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이순용 기자]우리 손목에는 작은 터널이 있다. 보통 수근관이라고 불리는 이 터널에는 무려 9개의 인대와 1개의 신경이 지나간다. 이 터널이 어떠한 이유로 좁아지게 되면 그 안에 같이 있던 신경이 눌리게 된다. 신경이 눌리면 손에 감각이 떨어지고 통증이 발생하게 된다. 물건을 세게 잡지 못해 떨어뜨리기도 하며 증세가 심해지면 손의 감각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상황까지 이르기도 한다. 손동작은 점점 둔해지고 바느질같은 정교한 동작을 할 수 없게 되기도 한다.
대부분의 손목터널증후군은 정확한 발병 원인을 알 수 없다. 손목터널을 좁힐 수 있는 원인이 다양하기 때문이다. 여태까지 손목터널증후군은 주로 ‘화이트칼라의 병’으로 인식됐다. 사무직의 특성상 키보드와 마우스를 오래 잡고 있어야 하며 이런 행동을 반복하다보면 손목에 무리를 줄 수밖에 없고 손목 인대가 두꺼워지며 증상이 생긴다는 설명이다.
그런데 최근 이런 통념과 다른 연구결과가 나왔다. 대한직업환경의학회에 발표된 연구결과에 따르면 손목터널증후군은 ‘화이트칼라’(사무 근로자)보다 ‘블루칼라’(육체 근로자)에서 더 많이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PC와 스마트폰에 장시간 노출된 노동자보다 반복적인 육체노동을 하는 노동자의 손목이 더 불안하다는 설명이다.
구체적인 수치를 살펴보면 블루칼라 노동자 10만명당 손목터널증후군을 겪고 있는 환자는 3247명으로 화이트칼라(1824명) 노동자의 의 1.8배에 달했다. 직업군 별로도 달랐는데 블루칼라 중에선 식품 가공업 종사자 5명 중 1명꼴(10만명당 1만9984명)로 손목터널증후군이 발병했다. 정육원이나 김치 제조 종사자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숙박ㆍ여행ㆍ오락ㆍ스포츠 분야 관리자(호텔 직원, 놀이기구 진행요원 등)와 환경ㆍ청소ㆍ경비 관련 단순 종사자가 뒤를 이었다. 여성은 농업ㆍ임업ㆍ어업 단순 종사자에서 10만명당 3만3118명으로 발병률이 가장 높았다.
연세건우병원 이상윤 원장은 “키보드를 치는 행위는 힘이 많이 들어가는 동작은 아니다. 그러나 장시간 도마 위에서 칼질을 하거나 무거운 물건을 드는 행위를 하는 경우에는 손목에 힘이 계속 들어간다. 화이트칼라보다 블루칼라 노동자가 손목터널증후군에 더 자주 노출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손목터널증후군이 ‘육체노동’에 더 취약하다는 것은 남녀의 발병 차이에서도 알 수 있다. 인구 10만명당 손목터널증후군 환자 비율은 여성이 4572명으로 남성(1798명)보다 두 배 이상 많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여성이 집안일을 더 많이 하기 때문이다. 프라이팬이나 냄비를 들고 옮기는 행위, 행주를 쥐어짜는 행위, 손빨래 등의 행위 모두가 손목에 무리를 주기 때문에 여성이 남성보다 손목터널 증후군에 더 쉽게 노출된다.
이상윤 원장은 “손목 터널 증후군이 원인을 찾기 어렵다고 해서 치료 방법을 찾기 어려운 것은 아니다”며 “초기에는 손목에 부담을 덜 수 있는 보조기를 착용하고 염증을 완화시킬 수 있는 비수술적 치료를 통해 완화시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원장은 “대부분의 환자들이 경증일 때는 통증이 심하지 않아 병원을 찾지 않는다”며 “상태가 악화되면 수술을 고려해야 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