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진실 감추려 눈가리고 아웅하는 軍

  • 등록 2014-03-28 오전 8:51:15

    수정 2014-03-28 오전 8:51:15

[이데일리 최선 기자] 지난 24일 오전 육군 관계자들이 국방부 기자실을 찾았다. 이들은 여군 부하를 성추행·성희롱한 혐의를 받고 있는 노모(36·3사 37기) 소령에 대한 군사법원의 1심 판결에 대해 설명하겠다며 브리핑석에 섰다. 노 소령에게 ‘집행유예’ 선고가 내려진 지 나흘만에 군 관계자들이 기자실을 찾은 이유에 관심이 쏠렸다.

지난해 10월 강원도 화천 모부대에서 복무 중이던 오모(당시 28·여) 대위가 자신의 차량에서 번개탄을 피워 스스로 목숨을 끊은 채 발견됐다. 이른바 15사단 여군 대위 사망 사건이다.

같은 달 열린 국정감사에서 손인춘 새누리당 의원은 유족이 보낸 문자 메시지를 공개했다. ‘하룻밤만 자면 모든 게 해결되는데 하면서 매일 야간 근무시키고. 아침에 출근하면 야간 근무 내용은 보지도 않고 서류를 던졌다’는 내용이었다.

가해자 노 소령이 오 대위에게 ‘성관계’를 요구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여론이 들끓었다. 1심 재판 결과에 관심이 쏠렸지만 결국 집행유예로 판결이 나자 비난이 일었다.

이 때문인지 군 관계자들은 우르르 몰려와 “하룻밤만 자면 해결될 텐데 이런 이야기는 ‘소설’”이라고 잡아뗐다. 유서에도 일기장에도 이런 내용은 없었다는 것이다.

군 당국의 설명대로 유서와 일기장에 이런 내용은 없다. 그러나 이 내용은 오 대위의 친구 박모씨의 증언으로 나온 것이다. 법정에서 진술서는 증거로도 채택됐다. 이런 사실을 모를 리 만무한 군 검찰이 ‘소설’이라고 폄훼한 것이다. 검찰인지 노 소령의 변호인인 지 헷갈렸다. 기자들 사이에선 “군 검찰이 이번 사건을 너무 가볍게 보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난이 쏟아졌다.

군은 아예 처음부터 ‘성관계 요구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해명할 작정으로 기자실을 찾은 것 같다. 끊임없는 성군기 문란사건이 군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있다고 판단한 군 수뇌부의 본능적 행위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군이 마치 사실인양 ‘거짓’을 말하는 것은 잘못이다. 자신들의 딸·여동생이 성희롱당했어도 이렇게 대처했었을까. 언론을 이용해 수뇌부의 불쾌함을 지우려한 군의 사고방식이 몹시 불쾌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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