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 초 머스트해브 리스트에 올랐던 스타일 중 어떤 아이템이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는지는 판가름이 난 듯하다. 거리엔 서로 닮은 룩들이 넘쳐나고 있기 때문.
올 겨울 국내 패션리더들이 선택한 핫 트렌드는 바로 80년대 복고풍. 특히, 헐렁한 상의 또는 미니스커트 아래 레깅스를 입고 플랫 슈즈를 신거나, 니삭스에 부츠를 신는 코디네이션은 대표적인 유행 스타일로 떠올랐다. (사진1 엠플 광고)
마음에 드는 트렌드를 만나 충분히 이 계절을 즐겼다면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이번 시즌엔 이렇게 입어야한다는 주입식 패션정보에 휩쓸려 여과 없이 받아들이진 않았는지.
유행이란 것이 본래 그렇긴 하지만 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비슷한 착장들이 거리를 채우면서 남다른 개성을 찾아보기 힘든 획일화된 방향으로 패션이 흘러가고 있다.
패셔너블하다고 인정받기 위해 마치 보호색으로 변신해 무리 속에 숨은 모습이다. 유행 싸이클이 돌고 돌며 사회에 활기를 더해주기 위해선 패션리더와 팔로우어가 모두 적당히 필요하지만, 주위 사람들과 다르고 싶은 리더보다는 팔로우어가 월등히 많은 형국인 것.
단일민족국가임을 자랑으로 여기며 가족 중심의 유대감을 중시해 온 만큼 집단주의 경향이 강한 한국은 이 때문에 내 멋대로 나를 표현하는 매니아 문화의 기반이 아무래도 약한 편이다.
따라서 다수에서 벗어나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어가는 데도 모험이 요구된다. 주류가 아닌 비주류를 선택했을 때 트렌드세터라기보다는 낙오자, 패배자로 오해받기 십상.
또한 개인기 연습에 여념 없는 팝가수들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빼앗기고 있는 인디 밴드들, 메이저 배급사들의 자리다툼 속에 개봉관을 못 찾는 예술영화들은 열악한 매니아층을 기반으로 버텨야하는 상황으로, 마이너임을 자부했던 리얼 버라이어티 쇼 '무한도전'도 시청률 상승에 힘입어 국민프로그램으로 거듭나기 위해 오히려 특유의 색깔을 버리지나 않을지 걱정스럽다.
음지에서 벗어나 주류에 편입된 대표적인 문화코드는 바로 비보이.
이들이 세계대회를 잇달아 석권하자 전 국민이 비보이들을 영웅으로 추앙하고 있다. 최근 방영된 K은행 광고에서는 비보이가 이렇게 말한다, 한국이 1등임을 보여주려 춤을 춘다고.
미국의 시사 주간지 타임은 지난 2006년을 마감하며 올해의 인물로 'YOU'를 꼽아 눈길을 끈 바 있다.(사진3)
온라인 백과사전 위키디피아, 영상파일 사이트 유튜브, 그리고 블로그 등 인터넷을 통한 개인 미디어가 세계적으로 확산되었다는 것이 선정 이유.
기존 언론매체가 전달하는 내용을 일방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이 직접 정보를 올리고 공유하며 컨텐츠를 창작한다는 점에서 디지털 민주주의의 기초라 볼 수 있다고 타임지는 덧붙였다.
국내도 미니홈피에 이어 블로그, UCC의 인기가 이어지며 개인 미디어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데, 하지만 온라인 문화 역시 스스로 즐기기보다는 조회수에 집착하며 다수로부터 인정받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는 듯 보인다.
타임지가 'YOU'를 2006년의 인물로 꼽은 데는 수많은 인터넷 유저들에게 새 시대를 이끌어갈 전권을 넘기며 칭송했다기보다, 자신의 영향력을 알고 능동적으로 대처하길 기대하는 마음이 숨어있을 텐데 말이다.
행여 무리에서 뒤쳐질까 조바심 내며 따르기보다는 나만의 안목으로 고른 패션과 문화를 즐기자. 진정한 트렌드세터는 비주류가 지닌 멋을 안다.
김서나 비바트렌드(www.vivatrend.com) 기획팀장 및 패션 칼럼니스트