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후보는 1963년(호적상 1964년) 경북 안동 예안 도촌리 산골 마을에서 9남매 중 일곱째로 태어났다. 가족을 잘 돌보지 않았던 아버지, 삶의 무게에 짓눌려 아들의 출생일조차 헷갈려했던 어머니 밑에서 빈곤하게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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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세 `소년공` 이재명, ‘억강부약’ 철학 갖다
안동에서 5km 산길을 홀로 걸어 초등학교를 다녔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안동에서 경기 성남 상대원 시장 뒷골목 반지하 단칸방으로 이사한다. 13세 나이의 이 후보는 찢어지게 가난한 형편에 중학교 진학 대신 소년공 생활을 시작한다. 일당 400원, 크고 작은 산재를 겪던 날들이었지만 당시 즐거웠다고 회상한다.
“공장 일은 어차피 견뎌야 하는 시간이었고, 어머니 손잡고 공장을 가는 게 즐거웠죠. 철야 근무를 하고 집에 가면 새벽 두시인데, 그때까지 어머니가 봉투를 붙이며 저를 기다려줬어요. 포근하고 행복했어요.”
이렇게 살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은 고등학교 무렵이다. 공장에서 지속적으로 폭력을 겪고, 프레스에 왼팔 손목 관절이 눌리는 사고로 6급 장애인 판정까지 받은 이 후보는 1978년 4월 검정고시 학원에 등록, 같은해 8월 고입, 이듬해 4월 대입 검정고시에 합격한다. 청소년기 6년 간의 소년공 생활은 이 후보가 강조하는 `억강부약`(강자를 누르고 약자를 도움) 정치 철학의 바탕이 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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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시합격으로 인생2막…삶을 2번 바꾼 노무현
이 후보는 사법연수원에서 고(故)노무현 전 대통령과 운명 같은 만남을 갖는다. 이 후보는 그때 노동법학회에 가입해 활동했는데, 당시 부산에서 이름난 인권 변호사로 활동하던 노 전 대통령의 강의를 듣고 인권 변호사로 진로를 정했다.
“인권변호사가 되기로 결정한 이유가 노 전 대통령 때문이에요. 원래는 대학 가서 잘 먹고 잘 살려고 했죠. 드디어 해방이다, 생각했어요. 판·검사를 1년만 해도 전관예우를 받는데, 밖은 추울 거 같은 거예요. 인권 변호사라고 하는 게…. 그런데 노 전 대통령이 본인 활동 내역을 설명하시고 `변호사는 굶지 않는다. 결코 굶을 수 없다. 걱정하지 말고 현장으로 가라`고….”
이 후보는 1989년 제2의 고향 성남에서 변호사 사무소를 연다. 가난한 사람과 강력범죄, 철거민이 많았던 성남에서 이 후보는 기득권 부패와 싸우고 고통 받는 민중의 대변자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이 후보는 이 시절 인근 이천·광주시 노동상담 소장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에서 활동하며 노동·인권 변호사로 시국사건 변론을 주로 맡았다. 1995년 성남시민모임(현 성남참여자치시민연대) 창립 구성원으로 참여하며 시민운동을 시작했다.
정치인의 길을 걷기로 결심한 것은 2004년 무렵이다. 당시 성남시립의료원 설립 및 운영에 관한 조례를 발의했지만 성남시의회가 토론 절차도 없이 1분도 안 돼 부결시키면서다. 이에 항의하는 과정에서 특수공무집행방해죄로 고발 당하고 농성 해산 뒤 주민 교회 건물 지하로 피신했는데, 이때 정치를 직접 하겠다고 마음먹었다고.
정치인의 길을 열어준 것도 노 전 대통령이었다고 이 후보는 기억한다. 노 전 대통령 당시인 2004년 선거법 개정으로 출마자들이 선거비용을 지출하지 않는 `완전 선거공영제`를 실시되면서다.
“2004년 전까지만 해도 시민운동은 해도 정치는 안 한다고 생각했다. 정치인이 되면 패가망신하거나 큰 도둑이 되거나 둘 중 하나였으니까. 그런데 노 전 대통령이 선거개혁으로 이걸 해결하신 거다.”
이 후보는 첫 정치 도전으로 2006년 성남시장 선거에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2008년 총선에서 분당구에 전략 공천돼 출마했지만 역시 고배를 마셨다. 그러던 2010년, 민선 5기 성남시장에 당선된다. 이렇게 정치인으로서의 인생 3막이 시작됐다.
2014년 6월 민선 6기 성남시장에 재선하면서 이 후보의 성과에 대한 인정을 받았다. 2015년 성남시 3대 무상복지 정책(청년배당·무상산후조리지원·무상교복)을 발표해 중학생 대상 무상교복 지원을 시작했다. 무상산후조리원은 불발, 산후조리지원으로 우회했으며, 부분적 기본소득제인 청년배당을 지역상품권으로 지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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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무효형’ 위기 딛고 대권주자 발돋움
2017년 19대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 대선 경선에 출마했지만 문재인 대통령에 밀려 낙선했다. 2018년 3월 성남시장을 사퇴, 경기도지사 출마를 선언했다. 그해 6월 민선 7기, 제35대 경기지사에 민주당계 출신으로는 20년 만에 당선됐다.
2018년 취임 후 기본소득위원회를 설치, 기본소득제 추진에 나섰다. 같은해 10월에는 경기의료원 안성병원에 전국 최초 수술실 폐쇄회로(CC)TV 운영을 시작했다. 2019년 8월에는 경기도 계곡 내 불법 점유시설물 강제철거 계획을 공포, 행정 집행 1년이 채 안 돼 하천 불법업소 96%를 청소했다.
최대 위기는 2019년 법정에 섰던 일이다. 2018년 지방선거 TV토론회에서 친형 강제입원, 검사 사칭, 대장동 개발 업적 과장 등의 의혹이 나왔는데, 검찰이 이를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 혐의와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 등으로 기소했다. 2019년 1월부터 재판이 시작, 5월 1심에서 무죄, 9월 2심에서 벌금 300만원에 당선무효형, 지난해 7월 대법원이 당선무효형 원심 파기, 10월 파기 환송심 무죄 선고로 사건이 마무리됐다.
위기를 극복하며 명실상부한 대선주자로 발돋움한 이 후보는 지난 7월 1일 `새로운 대한민국, 이재명은 합니다`라는 슬로건으로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