짭조름한 무언가를 먹어줘야 하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매운맛으로 자극을 주거나 거하게 부담을 주긴 싫을 때가 있습니다. 부드럽게 달래줄 무언가… 그 찰나를 가장 잘 비집고 들어오는 것이 ‘미니 소시지’라고 생각합니다.
미니 소시지의 대명사가 된 진주햄의 ‘천하장사’는 올해로 31세 청년이 되었습니다. 천하장사는 지난 30년간 국민 한 사람당 218개를 먹었고, 그 모두(개당 12㎝)를 일렬로 늘어놓을 경우 지구 28바퀴를 돌 수 있는 거리(130만 8000㎞)라고 합니다.
천하장사는 소시지가 흔치 않던 시절 국내 최초로 명태살을 주성분으로 한 어육소시지입니다. 나오자마자 어린이를 위한 대표 간식으로 자리 잡게 됐죠. 이후 어린이의 언니, 오빠, 이모, 삼촌까지 미니 소시지의 소비층이 되면서 10대 청소년을 겨냥한 롯데햄의 ‘키스틱’, 20대 청춘남녀를 겨냥한 CJ제일제당의 ‘맥스봉’이 등장했습니다.
특히 올해로 13세가 된 맥스봉은 5월 기준 천하장사를 밀어내고 미니 소시지 시장 1위(시장조사기관 링크아즈텍)를 차지했습니다. ‘치즈’로 여심을 녹이는 데 성공한 맥스봉은 올해로 누적 판매 개수 6억 개 이상 기록, 1분에 100개씩 판매되면서 국민 1인당 10개씩 먹은 셈이 됐습니다. 그동안 판매된 맥스봉을 일렬로 눕혀놓으면 지구를 2바퀴 돌 수 있는 거리(10만 4584㎞)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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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경쟁이 치열해진 만큼 미니 소시지의 맛도, 종류도 다양해졌습니다. 회사 근처 편의점 GS25와 세븐일레븐, CU를 한 바퀴 돌아 구입한 미니 소시지는 총 4개 브랜드의 10여 개 제품. 하나씩 맛만 보더라도 편식을 넘어서 포식을 할 수 있는 양입니다.
그래서 어육 소시지에 충실한 제품과 치즈의 풍미를 강조한 제품, 그 외 색다른 맛을 더한 제품별로 3개씩 나눠 먹어봤습니다.
먼저, 20대~40대 이데일리 식구 8명(20대 3명·30대 4명·40대 2명 / 여성 3명·남성5명)이 먹어본 결과를 평균으로 따져보면, 어육 소시지 중에는 진주햄 천하장사>롯데햄 키스틱=동원 리얼크랩봉 순으로 맛있다고 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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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9가지 제품 중 최고 점수를 받은 미니 소시지는 CJ 맥스봉 치즈와 CJ 맥스봉 크림치즈&콘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데일리 식구 중 남성, 특히 연령대가 높을수록 천하장사의 익숙한 맛을 찾았습니다. 반면 여성 식구는 담백하고 치즈의 맛을 잘 살린 키스틱이나 맥스봉을 좋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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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즈가 들어간 소시지는 맛의 조화가 선호도를 결정짓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맥스봉 치즈는 야들야들한 소시지의 식감과 치즈의 향, 감칠맛이 잘 어우러진데 반해 리얼치즈봉은 치즈의 식감과 맛이 소시지의 맛을 덮어버렸고, 천하장사 프리미엄은 치즈의 맛과 향이 소시지에 비해 2% 부족하다는 반응이 나왔습니다.
또 치즈가 들어간 미니 소시지는 편의점 음식의 모디슈머(Modisumer)가 불닭볶음면과 잘 어울리는 제품으로 꼽으면서 인기를 더하고 있다고 합니다. 모디슈머는 modify(수정하다, 바꾸다)와 consumer(소비자)의 합성어로, 제품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창조해 내는 소비자를 말합니다.
마지막으로 맥스봉 크림치즈&콘은 옥수수 알갱이가 씹혀 지루하지 않고 맥주 안주로 좋겠다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미앤미는 촉촉하고 깔끔하지만 소시지 특유의 맛과 향이 부족했고, 천하장사 블랙라벨은 치즈의 향은 진하지만 맛은 약하고 쫀득한 어묵의 맛이 강하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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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먹고 보니 미니 소시지 전쟁에서 각 브랜드의 무기가 분명해집니다.
진주햄은 원조답게 어육과 치즈의 질에 힘을 쏟는 모양새며, CJ는 다양한 재료를 풍부하게 담아내 여성 고객을 유혹하고 있는 듯 합니다. 롯데햄은 키스틱과 함께 진짜 천하장사 출신 방송인 강호동을 모델로 내세운 제품을 선보이는가 하면, 빅팜·빅팜 불닭과 같은 제품을 내놓으면서 개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동원은 게맛살과 찹쌀 등을 첨가하는 새로운 시도로 ‘참치가 들어간 소시지도 나오려나’하는 기대를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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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탱한 귤색 비닐 포장에 빨간 테이프, 고(故) 신동우 화백이 그린 천하장사 마스코트 그림으로 친근한 소시지가 순식간에 사람들을 꺼림칙하게 한 적도 있습니다. 물론 천하장사의 잘못이 아닙니다. 2011년께 재료의 절반이 ‘인육’이라며 무서운 소시지라는 사진이 나돌았습니다. 사진 속 천하장사의 비닐 포장에는 ‘인육’ 표기가 선명히 인쇄돼 있었습니다. 이에 당시 누리꾼들은 반신반의하며 “수입산 인육이면 외국사람을…”, “그럼 내가 식인종?”, “어쩐지 맛있더라”라고 반응했습니다. 2005년부터 떠돈 이 이야기는 포장지 인쇄과정에서 연육이 인육으로 잘못 표기되면서 일어난 해프닝으로 밝혀졌습니다.
이런 비위생적(?)인 이야기는 다행히 가짜이지만 미니 소시지가 ‘스마트한 기능’을 갖고 있다는 것은 진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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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외국 IT 전문 매체나 블로그 등은 이를 획기적인 방법이라고 소개했고, 그 가운데 한 매체는 “한국의 한 소시지 브랜드가 때아닌 아이폰 특수를 누리며 판매량이 상승했다”며 구체적인 성과를 전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당시 해당 브랜드의 소시지 판매량이 상승세를 보이긴 했지만 아이폰의 영향이라고 확인된 건 아닙니다. 또 한 매체는 “미국도 날씨가 추워지면 주머니에 넣고 다닐만한 소시지를 찾아봐야 한다”며 우스갯소리를 전했습니다.
저도 소시지 먹으면서 해봤습니다. 그립감이 좋았습니다. 손가락 닮은 소시지가 정말 소시지 역할을 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혹시 소시지 포장을 벗겨내고 따라하는 분은 안계시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