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내 삶을 바꾸는 한반도 평화

  • 등록 2018-05-11 오전 6:30:00

    수정 2018-05-11 오전 6:30:00

[강선우 대통령 직속 국가교육회의 전문위원] 기대와 설렘은 대개 어느 정도의 두려움을 동반하기 마련이다. 지난달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있었던 우리 마음도 이와 비슷하지 않았을까. 지난달 27일 전 세계인의 눈 앞에 실시간으로 드러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모습은 다소 놀라웠다. 처음에는 조금 긴장한 듯한 모습이었으나 이내 솔직, 대담, 유연함을 보여줬다. 철저하게
강선우 대통령 직속 국가교육회의 전문위원.
계산된 만남인 정상회담이니 행동 하나, 말 한 마디 모두 다 각자에게 유리한 결과를 얻어낼 셈법에서 나왔을 터이다.

허튼 말을 할 리 없는 남북 정상회담 자리에서 김 위원장은 “문 대통령이 오시면 솔직히 걱정스러운 게 우리 교통이 불비(불편)해서 불편을 드릴 것 같다”며 “평창 올림픽 갔다 온 분이 말하는데 고속열차가 다 좋다고 하더라. 남측의 이런 환경에 있다가 북에 오면 참 민망스러울 수 있겠다”고 했다. 낙후된 북한의 교통 인프라를 우회적으로 알리고, 우리의 우수함을 이례적으로 칭찬한 김 위원장의 파격 발언. 경의선과 동해선의 남북 연결과 현대화가 남북 간 경협 관련 사안으로 판문점 선언문에 포함됐다.

유엔의 대북제재 탓에 경협 문제 논의는 최소화 한다는 게 우리 측 입장이었지만, 김 위원장의 ‘사회주의 경제 강국 건설’을 위한 경제 개방의 뚜렷한 의도와 문재인 대통령이 제시한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이 맞물려 남북 경협 재개에 대한 기대감이 한껏 높아진 분위기다.

남북 경협이 본격적으로 실현되기만 한다면야 경의선·동해선은 시작에 불과할 것이다. 철도 현대화나 고속도로 신설 등 많게는 수십조 원의 투자가 필요한 대규모 사회간접자본(SOC) 사업들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부와 민간 차원에서는 경협 준비가 본격화 하는 분주함도 감지된다. 정부 차원의 판문점 선언 이행추진위원회와 민간 차원의 개성공단 비대위, 북방경제인연합회, 주요 은행들의 북한 인프라 개발 사업 참여 저울질 등 ‘한반도 뉴딜’을 향한 민관의 기대가 충만하다.

게다가 북한도 미국을 포함한 국제 사회의 대북 제재와 압박의 임계치에 다다랐고, 우리도 일자리 창출 등 새로운 돌파구와 함께 한반도 리스크를 줄이는 현실적 이해관계가 잘 맞아떨어져 분위기는 더욱 무르익어가고 있다.

또 문재인 대통령이 성공적으로 치러 낸 북핵 비핵화의 준결승전에 이어 이제 그 결승전의 마무리를 지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비즈니스맨이니, 남북 경협을 위한 삼박자가 이토록 잘 갖춰진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다.

한반도 평화 정착에 대한 우리 국민의 관심과 지지는 어느 때 보다 뜨겁다. 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은 최고치를 경신했고, 판문점 선언에 대해 ‘잘했다’는 응답도 88%가 넘었으니 말이다. 열기는 ‘통일 굿즈’(기념 상품)로 이어져 각종 배지, 티셔츠, 평양냉면으로까지 번지는 모양새다. 우리 안에 내재하고 있던 한반도 평화를 향한 갈망이 이렇게 컸던 모양이다.

이런 관심과 지지가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지속가능한 일상이 되려면, 줄어든 대북 리스크와 한반도의 평화가 우리 국민 개개인의 생활(일자리가 늘고,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 되는 등) 속에 녹아들어 직접 피부로 느끼고 자리를 잡도록 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말했던 ‘내 삶을 바꾸는 정권교체’처럼 ‘내 삶을 바꾸는 한반도 평화’ ‘내 삶을 바꾸는 남북경협’이 돼야 할 것이다.

지난 2월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작품전을 관람한 적이 있다. 3800억원에 이르는 작품을 설명하던 도슨트(docent·박물관이나 미술관 등에서 관람객들에게 전시물을 설명하는 안내인)는 한반도 전쟁 위기 때문에 유명 작품 유치가 쉽지 않을뿐더러 지불해야 하는 보험료도 어마어마해졌다고 했다. 해외 재단들과 전시 계약을 체결할 때 작품 보험료를 조금이라도 깎아보려하면, ‘전시 기간 한반도에 정말 전쟁이라도 나 작품이 모두 유실되거나 소실돼 버리면 어떻게 할 것이냐’고 되묻는다고도 했다.

남북 정상회담과 이어지는 북미 정상회담의 성공으로 줄어든 대북 리스크가 유명 작가들의 전시를 유치하는 일을 매끄럽게 해 줘서 더 다양한 작품들을 보다 수월하게 감상할 수 있는 ‘내 삶을 바꾸는 한반도 평화’가 와 주었으면 하고 소망한다.

곧 관람할 생각인 마르크 샤갈 특별전은 낮아진 대북 리스크와 한반도 평화의 시작이 보험료에 반영됐기를 기대해 본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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