 적용에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 이런 이유로 공공 영역에서 사업을 하는 중견·중소기업들은 공무원과의 접점이 사라져 업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 중견건설사 관계자는 “공공 수주 공사는 진행 과정에서 발주처와 협의할 일들이 많은데 공무원들이 만남 자체를 꺼리니 애로 사항이 많다”며 “이들 공사는 대부분 사회 기반시설을 건설하는 것인데 사업이 지연되면 그 불편이 국민에게 돌아갈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다른 편에서는 일부 기업들이 김영란법을 근거로 법 적용 대상자에게는 더치페이를 요구하고, 스스로는 갑(甲)의 지위를 이용해 대행사 등 하청업체에게 식대 지불을 요구하는 행태가 벌어지고 있다. 또 기업 홍보담당 임원 중에는 자신의 법인카드 한도가 줄어들 것을 우려해 3만원 범위 내에서 식사 약속을 오히려 더 늘리는 사례까지 나타나고 있다.
돌잔치 취소, 학교 행사·친목 모임도 된서리
일선 학교에서는 학생이 교사에게 건낸 음료수까지도 법 위반이란 해석이 나오면서 웃지 못할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며칠 전 대구에서는 한 초등학교 교사가 학부모에게 받은 케이크와 수제 비누를 돌려주지 않고 학생들과 나눠 먹고 사용했다는 이유로 조사를 받기도 했다. 또 일부 학부모들은 교사에게 감사의 표시를 하기 위해 선물이 아닌 밑반찬이나 손수 만든 음식을 전달하고도 법에 저촉되지 않을지 우려하고 있다.
각종 친목 모임도 된서리를 맞고 있다. 리서치업체를 운영하는 C씨는 사회 각계 각층이 모여 친목을 다지고 정보를 교류하는 조찬 모임을 만들기 위해 몇 달간 준비 작업을 해왔지만 최근 결성이 무산됐다. 참여를 약속했던 공무원이나 교수, 언론인 등이 김영란법 시행 이후 대부분 거절 의사를 전해왔기 때문이다. 또 기존에 운영하던 모임도 법 시행 후 몸을 사리는 분위기 탓에 참석률이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변호사는 “법의 취지는 공감하지만 적용과 시행에 있어 권익위가 유권 해석이 지나치게 포괄적이라 곳곳에서 부작용이 생겨나고 있다”며 “직무연관성이나 대가성 등의 기준을 분명히 하고 해당되지 않는 부분에 대해선 확대 해석을 차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