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용호 작가가 자신의 신작 ‘오리진’ 시리즈 앞에 서 있다(사진=가나아트센터) |
|
[이데일리 김인구 기자] 이옥경 가나아트센터 대표가 몇 해 전 스페인의 아르코 아트페어에 지용호(36) 작가의 작품을 들고 갔을 때의 일이다. 사실 처음엔 지 작가의 조각 ‘뮤턴트’(Mutant) 시리즈를 가져가야 할지 말지 고민을 많이 했다. 워낙 엄청난 크기여서 운송비용이 800만원이나 들었기 때문이다. 작품의 희망 판매가인 600만원보다도 많았다. 아트페어 셈법대로라면 가져가지 말아야 옳았다. 그런데 “한 번 소개나 해보자”는 심정으로 출품해 포장을 뜯는 순간,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한 컬렉터가 포장을 채 뜯지도 않은 상태에서 보고 “작가가 누구냐. 구매하고 싶다”고 했던 것. 행복한 고민 끝에 900만원에 판매했다. 물론 예상보다 높은 가격을 받았다는 것보다는 해외 컬렉터에게 인정받았다는 만족감이 더 컸다.
안성하(37) 작가도 마찬가지였다. 작품을 모아서 해외전시에 소개하기만 하면 러브콜이 쇄도했다. 원래 작업시간이 오래 걸리는 데다 최근 안 작가가 출산·육아를 병행하면서 작품은 해외에 내놓기에도 턱없이 부족했다. 하지만 컬렉터들은 작가가 실감나게 그려낸 유리잔 속의 담배꽁초에 반했다. 작가가 남자인 줄 알았다가 여자라는 걸 알고 놀라는 일도 많았다.
해외 컬렉터가 먼저 알아본 젊은 작가 안성하·지용호가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개인전을 연다. 국내에서의 마지막 개인전 이후 각각 7년과 4년 만이다. 둘 다 혁신적인 변신을 시도했다. 흘러간 시간 만큼이나 변화의 폭이 넓고 크다.
| 안성하 ‘무제’(사진=가나아트센터) |
|
안성하는 줄곧 그려오던 대상을 담배꽁초·사탕에서 와인 코르크 마개로 바꿨다. 일상의 기호품이자 작가 스스로가 평소 즐기는 것들이다. 안 작가는 실제로 적당한 흡연과 음주를 즐긴다고 했다. 담배꽁초 그림에서 보이듯 즐겨피는 담배는 던힐이다.
흔한 것들인데 주목받는 이유는 이들이 맑고 투명한 유리잔 안에 담겨 있는 형태이기 때문이다. 달콤한 기호품이지만 지나치면 때론 ‘독’이 되는 양면성을 나타낸다. 또 극사실주의 회화처럼 정밀하지만 가까이 다가가서 보면 윤곽선이 희미해지며 추상화면을 경험하게 하는 독특함이 있다.
안성하는 “즐기는 걸 그려야 질리지 않고 오래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자연스럽게 담배·사탕·와인으로 옮겨갔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마저도 어느새 내게 공식처럼 돼버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또 다른 변신을 꿈꾼다”고 말했다.
| 안성하 ‘담배’(사진=가나아트센터) |
|
지용호는 안성하보다 변화의 정도가 더 심하다. 그는 이전엔 폐타이어를 이용한 대형 조각을 했다. 황소·곰·사자·상어·버팔로 등을 본능에 사로잡힌 야수처럼 거칠게 표현했다. 그러나 이번엔 작품의 재료를 바꿨다. 바로 전복 껍데기다. 거푸집에 레진으로 본을 떠서 만든 조형물에 전복 껍데기를 붙였다. 그 모양이 마치 외계 우주선이나 심해저의 물고기 같아 보인다. 시리즈를 만들고 ‘오리진’(Origin)이라 이름을 붙였다. ‘뮤턴트’와는 형태·질감·작업방식 등 모든 게 다르다.
지용호는 “내 작업에 싫증이 나서 한 번 질러봤다”며 “타이어보다 전복 껍데기 작업이 더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복을 선택한 이유는 그것이 주는 오묘한 색깔 때문이다. 그려낼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메탈 같은 느낌도 있어서 작품의도와도 통한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2월 16일까지. 02-3217-0036.
| 지용호 ‘뮤턴트’ 시리즈 중 ‘버팔로’(사진=가나아트센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