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갑의 부동산 레이더]추석과 가족, 부동산의 함수

  • 등록 2011-09-02 오전 9:20:00

    수정 2011-09-02 오전 9:20:00

[이데일리 박원갑 칼럼니스트] 해마다 찾아오는 추석이나 설 같은 명절은 부동산 시장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곤 한다. 친인척들이 모처럼 만나 나누는 대화에서 부동산은 단골 메뉴다. 그런 정보 나눔 행위들이 빈번하기 마련인 명절은 부동산 시장 분위기나 방향을 결정짓는 데 분수령이 되기도 했다.

집단화된 생각들은 미국 경제학자 로버트 쉴러(Robert Shiller)교수의 말처럼 ‘이야기(story)’를 통해 사방팔방으로 전염될 때가 많다. 명절 때 만난 친인척들끼리 입소문을 통해 나누는 스토리는 바이러스처럼 다양한 전념을 일으킨다. 자신감이나 두려움도 전염력을 가지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모르는 사람보다 피가 섞인 가까운 사람들을 더 신뢰하는 경향을 띠기 때문에 친인척 스토리의 영향력은 보다 강할 수 밖에 없다.

이처럼 부동산시장에서 명절을 주목하는 것은 시장 참여자들의 집단 사고화 경향과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어떤 계기로 시장 참여자들이 한쪽 방향으로 예상하게 되면 시장은 ‘자기실현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 상태에 빠지게 된다.

소수가 한쪽 방향을 예상할 경우에는 시장에 영향력을 발휘하기 힘들다. 그러나 절대 다수가 한쪽 방향을 확신할 경우 집단적인 예상 자체가 시장을 움직이는 큰 힘으로 작용한다. 펀드멘털의 변화가 없어도 다수의 시장참여자들이 가격이 오른다고 예상하면 실제로 가격이 오를 수 있다는 얘기다.

흥미로운 것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아파트를 구매할 때 가족이나 친지의 ‘이야기’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실제로 하정순 박사는 지난 2003년 대구지역에서 아파트 구매경험이 있는 60세 미만 주부 110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해 이 같은 연구결과를 얻었다.

설문조사에 따르면 아파트 구매 시 영향을 미치는 사람들을 묻는 항목에서 가족이나 친지가 54.5%로 전문가 및 공인중개사 22.8%보다 훨씬 많았다. 이는 아파트 구매 시 소비자들이 자신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전문가 및 공인중개사의 조언보다는 가족이나 친지의 이야기를 신뢰하고 수용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심지어 아파트 구입 시 정보 제공원으로 친척·이웃의 구전(13.5%)이 신문광고(11%)나 TV광고(3.9%)보다 많았다. 이 역시 아파트가 구매할 때 광고보다 구전으로 정보를 얻는 내용을 더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즉 우리나라 사람들은 합리적이고 체계적인 분석보다는 친인척의 주관적인 경험과 정보, 소문 등에 의존해 아파트를 구매하고 있는 것으로 시장이 비합리성을 띨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 지난 몇 년간 명절에 만난 친인척들이 부동산을 사서 큰돈을 벌었다는 얘기는 투기 심리를 자극하곤 했다. 대박 신화에 귀가 솔깃해지면서 마음이 급해진다. 더 오르기 전에 사야겠다는 조급증이 팽배해진다. 이 같은 묻지마 부동산 재테크 수요가 몰리면서 시장을 과열로 몰아가는데 일조했던 것이다.

올 추석은 어떨까. 추석이 부동산 매매시장에서 상황반전의 계기가 될까. 아니면 지금과 같은 상태가 이어질까. 개인적으로는 후자가 될 것으로 보인다. 지금으로서는 시장 분위기를 상승쪽으로 돌려놓을 만한 이렇다 할 모멘텀이 없기 때문이다.

올해는 아마도 부동산으로 큰 돈을 벌었다는 얘기는 아득한 추억처럼 들릴지 모른다. 오히려 집값이 지금보다 떨어지는 것은 아닌 지, 내놓은 집은 언제 팔릴지 걱정하는 소리를 더 많이 들을 것 같다. 천정부지로 치솟아 민생고의 주범이 돼버린 전세대란이 핫 이슈로 떠오를 지 모른다. 어쨌든 부동산 버블기를 지나 평상시로 돌아온 시대의 명절 풍경도 달라질 것 같다.

박원갑 부동산 1번지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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