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경민 기자] 부탄이라는 나라가 있다. 인도와 중국 사이 히말라야 산맥 동쪽에 있는 나라다. `용의 나라`라는 뜻의 부탄은 `지구 상의 마지막 샹그릴라`라고 불리기도 한다. 샹그릴라는 영국 소설가 제임스 힐턴이 1933년 발표한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에 나오는 지상낙원을 말한다.
| ▲ 부탄 국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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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스포츠는 국궁이고, 국가동물은 티베트 산 영양의 일종인 타킨이라는 특이한 동물이다. 동화 속에나 존재하는 곳 같은 이 나라는 국가 정책적으로 `국민총생산`이 아닌 `국민총행복(gross happiness index)`을 활용하기로도 유명하다. 실제로 영국 레스터대학가 실시한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국가` 조사에서 23위인 미국을 제치고 8위(아시아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최빈국가 중 하나임에도 건강한 자연환경과 잘 보존된 문화, 느리지만 꾸준한 성장 등이 매력적인 요인으로 꼽혔다.
부탄의 또 다른 특징은 자국 문화를 보호하고자 매우 폐쇄적이라는 점이다. 처음으로 외국인 관광객을 맞이한 것은 지난 1974년으로 아직 40년이 채 안 됐으며 연간 관광 입국자 수도 제한하고 있다. 도로를 깐 지가 60년이 안 됐고 국영 항공사인 드룩에어(Druk Air)는 인도 네팔 태국 방글라데시 등 오직 4개 항로만 취항하고 있다.
이런 부탄이 10여년 전부터 부쩍 달라지고 있다. 1999년 TV와 인터넷이 개방되면서 그야말로 `세계화`에 동참하고 있는 것. 이제는 거리에서 맥주 바를 보는 일이 어렵지 않고, 집에서는 미국 TV프로그램인 아메리칸 아이돌을 볼 수 있다. 한국 아리랑TV 영향으로 비나 세븐의 옷차림을 따라 한 젊은이들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 ▲ 초스케 초모 카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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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 속도를 한층 가속시킨 것은 미스 부탄 출신의 초스케 초모 카충(Tsokye Tsomo Karchung)이다. 카충은 2008년 필리핀에서 열린 미인대회인 `미스 지구대회(Miss Earth competition)`에 나가 우승을 하면서 주목을 받았고, 2개의 부탄 영화에 출연하면서 최초의 여성 스타이자 패션 아이콘이 됐다. 젊은 여성들은 전통복장인 키라를 벗어던지고 그녀가 입는 옷을 입고, 어린아이들까지도 그녀가 어떤 액세서리를 착용했는지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번쩍이는 탱크톱에 화려한 청바지를 입고 나타나면, 그녀가 어떤 상표 옷을 입었는지가 사람들의 관심사가 됐다. 또 그녀가 신었던 뱀피가죽 하이힐 제품은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그녀가 맥도날드와 합작관계를 맺은 패스트푸드업체 찹찹(Tsab Tsab)에서 사진이 찍히면서 맥도날드가 인기를 끌기도 했다. 뉴욕의 유명한 모델 에이전시인 엘리트모델 인도법인은 얼른 그녀와 계약을 맺었고, 인도 유명 디자이너들은 서로 그녀에게 자신의 브랜드 옷을 입히려 혈안이 돼 있다.
카충에 푹 빠진 부탄은 시나브로 그녀를 감싼 다국적 기업들에 익숙해져 가고 있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조만간 나이키 운동화를 신고 아이폰을 귀에 꼽고 맥도날드 햄버거를 먹는 모습이 부탄에서도 익숙할 풍경이 될 지도 모른다. 가난하지만 행복했던 나라 부탄. 뒤늦게 불어닥친 변화의 바람은 이곳을 어디로 이끌까. 분명한 것은 산간 오지의 은둔국 부탄역시 `글로벌라이제이션(세계화)`의 바람에서 자유로울순 없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