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건축 뿌리는 초가"…김태수의 건축학개론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개관 30주년 특별전
7만3360㎡ 과천관 설계·건축한 거장
화강암 외벽·초가지붕 전통미로 건축계 한획
미들버리초등학교·튀니지美대사관 등
자연 속 공공시설로도 명성 얻어
  • 등록 2016-02-23 오전 6:16:10

    수정 2016-02-23 오전 6:16:10

건축가 김태수가 설계한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의 실내 전경. 1986년 완공한 미술관은 화강암을 소재로 지어 주변 청계산·관악산과 조화를 이룬다는 호평을 받으며 한국을 상징하는 문화건축물이 됐다(사진=국립현대미술관).


[이데일리 김자영 기자] 건축은 가장 친숙하고 ‘벽’이 낮은 미술의 한 부문이다. 사람의 일상과 늘 함께하는 것이 건축이라서다. 그런 이유로 건축은 쉬운 듯 어려운 부문 중 하나로도 꼽힌다. 일상적인 공간을 특별하게 또는 특별한 공간을 일상적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건축은 대단히 매력적인 분야다. 기능적인 요소를 더할 때에야 디자인적 요소를 풍성하게 살려낼 수 있어서다.

1986년 8월 25일 신축 개관을 한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이 30주년을 맞아 역사와 의미를 돌아보는 특별전으로 건축가 김태수(80)의 삶과 건축인생을 한눈에 볼 수 있는 회고전을 연다. 과천관은 김태수가 직접 설계한 미술관이다. 2014년에 시작한 한국현대미술작가 시리즈 중 건축분야에서 두번째 전시이기도 하다.

◇자연과 조화…‘초가 파노라마’를 건축에 넣다

건축가 김태수가 자신의 건축 설계에 영감을 준 초가마을을 가리키며 설명하고 있다(사진=국립현대박물관).
“25세에 미국으로 건너갔다. 니체와 같이 서양 문화와 철학을 바탕으로 건축을 하는 사람들 속에서 나만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오랫동안 고민했다. 그때 떠오른 것이 초가 지붕이 줄지어 파노라마를 이룬 모습이었다. 해방 전 가족과 함께 잠시 살았던 경상남도 함안의 한 마을이 마음 속에 깊이 자리하고 있었고 이것이 그들과 차별화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루이스 칸 예일대 건축과 교수의 건축세계에 빠져 이곳에서 유학을 하는 동안 그는 상당한 시간을 방황했다. 어떤 건축을 해야 하는지의 근본적인 물음 때문이었다. 해결은 초가에서 찾았다. 한 채의 초가는 초라하지만 초가들의 지붕이 겹겹이 어우러져 만들어낸, 하늘·땅·언덕이 하나가 되는 순간은 어떤 말로도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방황의 사간은 끝났다.

미국 뉴잉글랜드의 ‘미들버리초등학교’(1982)와 미국 공공주택의 새로운 발견이란 평가를 받은 ‘벤블록주택’(1970)도 모두 ‘초가 파노라마’를 응용했다. 그래서일까. 이 건축물은 모두 주변과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아울러 그 속에서 생활하는 이들의 사소한 것까지 최대한 배려한 흔적이 돋보인다. 김태수는 “미들버리초등학교 건물 밖에 따로 세운 빨강벽은 사실 아이들이 스쿨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비를 맞지 않고 학교로 들어갈 수 있게 만든 처마를 달리 표현한 디자인적 요소”라고 소개했다. 미들버리초등학교 디자인으로 작가는 미국에서 건축상을 받았다. 미국 전역에서 몰려든 교육 관계자들이 다자인을 참고하는 건물이 되기도 했다.

이후 작가는 ‘미국 해군 잠수함 훈련시설’(1979), ‘하트퍼드대 그레이센터’(1987), ‘튀니지 미국대사관’(2002) 등 미국의 공공시설을 다수 설계하며 건축역사를 새로 썼다.

건축가 김태수가 디자인한 ‘튀지지 미국 대사관’(사진=국립현대미술관).


◇흔하디 흔한 ‘화강암’을 쓰다

김태수는 1986년 완공한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을 설계하며 국내 건축계에도 한 획을 그었다. 전두환 정권 시절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을 앞두고 한국을 상징할 수 있는 건축물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일었고 정부는 국내에서 가장 잘나가던 건축가 김수근과 김태수에게 지명 현상을 제안했다. 응모 결과 최종적으로 김태수가 결정됐다. 하지만 대지면적 7만 3360㎡(약 2만 2190평)의 광활한 부지에 어떤 건축물을 세워야 할지 김태수는 큰 고민에 빠졌다.

역시 이때도 초가 파노라마 철학을 넣었다. 거대한 건축물이지만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것에 방점을 두고 영주 부석사와 수원성을 수없이 답사하며 영감을 얻었다. 그 결과 과천관에는 한눈에 드러나는 기와 등의 전통 문양 대신 단(段) 구조와 축대, 성곽의 곡선과 지붕 등 우리 전통 건축물의 느낌이 그대로 들어가 있다. 당시 설계를 받아본 정부 관계자들이 한국의 미가 가시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고 반대도 했지만 전두환 전 대통령이 김태수 작가의 설계를 높이 평가하면서 원안대로 짓게 했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김태수의 회고전이 열리고 있는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전시실 전경(사진=국립현대미술관).


김태수는 과천관을 지으며 또 한 가지 ‘우리 것’을 넣었다. 다름 아닌 화강암이다. 화강암은 국내서 가장 흔한 돌이며 과천관을 둘러싸고 있는 청계산·관악산 일대도 모두 화강암 천지였다. 여기서 아이디어를 얻은 김태수는 당시 멋진 건축물에는 으레 대리석을 주로 쓰던 유행과 관례를 무시하고 화강암을 외벽에 쓰는 파격을 단행했다.

‘볼품 없는’ 소재라는 반대를 무릅쓰고 화강암으로 과천관을 완공하자 오히려 반응은 좋았다. 과천관은 주변 산과 조화를 이루며 멋진 풍경을 연출한 덕이다. 서울에서 과천으로 넘어가는 고개인 남태령에선 과천관이 주변 산과 어우러져 멋진 파로나마 전망을 선사한다.

전시에 앞서 김태수는 전시장을 직접 찾아 설계도면과 모형을 일일이 설명했다. “이번 전시는 단순히 완성물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 건축가가 건축의 콘셉트를 잡고 아이디어를 구체적으로 발전시키고 모형을 만들어낸 전 과정이 담겨 만족스럽다”는 그는 “국내 후배 건축가에게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는 기회를 다양하게 모색 중”이라며 웃음을 지었다. 전시는 6월 6일까지다. 02-2188-6000.

김태수가 디자인한 미국 뉴잉글랜드 ‘미들베리초등학교’(사진=국립현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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