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맛보기] 英 브렉시트 후폭풍과 한국의 ‘묻지마 지역투표’

  • 등록 2016-07-09 오전 8:00:00

    수정 2016-07-09 오전 8:00:00

[이데일리 김성곤 기자] 역대 모든 대선은 마찬가지였습니다. 대선이 끝나고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본격 가동되면 한국사회에는 희망이 넘쳐납니다. 모든 대통령 당선인들이 “지지자뿐만 아니라 반대했던 국민들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이겠다”며 국민통합을 선언합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외교, 국방, 남북관계의 등 모든 난제들을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을 것처럼 느껴집니다. 전지전능한 무오류의 메시아가 한국 사회에 온듯합니다.

그러나 기대감이 사라지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습니다. 거의 모든 대통령이 비슷한 전철을 밟았던 것 같습니다. 취임 초부터 좌충우돌이 이어집니다. 대통령을 지지했던 사람들도 점점 후회스럽다고 이야기합니다. 임기 중후반을 넘기면 시중에는 이런 말이 넘쳐납니다. “OOO을 뽑는 내 손모가지를 자르고 싶다.” 극단적인 표현이지만 주변에서는 이렇게 정치에 대한 환멸감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대선 직전만 해도 확신에 찼던 투표행위에 왜 후회는 껌딱지처럼 달라붙는 걸까요?

◇영국이 정치선진국?…‘EU도 모른 채’ 브렉시트 국민투표

투표하고 후회하는 건 동서양이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영국은 정치선진국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우리와 크게 다를 바 없었습니다. 바로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이른바 브렉시트를 결정한 이후 영국인들이 보여주는 모순적인 태도 때문입니다. 국민투표를 통해 결정하고도 재투표 또는 무력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들이 거셌습니다. 특히 브렉시트 가결 직후부터 재투표를 요구하는 청원에 수백만명이 서명한 것은 물론 대규모 반대시위와 거리행진이 이어진 것에는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국민투표 결과를 어떻게 뒤집지?

더 이상한 것은 브렉시트 국민투표 이후 영국인들의 반응이었습니다. 브렉시트가 확정된 지난달 24일 영국인들이 구글에서 가장 많이 검색한 문장 중 하나가 “What is the EU(유럽연합이 뭐지)”라는 질문이었다고 합니다. 배우 유아인의 대사 “어이가 없네”가 떠오를 정도입니다. 한마디로 영국인들이 브렉시트의 정확한 의미도 모른 채 투표했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What have we done(우리가 뭘 한 거지)”라는 브렉시트 투표를 후회하는 게시물이 넘쳐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영국의 상황은 한마디로 코미디입니다. 브렉시트를 결정한 국민투표의 법적 구속력이 없는 만큼 영국 의회가 국민투표 결과를 무시하는 게 이론적으로 가능하다고 합니다. 입헌군주제국가인 만큼 주권은 여왕에게 있고 여왕의 주권은 의회에 위임돼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합니다. 브렉시트에 찬성한 사람들은 뭐가 될까요. 한마디로 정치적 자살행위입니다. 결국 교훈은 투표를 잘해야 한다는 것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념, 계층 모두 상관없다…‘무조건 지역투표’

대통령, 대기업 총수, 국회의원과 비교할 때 일개 소시민의 권력은 보잘 것 없습니다. 그래도 평등한 게 딱 하나 있습니다. 바로 선거의 4대 원칙인 ‘보통선거’의 힘입니다. 권력, 재산, 학력이 아무리 차이가 나더라도 일정한 연령에 도달하면 모든 국민들에게 선거권이 주어집니다. 빈부나 권력의 차이 없이 모두 한 표만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자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투표행위는 과연 합리적일까요? 20대 총선을 거치며 지역주의가 많이 완화됐다고 하지만 한국사회 역대 선거에서 투표의 제1원칙은 거칠게 이야기하면 지역주의입니다. 지역주의 투표 성향이 가장 강한 곳은 여야의 정치적 심장부라고 할 수 있는 대구와 광주입니다. 그런데는 지역경제상황을 살펴볼 수 있는 지역총생산(GRDP)에서 매번 최하위권입니다.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입니다. 정치권력의 교체없이 특정정당의 독식구조가 장기간 용인되면서 견제와 균형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이른바 ‘묻지마 지역투표’의 폐해입니다. 대구, 광주보다 GRDP가 상대적으로 양호한 수도권과 충청은 매번 선거 때마다 권력교체가 이뤄집니다. ‘묻지마 지역주의’ 투표에서 벗어나면서 경제적으로 가장 많은 이득을 누리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지역주의는 거대한 균열을 예고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맞습니다. 20대 총선 결과를 보면 대구에서 김부겸의 당선이나 호남에서 이정현의 당선은 선거혁명입니다. 또 호남 역시 정치주도세력이 한꺼번에 바뀌었습니다.

다만 대구가 더불어민주당을, 호남이 새누리당을 능동적으로 지지한 것이냐에는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습니다. 역설적으로 보면 김부겸·이정현의 당선은 각각 새누리당과 더민주를 향한 반감과 개인의 인물경쟁력 때문입니다. 2010년 지방선거 당시 무소속 김두관 후보가 경남지사에 당선된 것 역시 지역주의 파괴의 이변으로 평가받았지만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호남에서 더민주의 몰락과 국민의당의 약진이 지역주의의 파괴인지 모르겠습니다. 두 정당은 문재인·안철수라는 유력 차기주자들을 제외하고는 어떤 정책적 차이를 발견할 수 없는 이란성 쌍둥이입니다.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거부한 박승춘 국가보훈청장 해임 촉구, 세월호 특조위 기한 연장, 사드배치 반대, 경제민주화 확대, 남북대화 강조 등 아무런 차이도 없습니다.

◇투표참여·계급투표 없으면 여야 정책대결은 백년하청

국민들은 매번 선거 때마다 정치권을 향해 비판합니다. 민생을 최우선에 놓고 정책을 다투기보다는 권력을 잡기 위한 선거공학과 당리당략에만 몰두한다는 지적입니다. 실제 언론의 선거보도를 보면 전쟁이나 군사용어가 난무합니다. 총력전, 전면전, 화력, 공세, 혈투, 총동원 등등.

여야가 정책대결을 벌여야 우리네 삶이 나아집니다. 생각해봅시다. 왜 안될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머리 아프게 정책을 개발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기권도 의사표시라지만 투표율 자체가 낮은데다가 계급투표도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정치권이 믿는 건 지역주의와 난무하는 선거공학입니다.

‘정치인은 투표하는 유권자만을 두려워한다’는 정치권의 오래된 격언이 있습니다. 지구상 많은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대한민국 역시 고소득층의 투표율이 저소득층보다 훨씬 높습니다. 특히 서울 강남3구의 투표율은 서울 평균보다 높기로 유명합니다. 투표한 만큼 혜택이 돌아갑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20세기 초 여성 참정권이 허용되면서 많은 나라에서 건강·보건 예산이 증가한 게 대표적입니다. 투표하지 않으면 본인의 가처분소득은 늘어날 수 없습니다.

극단적인 예가 흙수저의 절망으로 불리는 청년실업 문제입니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협할 정도로 심각한 문제이지만 정치권은 립서비스를 내세울 뿐 사실 노년층을 더 신경씁니다. 세대별 투표율이 압도적으로 차이가 나기 때문입니다. 젊은층의 투표율이 증가했다는 20대 총선도 마찬가지입니다. 최근 중앙선관위가 공개한 연령대별 투표율은 20대 52.7%, 30대 50.5% 반면 60대 71.7%, 70대 73.3%입니다. 오래된 이야기지만 한때 반값등록금 열풍이 대한민국을 휩쓴 적이 있었습니다. 결과는 어땠나요? 만약 20대 투표율이 100%에 가깝다면 서울시립대만이 반값등록금의 혜택을 보고 있었을까요? 궁금합니다.

아울러 계급투표도 없습니다. 영남, 호남, 충청, 수도권 등 지역과 관계없이 부유층과 서민층의 계급적 이해는 일치합니다. 만약 서민층이라면 세금인상이나 복지확대 등 분배를 우선하는 정당을 선택하는 게 내 삶에 플러스가 됩니다. 결과는 늘 정반대였습니다. 정치사회적 논란은 여전하지만 대한민국은 계급배반투표의 성격이 강합니다. 쉽게 말하면 서민층이 부유층의 이해를 대변하는 정당에 투표한다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게 참여정부 시절 종부세 논란입니다. 당시 종부세 대상은 유권자의 극소수에 불과했지만 상당수 유권자들은 ‘세금폭탄’이라는 프레임 때문에 각종 선거에서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을 지지했습니다. 계급투표의 빈자리를 메운 것은 지역주의입니다. 영호남 대부분의 유권자들은 소득에 관계없이 특정정당과 그 후보를 지지합니다.

내년 대선에서 대한민국의 유권자들은 어떤 선택을 할까요? 마지막으로 이 말을 하고 싶습니다. “모든 나라는 그 나라 국민 수준에 맞는 지도자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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