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지배구조 뒤흔들 삼성생명법…국회도 '신중'

與 특정기업 보유 3% 이상 금지 '원가' 대신 '시가'로
삼성생명·화재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 대량 처분 불가피
한해 4조원 매물폭탄 우려에 국회에서도 신중론 흘러
  • 등록 2020-10-28 오전 8:00:34

    수정 2020-10-28 오전 8:00:34

[이데일리 김인경 기자] 이건희 삼성 회장의 별세 이후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변화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특히 ‘보험업법 개정안’에 변수다. 보험업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삼성생명은 보유하고 있는 27조원 규모의 삼성전자 지분을 팔아치워야 한다. 삼성의 지배구조를 뒤흔들 수 있다.

취득원가→현재가로…삼성전자 주식 27조 시장으로 나와야

일명 ‘삼성생명법’으로 불리는 이 법안은 21대 국회가 열린 직후인 지난 6월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박용진·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했다.

법안의 골자는 ‘취득원가’를 ‘현재가’로 바꾸는 것이다. 보험업법은 보험사가 고객의 돈으로 투자하는 만큼, 손실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특정 회사나 그 계열사의 주식이나 채권 등 보유액을 총 자산의 3% 넘게 보유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현행 보험업법에서는 기준이 ‘취득 당시의 원가’다. 이를 현재가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박용진 의원은 “은행이나 상호저축은행 등 다른 금융업권과 달리 보험사만 다른 회사의 채권 또는 주식의 소유금액을 시가 등이 아닌 취득원가로 평가금액을 적용한다”면서 “현재 가치를 자산운용에 제대로 반영하지 못해 공정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고 말했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삼성전자를 보유하고 있는 삼성생명이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삼성생명은 1980년 이전 삼성전자가 주가가 1072원 수준일 때 5억815만7148주를 사들였다. 당시 취득 원가는 약 5500억원 정도다. 취득 당시 원가 기준으로 계산하면, 삼성생명 총 자산(309조원)의 0.18% 수준에 불과하다.

하지만 시가로 계산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삼성전자의 주가는 26일 6만400원으로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 가치는 30조7000억원에 달한다. 삼성생명의 총 자산의 9.9% 수준으로 삼성생명은 보유하고 있는 삼성전자 지분 3억6000만주(약 7%)를 처분해야 한다.

삼성화재 역시 마찬가지다. 1979년 삼성전자 주식 8880만주를 매입한 삼성화재의 취득원가는 774억원(총자산의 0.9% 비중) 수준이지만, 시가로 자산 비중이 6.2%로 뛰며 절반 이상을 처분해야 한다. 두 회사가 팔아야 하는 삼성전자 지분만 27조원 이상이다.

(그래픽=김정훈 기자)
삼성생명 지렛대 둔 지배구조 변화 불가피

삼성생명은 현재 국민연금을 다음으로 삼성전자 지분이 많은 지배주주다. 삼성그룹의 오너인 이재용 부회장이 보유한 삼성전자의 지분은 0.7%에 불과하다. 이 부회장이 삼성물산(17.48%) 지분을 보유하고 있고, 삼성물산은 삼성생명의 지분 5.01%를, 다시 삼성생명이 삼성전자의 지분 8.51%를 쥐고 있는 구조다. 즉, 삼성그룹 지배구조는 ‘오너 일가 → 삼성물산 → 삼성생명 → 삼성전자’로 이어져 있다는 얘기다.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이 삼성그룹 지배 고리의 ‘핵심’이라고 평가되는 이유다. 만일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지분을 대거 처분하면 이 고리가 끊어지게 된다.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의 지분은 이 부회장이 쉽게 시장에 내놓을 수 있는 주식이 아니다.

증권가에서는 삼성바이오로직스를 활용할 것으로 예상한다. 삼성전자가 일단 삼성물산이 보유한 삼성바이오로직스 주식 전량(지분 43.44%·18조원)을 사들이고, 실탄을 확보한 삼성물산이 삼성생명과 삼성화재가 보유하고 있는 삼성전자 지분을 사들이는 ‘삼각 거래’를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하더라도 천문학적인 세금이 문제다. 법인이 보유주식을 팔면 매각차익에 22%에 이르는 법인세를 포함해 각종 세금이 붙는다. 삼성생명이 1980년 삼성전자를 1주당 1072원에 사들였는데 현재 주가가 6만원 수준인 것을 고려하면 한 주에 5만9000원에 대한 법인세를 내야 한다. 약 4조~5조원 규모다. 게다가 삼성물산이 삼성바이오로직스 지분을 매각할 때도 법인세를 또 부담해야 한다. 이건희 회장의 별세로 상속세까지 감당해야 하는 삼성으로선 더욱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중간지주사도 하나의 대안으로 꼽힌다. 삼성물산을 중심으로 한 사업지주와 삼성생명을 중심으로 한 금융지주로 그룹을 재편한다는 것이다. 삼성생명은 이미 삼성화재(15%), 삼성증권(29.4%), 삼성카드(71.9%)를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중간지주사가 되려면 금융지주사법이 개정돼야 한다. 이 역시 ‘특혜’ 문제에 휩싸일 수 있다..

[이데일리 방인권 기자]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별세한 25일 서울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 도착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오른쪽)이 빈소로 이동하고 있다.
한 해 4조원 매물폭탄에…국회도 ‘조심조심’

보험업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삼성생명이 삼성전자의 지분을 팔게 된다면 아무리 5~7년에 걸친 단계적 처리를 한다해도 매년 4조원 가량의 매도 물량이 나오게 된다. 게다가 삼성의 지배구조 변화까지 야기하는 만큼, 국회도 이 법안에 대해 조심스럽게 다가가고 있다.

관건은 소관 상임위원회인 정무위의 법안 1소위를 통과하느냐 여부다. 법안1소위는 보통 만장일치로 처리한다. 하지만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을 포함해 이 법안을 반대하는 야당 의원들이 다수인 것으로 알려졌다. 거대 여당이 밀어붙이면 통과가 될 수도 있겠지만, 민주당 내에서도 신중론은 흐르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지난 3월부터 ‘동학개미운동’이 유행하며 삼성전자 지분을 사들인 개인투자자들은 급증했다. 정치권으로선 주가하락을 야기할 수 있는 매물 폭탄이 신경 쓰일 수밖에 없다. 한 여당 관계자는 “보험업법이라고 해서 보험사만 생각할 순 없는 법안”이라며 “사안이 복잡하고 방대해 당내 논의가 필요하다. (매각)시간을 더 길게 둔다거나 하는 다른 방법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보험사들의 위험자산도 ‘취득원가’가 아닌 ‘현재가’로 계산하는 게 맞다는 입장이지만, 섣불리 움직이는 것에는 부담을 느끼는 모습이다. 삼성이 자발적으로 해소해주기를 주문하고 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지난 7월 정무위원회에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 삼성에 그 문제를 지적해 왔다”면서 “자발적인 개선 노력을 계속 환기시켰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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