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가 4년여 간의 여의도 활동기를 다룬 책 ‘(어항)을 깨고, 바다로 간다’(사이드웨이)를 최근 펴냈다. 김예지 의원은 “처음 비례대표 제의를 받았을 때 당 관계자들은 ‘그냥 당신이 안내견과 국회를 돌아다니는 것만으로도 큰일을 하는 것’이라며 4년짜리 들러리 역할을 제안하는 의도를 숨기지 않았다”며 “나는 그것을 깨기 위해 여기 왔다. 나는 내 갈 길을 갈 뿐”이라고 했다.
인생 여정과 여의도 활동기
이 책에는 장애-비장애의 경계를 넘어 분투해 온 김 의원의 인생 여정과 정치 경험이 오롯이 담겼다. 삶, 장애, 인권, 정치, 공동체 등에 대한 자신만의 생각을 가감 없이 털어놓는다.
책 제목은 김예지 이름 세 글자를 전 국민에게 알렸던 2023년 6월14일 국회 대정부 질문 마무리 발언에서 따왔다. 진영을 막론하고 기립박수가 쏟아진 이례적인 장면으로 지금까지 회자된다.
국회의원 이전의 어린 김예지도 엿볼 수 있다. 그가 지금의 인내와 극기 태도를 갖게 된 것은 외할머니 덕분이다. 김 의원에 따르면 할머니는 장애에 대한 차별은 딱히 없었지만, 대신 성과를 중시했다. “다른 애들이 10장 읽을 때 너는 1장 읽는다. 10분의 1밖에 못 배우는 것”이라며 닦달하던 할머니의 모습이 또렷하다. 김 의원은 “부딪힘은 내게 특별한 경험이 아니라, 그냥 일상이고, 참는 것은 습관”이라며 “장애는 장애대로 나의 일부분일 뿐, 나는 지금 이 상황과 환경 속에서 무언가를 더 잘해낼 수 있다는 마음가짐이었다”고 기억했다.
그래서일까. 장애와 관련된 농담도 열려 있는 편이다. 그는 “내가 세상에 다가가는 좋은 방편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종종 요긴하게 활용한다”고 했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눈치를 보지 말고 뭔가를 말해야 하는 순간, 후딱 해야 할 말들을 해치우고 웃으면서 “제가 안 보여서 눈치가 없나 봐요”라고 능청을 떤다고 책에 썼다.
|
그 많은 오해와 비난을 감수하면서도 장애인 이동권 시위 현장에서 시민들 앞에 무릎을 꿇었고, 독립적 헌법기관으로서 민의를 대변하기 위해 때로는 당론과 다른 선택을 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장애인의 이동권 문제 앞에 ‘내가 만약 이 사람이었다면’이 아니라 ‘내가 바로 그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고 고백한다. 이동이 보장되지 않으면 학교, 직장, 병원 등 일상에 필요한 모든 곳에 접근이 어려워지므로 이는 우선순위의 문제가 아니라 유보될 수 없는 인권의 문제임을 지적한다. 날카로운 말로 서로를 찌르기 바쁜, ‘예의’가 실종된 정치의 세계에서 올곧게 국민을 대변한다.
요즘 그의 관심 과제는 ‘격차 해소’다. 약자를 위한 정책, 소외된 이들을 위한 정책, 다양한 분야의 불합리한 격차를 줄이고 없애는 방안을 모색한다. 갈수록 양극화하는 정치권을 향해서는 “우리 정치가 공격적 자세에서 벗어나 ‘반성할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며 “정치적 득실을 따지기 이전에 국민을 끌어안는 게 먼저”라고 말한다.
김예지 의원은 “나는 쇼를 한 것이 아니다. 뭘 보여주려고 온 사람이 아니라 일을 하러 온 사람”이라며 “내가 내리는 순간순간의 ‘작은 결단’과 그 사소한 성실성이 타인과 나 사이의 거리를 좁히고, 우리의 지평을 넓힐 수 있다면 됐다. 그거면 됐다”고 소신을 내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