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산세와 1가구 1주택 양도세 개편 논의가 당정에서 큰 이견없이 급물살을 타고 있는 것과는 달리 종부세는 개편 필요성과 효과에 대한 논란이 무성할 뿐 구체적인 그림은 나오지 않고 있다.
재산세나 양도세가 일반 국민들의 세부담 완화나 부동산 거래 활성화 차원에서 추진되고 있어 논쟁의 여지가 상대적으로 적다. 하지만 종부세는 참여정부 당시 도입 자체의 문제점에서부터 가진자와 못가진자의 형평성 논란, 감세 효과 등에서 불씨가 사그러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 차원에서도 부동산 경기 활성화와 집값 안정이라는 모순된 정책 사이에서 당국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국민 정서나 시장 상황을 잘못 판단하고, 정책을 실행에 옮길 경우 자칫 부작용에 대한 책임을 뒤집어 쓸 수 있고, 역풍을 맞을 여지도 남아있다는 점을 고민스러워 하는 분위기다.
◇ 참여정부 부동산 정책 `기조부터 잘못됐다`?
참여정부에서 도입된 부동산 세제 정책의 핵심은 보유세는 강화하는 대신 거래세는 인하하겠다는 원칙이 골자다. 보유세를 강화해 주택 시장이 투기대상이 되는 것을 막는 동시에 거래세를 낮춰 부동산 거래를 활성화하겠다는 것.
하지만 MB(이명박)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이와는 180도 다르다. 조세 정책으로 집값 혹은 부동산 투기를 잡겠다는 정책기조 자체가 잘못됐다는 주장이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28일 "조세제도를 부동산 정책에 쓰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해왔다"면서 "조세정책을 여러가지 목적으로 쓰게 되면 조세의 고유한 기능이 훼손되고 국가정책 내지 국가 권위를 훼손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강 장관의 발언은 부동산 세제를 강화해 투기를 막고, 집값을 안정화하겠다는 참여정부 정책 기조가 근본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다는 것. 한나라당도 이런 논리에 기초해 재산세, 양도세 부담 완화 방침을 밝히고 있고 종부세 자체의 문제점에 대한 지적도 제기하고 있다.
MB정부에서 달라지고 있는 부동산 세제 정책기조에 동조하는 시각도 적지 않다. 현진권 아주대 교수는 "세제를 통해 집값을 잡겠다는 정책 목표로 인해 다양한 부작용이 생긴 것은 사실"며 "이런 차원에서 MB 정부가 불합리한 부동산 세제를 개편하겠다고 나서는 현상은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 한나라당도 신중한 종부세..`강부자` 비판 의식?
감세 정책에 대해 적극적인 한나라당도 종부세에 대한 공식입장 표명은 신중한 모습이다. 임태희 정책위 의장은 "양도소득세 완화 문제는 빠른 시일내에 논의할 것"이라며 "다만 종합부동세의 경우 정기국회에서 논의를 시작하겠다"고 말했다. 이런 배경에는 정치 논리가 포함돼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현재 종부세를 내는 국민은 전체의 2% 정도에 불과하다. 출범 초부터 '강부자'(강남 부자 내각)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던 한나라당과 정부로서는 종부세 개편으로 인한 득실 계산에 신경을 곤두세울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 내부에서 종부세를 개편하겠다고 나오는 이유는 참여정부 당시 정치논리에 기초한 부동산 세제를 어떤 식으로든지 손봐야 한다는 인식에 근거를 두고 있다.
종부세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밝힌 공성진 최고위원은 "2% 아니라 0.2% 라도, 단 한사람의 국민이라도 정부로부터 핍박받는다면 한나라당은 분연히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세제 개편에 소극적인 재정부조차 부동산 가격을 끌어내리기 위해 무리하게 도입됐던 2주택 이상 보유자에 대한 양도세 중과, 6억원 이상 주택의 종부세 상한선 50% 등의 제도는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문제는 부동산 시장이 정부의 부동산 세제 개편에 따라 어떤 식으로 반응할 지를 예단하기 어렵다는 것. 부동산 세제를 완화할 경우 집값이 또 다시 들썩일 가능성이 높고, 이 경우 한나라당과 정부에 쏟아질 비판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재정부 관계자는 "최근 재산세, 양도세, 종부세 등 부동산 세제 개편 논의가 봇물 터지듯 나오고 있지만, 정부 차원에서 심도깊에 논의된 사안은 아니다"며 "시장에 잘못된 신호를 보내는 것이 아닌 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 부동산 시장상황이 `관건`..역풍은 피하자
또 한편으로 고려해야 할 부분은 부동산 경기. 건설 경기는 부동산 시장 뿐 아니라 금융 시장에도 커다란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지방의 미분양 아파트가 속출하면서 `건설업체 도산 - 금융권 대출 부실화 - 신용경색의 확산과 기업 부도- 내수 침체`로 이어지는 악순환 고리가 형성될 것이라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여기에 건설 경기가 내수에 미치는 영향도 고려해야 한다. 특히 수도권보다는 지방에서 건설 경기를 부양해야 한다는 대한 요구가 크다. 건설 경기 부양은 새로운 일자리를 만드는 효과도 크다. 정부도 이런 관점의 세제 개편에는 소극적으로 찬성 의견을 보내고 있다. 특히 건설업체를 관할하고 있는 국토해양부에서 적극적이다.
이 때문에 부동산 시장이 요구하고 있는 사업용 부동산에 대한 종부세 부담 완화, 지방 1가구2주택 양도세 부담 완화 등의 개선안은 이번 정기국회에서 수용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관측된다.
정부는 이와 함께 종부세가 납세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 무리하게 세금을 부과하고 있다는 비판도 일정 부분 수용할 계획. 65세 이상 1가구 1주택 소유자가 소득이 적어 종부세를 낼 수 없을 경우, 사후에 세금을 납부할 수 있도록 유예해주는 방안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정부는 종부세 과표 기준 완화(6억→9억)나 세대별 합산 과세를 인별 합산으로 바꾸는 문제는 신중하게 처리하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정부로서는 종부세를 완화한다고 해서 부동산 시장이 활성화될 것이라는 확신이 없다. 또 종부세 부담을 낮춰줄 경우, 세금부담을 우려해 매물로 내놓으려던 집을 도로 걷어가면서 단기적으로 거래 활성화에 부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부동산 시장전망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괜히 종부세를 건드렸다 강남 등지의 집값이 치솟을 경우 제 2의 쇠고기 사태와 유사한 역풍이 생길 수 있다는 점도 정부가 우려하는 대목.
한나라당이 부동산 시장 상황을 이유로 종부세에 손을 대지 않을 가능성을 언급한 것은 이런 점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 임태희 정책위의장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시중 유동성이 부동산으로 갈 가능성이 있으면 종부세는 분명히 손 못댄다"면서 "부동산 세제 개편을 검토하면서 시중의 유동성이 어디로 흐를 것인지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청와대 경제라인의 관계자도 최근 "종부세 문제는 워낙 예민한 부분이라 매우 조심스럽다"면서 종부세 인하에 대해 다소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